책과 열쇠의 계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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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이 탐정이라니. 게다가 두 친구는 딱히 단짝친구도 아니다. 단지 방과 후 도서실에서 함께 도서위원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외엔 서로에 대해 잘 모른다. 호리카와와 마쓰쿠라. 이 두 친구는 늘 텅빈 도서실에서 책을 분류하고 정리하고 미반납 도서 독촉장을 쓴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선배가 도서실을 찾아와서 할아버지가 남긴 금고의 번호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섯편의 연작 단편이 실려 있는데 사건 소재들이 청소년들이 다루기에는 다소 무겁다. 물론 다행히 첫번째 이야기에서 위험한 순간이 일어날뻔 했지만 험한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책과 열쇠의 계절이라는 제목만으론 무언가 굉장히 심오한 내용인가 했으나 책을 좋아하는 두 친구가 사건의 열쇠를 찾아가는 과정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배배 꼬임없이 추리하고 잘 찾아낸다. 그래서 책장은 술술 넘어간다.

성향이 다른 두 친구가 탐정놀이를 하는동안 알콩달콩 티격태격 말장난을 주고 받으며 가까워지는 장면도 보기좋았고 마지막 두 편의 이야기는 마쓰쿠라의 가족 이야기라서 둘은 좀 더 친근해지는 계기를 갖는다. 물론 마쓰쿠라는 적정선을 지켜주길 원하지만.

 

이야기속에는 좀 더 다양한 인간의 본성과 문제점들도 드러난다. 호감어린 미소뒤에 숨겨진 더러운 욕망과 인간 혐오등은 참으로 씁쓸하다.

무엇보다 사건의 본질은 단서보다 이야기에서 찾아야 한다. 그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면 사건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된다. 사람의 내면을 간파하는 능력 이것또한 탐정에게 꼭 필요한 조건이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마쓰쿠라가 더욱 예리하긴 했다. 물론 이야기는 호리카와의 시선으로 쓰여져 있기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수도.

 

일상 미스터리에 청소년물 같아서 난 좋았지만 좀 더 센걸 원한다면 김빠질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다만 소설을 좋아한 친구가 자살한 얘기는 빼고 싶군. 추리과정에서 언급된 <바다와 독약>을 보니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까먹고 있었던게 떠오른다. 이참에 꼭 읽어봐야겠다.

 

두 친구가 책과 열쇠의 계절을 맘껏 즐길 수 있는 청춘이라 부러워진다. 이미 세상은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며 어둡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지만 두 친구의 활약으로 조금씩 밝아지는 기분이다. 이런 세상에 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그 위안의 열쇠만 있다면 굿굿하게 헤쳐 나갈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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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벨리스크의 문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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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느냐."

 

방랑의 계절, 광기의 계절(산제 제국), 이빨의 계절(펄크럼), 질식의 계절(제키티), 붕괴의 계절

 

아. 그랬다. 이 세계엔 아니 이 계절엔 달이 없었다. 붕괴의 계절이후 무언가 잘못되어 달이 궤도를 이탈해서 사라져 버렸다. 이 모든것의 원인은 오로진이였기에 살아남은 인간들은 그들을 "대지가 싸지른 추잡한 괴물새끼들 -p. 67" 이라며 극도로 혐오한다. 2부에서는 엘라배스터와 에쑨의 대화에 집중하면 스토리가 그려진다. 그들이 주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결과가 어떤 참사를 낳았는지. 천채는 그 천채를 구성하는 모든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은 우리네 삶도 그러함을 의미한다. 하늘만 올려다 봤더라면 계절이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그래서 힘이 들땐 하늘을 보라고 하는건가.ㅎㅎ)

 

어쨌든 사람이란 자기 자신과 남들로 구성된다. 하나의 존재를 최종적인 형태로 빚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다. 로 시작의 문이 열린다. 그것은 이야기가 좀 더 구체적으로 펼쳐진다는 의미다. 각자의 관계 (스톤이터, 오로진, 수호자 그리고 인간)가 어떤식으로 연결이되어 있을런지 기대하면서 읽어 나갔다. 1부에서 두리뭉실했던 관계들이 2부에서 선명해지기 시작했으며 각자의 입장에 서서 바라볼 수 있었다. 1부에서 2인칭 화자. 에쑨을 너라고 칭하던 자의 정체가 밝혀진다. 다름아닌 호아. 오~~~ 소름!! 에쑨의 수호신이라고 여겼는데 그보다 더 상위존재인듯. 어쩌다 인간이 아닌 돌로 존재하게 된건지 알 수 없지만 알라배스터가 결국 돌이 되가는 모습을 보며 오로진의 최후가 스톤이터가 아닐까.

 

10년이 지났다. 에쑨은 지하도시(카스트리마)에 머문다. 그녀와 같은 오로진이 이끄는 곳이자 그곳엔 알라배스터가 있었기에 그녀는 알라배스터에게서 대륙의 비밀을 알고자 한다. 여전히 알라배스터에 대한 증오(이 녹병삭아 문드러질 고집불통 머저리 냉혈한 같은...)를 떨쳐버질 수는 없지만 그의 죽음을 환영할 수만은 없다.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 열쇠는 그와 에쑨에게 있음을 직감했기에. 알라배스터가 모든 비밀을 한꺼번에 토해내지 않는 이유("씨발대지여, 난 너를 보호하려고 이러는거야.")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에쑨은 모든 건 자신에게 달렸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계속 살아갈것이므로!

 

반면 그녀의 딸 나쑨은 아버지와의 여정에서 수없이 죽을 위기를 넘기며 찾은달(오로진을 고쳐준다는 소문을 믿고)에 도착한다. 나쑨은 동생의 죽음에 대한 공포와 아버지에 대한 사랑사이에서 갈등하고 에쑨에 대한 원망까지 떠안고 있다. 지자는 위기의 순간 딸의 힘으로 벗어났음에도 두려움은 커져간다. 하루빨리 그 힘을 없애 사랑스런 딸과의 일상을 꿈꾸지만 샤파의 등장으로인해 부녀사이는 끔찍한 종말을 맞게 된다.

 

한편 에쑨과의 마지막 만남이후 파괴될뻔 했던 샤파.그는 더이상 예전의 에쑨을 그려볼 수 없다. 허나 운명은 에쑨대신 나쑨을 그 앞에 데려다 놓는다. 나쑨에게서 느낄 수 있었던 에쑨의 존재. 딸의 손가락을 부려버릴정도로 에쑨은 딸을 강하게 키우고자 했다. 스스로 힘의 파괴력을 조절할 수 있을때까지. 그런 냉담함때문에 나쑨은 엄마에 대한 감정이 차갑다. 그랬기에 아빠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했지만 "저 곳은 ... 저기엔 너 같은 애들이 많을 거다." 그는 절대로 '오'나 '로'가 들어간 단어를 말하지 않는다. 항상 너 같은 부류나 너희 동족 그리고 그런 족속이다.-p.160 오로진을 벌레취급하는 아빠와는 더이상 관계를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에쑨이 그랬던것처럼 샤파에 대한 애정이 커져만가는데.

 

어린시절 지자는 오로진이 친구를 얼려 버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물론 어린 오로진이 그 힘을 제어하지 못한 결과였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 이후로 오로진에 대한 분노는 한결같을 뿐이다.

짐승 새끼를 아무리 훈련하고 목줄을 달아 봤자 짐승새끼일뿐이다.-p.162 그랬기에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에쑨에 대한 원망과 분노와 커져만가는 딸에 대한 애증은 오래전 친구에 대한 기억을 자꾸만 되내이게 한다. 결국 지키고 싶어했던 딸이지만 괴물취급을 하고 만다.

 

대지가 생명을 증오하는 이유는 유일한 자식을 잃었기 때문이다.-p.147 오로진의 실수로 달은 사라졌고 대지는 분노한다. 분노한 대지는 수호자를 통해 오로진을 통제하려 하지만 결국 모든것을 되돌릴 수 있는자도 오로진뿐이다. 평범한 오로진이 아닌 열개반지 이상의 힘과 능력을 가진자만이 오벨리스크의 문을 열 수 있으며 달을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있다. 그래야지만 대지와 인간은 평화로운 공존을 모색할 수 있다.

 

모든 기력을 대지에 다 쏟아붓고 돌이 되어버린 알라배스크. 그는 아들을 사랑했고 진정한 삶을 원했고 모든걸 되돌리고 싶어했다. 최후까지 온몸으로 고통을 참아내며 떠나버렸다. 어쩌면 샤파도 그렇지 않을까. 나쑨을 지켜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대지의 명령을 거역하는 고통을 감내한다. 이 모든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었다. 수호자가 되길 원하지도 않았다. 어린 샤파. 점점 잔인해져가는 샤파. 그리고 진심 사랑했던 어린 여자 아이. 목뒤에서 꿈틀대는 존재보다 특별한 존재와의 관계가 그를 더 꿈틀대게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속에서 이해를 구할 것이다. -p.252

 

에쑨은 호아에게 넌 왜 여기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호아는 불쑥 말한다. "나한테 괜찮으냐고 물었으니까."

아무리 세계가 부서져도 아무리 세상이 피폐해져도 사랑은 존재한다. 대지와 조산력과 오벨리스크와 마법.이라는 거대한 힘말고 미래와 희망을 위한 사랑말이다.

 

전쟁은 진행형이다. 카스트리마도 위기를 맞는다. 적들은 사방에서 그들을 노리고 있다. 항복이냐 투쟁이냐의 문제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싸운다. 에쑨은 펄크럼에서 배운 조산력을 왜 대지에만 집중시켰는지 깨닫는다. 조산력은 노력이 아닌 관점과 인식의 문제라는 알라배스크의 말도 한몫한다. 즉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과 마법의 차이를 깨닫는다. 알라배스크가 왜 조산력을 마법이라 칭한지 이제서야 감이 온다. 마법은 힘이 필요없다. 그랬기에 에쑨은 마법을 하늘로 끌어올리는데 집중한다. 수많은 오벨리스크의 문을 향해. 그리고 나쑨은 엄마의 기운을 감지한다.

 

"달을 어떻게 집으로 데려 올 수 있는지 말해줘."

 

 

"대지여, 네가 정말로 그리웠다." - p.293 라며 한숨짓는 그의 말이 너무나 진심인걸 알기에 알라배스터가 그리울것같다. 이제 마지막 석조하늘을 펼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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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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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우울증 극복을 위한 최고의 명약! 이자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여행책이란 타이틀에 더해 정세랑 작가가 강추한다고 해서 주저 없이 들였다. 밤이 길어져서 좋다. 그렇다고 시간이 늘어난 건 아니지만 그냥 밤이 길어져서 심적 여유가 많아졌다고나 할까. 물론 전기장판 때문에 십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아침을 맞이할 때도 있지만 베개 옆에 널브러져 있는 책을 보는 게 신난다.

 

코로나 이전에도 여행과 별로 친하지 못했고 여행 계획이란 걸 잘 세우지도 않았다. 난 늘 집순이였고 집에서 두 시간 정도 이동 가능한 곳만 돌아다녔다. 전시회, 영화, 콘서트, 둘레길 산책 정도면 우울할 새가 없었다. 그럼에도 여행 준비에 관한 책에 손을 뻗친 건 내년엔 계획이란 걸 세워 제대로 다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즉 안 하던 짓 해보기.ㅋ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책 읽는 건 좋아했다고 한다.

아무도 묻지 않는 취미를 학교에선 그렇게 묻는 게 의아했었고 그때마다 쓸게 마땅찮아 그 칸은 늘 독서로 채워 넣었다는데...

문득 학창 시절 나는 뭐라고 적었던가 떠올려 본다.

책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해서 음악 감상이라고 적었던 것 같기도 한데 기억은 희미하네.

분명 나는 독서라고 적지는 않았다. 그땐 책하고 별로 안친했기에.ㅋㅋ

 

저자는 허세가 걷힐 때쯤엔 헛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지하철 노선을 암기하고 커피의 세계에 입문하겠다고 유명 커피하우스를 돌아다니고 남들과는 다른 음악을 듣겠다며 청계천에 백판을 사러 다녔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허세와 헛짓도 잘 하면 득이 될 것 같단 생각이 든다. 허세보다 헛짓을 좀 많이 하고 다닐껄하는 후회가 든다.

뭐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해도 늦진 않지만.

 

그랬던 저자는 서른 살에 자신의 취미를 찾았다고. ㅎㅎ 바로 여행 준비.^^

참, 저자의 직업은 의사지만 이미 그의 피에는 여행 DNA가 잠재되어 있었다.

그런 DNA를 가져 인생이 더 다채롭고 풍요로워졌음은 틀림없다.

 

뜬금없는 취미 소환에 나의 취미는 진짜 뭘까. 난 정말 여행을 좋아하긴 할까.

 

여행 준비는 '내가 누군인지 정확히 알 수 있게 해준다'라는 정의에 시험을 해 보면 취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듯하다.

6장에서 언급한 방법을 잘 활용하면 새해 결심도 나올듯하고 미처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할 것만 같은 기분도 든다.

국내 지도부터 먼저 붙여 놓아야겠다. 제일 먼저 가보고 싶은 도서관과 식물원을 적어 보련다. 안 해 본 먹방투어도 추가하고.

 

저자는 여행 준비를 하면서 아는 게 많아졌다고 한다. 가보지 않은 곳을 마치 다녀온 것처럼 지인들에게 추천하기도 하고 회화 공부뿐 아니라 그 나라 교통정보까지도 공부하면서 준비를 한다. 정말 제대로 준비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게 여행인가 보다.

 

그런 노하우를 살려 베스트 스팟, 베스트 레스토랑도 소개하고 있고 경험을 바탕으로 장단점도 콕 집어주고 관련 사이트나 팁도 공유하고 있으니 여러모로 유용하겠다. 어찌 되었든 이 책은 나처럼 여행 준비와 친하지 않은 이들에게 충분히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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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메이브 빈치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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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읽겠다고 결심해놓고 딱 일 년 만에 완독했다. 왠지 시즌에 맞춰 읽어야 할 것만 같기도 했고.

 

<​그 겨울의 일주일>이후로 작가의 글이 너무 좋아서 부지런히 읽고 있는데 이렇게 많은 단편이 실린 책은 첨인 것 같다.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가 무려 열아홉 개나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보따리를 작정하고 싸 놓으신듯.ㅎㅎ

물론 책장을 덮고 나니 희미해진 이야기도 있고 또한 크리스마스를 대하는 문화가 우리랑은 달라 이질감이 있으나 명절+가족이라는 결합의 공통점으로 인해 사람 사는 곳은 어딜 가나 다 비슷하구나 했다.

 

가족의 해체와 붕괴는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낳을 수밖에 없고 제아무리 기쁘다 구주가 오신 날이라고 해도 누구에겐 노동의 피로로, 누구에겐 관계의 피로로 전혀 기쁘지 않은 날이 되기도 한다.

이제 막 시작한 연인에게는 기대만땅에 달달한 날이 될 것이고, 솔로나 가족이 없는 이들에게는 쓸쓸하고 외로운 날이 될 수밖에 없는 게 연휴이기도 하니까 그만큼 크리스마스에는 다양한 사연들이 존재한다.

 

메이브 빈치의 단편은 그러한 환경 속에서 틀어질 수도 있을 크리스마스 휴일을 그렇지 않게 만든다. 조금만 생각을 바꾼다면, 조금만 상대에게 너그러움을 보여준다면 얼마든지 한 해의 끝이 후회로 남지 않을 수도 있음을 전한다. 이야기만 보면 참 간단하고 쉽다. 왜 우리는 이 간단해 보이는 걸 못하는 걸까. 그만큼 우리는 쓸데없는 자존감(죽어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과 쓸모없는 이기심(세상의 중심은 나)과 불필요한 감정의 골(불안감과 두려움)을 내려놓지 않기 때문이다. 투박한 인생사에 찌든 자라면 동화 같은 결말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요즘 같은 시기엔 특히 동화적 감성이 필요하다.

 

싸가지 의붓 딸과의 불편한 전쟁을 그린 <크리스마스의 첫 단계>를 시작으로 정말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스산한 결말이 인상적이었던 <크리스마스 사진 열 장>과 가족이 아닌 타인들이 만들어 낸 크리스마스의 훈훈함이 돋보인 <함께 모여서>와 <당신은 어떤가요?>, 괴팍한 노인네들 때문에 애쓰는 구성원들의 모습도 재밌었던 <크리스마스 선물>과 <야단 법석의 계절>.

할아버지는 들리는 모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왜 보청기를 끼는지 모를 일이었다. 할머니도 보이는 모든 걸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알이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썼다. -p.95<크리스마스 선물>

 

개중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역시 표제작과 비슷한 <올해는 다를 거야>였다. 이건 반전 혹은 공포에 가까운 이야기 아냐? 할 정도로 우픈 이야기였는데 스포가 될 수 있으니 더 이상 발설하지 않겠다. 주부라면 정말 백 퍼 공감할 이야기라고 장담한다.^^

모이라는 에설이 가족들이 밟고 지나가는 깔개처럼 산다고 했었다. -p.191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이런 대접을 받고 살아왔던가.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는 그냥 종교행사 그 이상은 아니었다. 가족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보다는 캐럴과 크리스마스트리만 좋았다. 하지만 올해부턴 좀 다르게 보내려고 준비 중이다. 물론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콕이지만 연휴 기분을 북돋아줄 크리스마스 장식을 준비했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만들어 볼 예정이다.

 

코로나로 더욱 이 겨울이 냉랭하지만 많은 이들의 크리스마스가 안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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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계절 부서진 대지 3부작
N. K. 제미신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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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우리가 늘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뭐 그게 더 흥미를 끌기도 하니까. 어쩌면 그만큼 현재가 불안정하기 때문일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불안정은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결국 인간성은 파괴되고 그 모든 것을 다시 인간들이 감당해야만 한다. 불합리한 것들로부터 계속 싸워야만 하는 세상. 제어할 수도 제어되지도 않고 제멋대로 흘러가는 삶. 그 끝이 무엇이 되었든 한방 세게 터지고 나면 끝없는 암흑의 세계가 다시 그들을 기다린다. 가도 가도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세계. 그렇지만 인류는 그 희망을 찾아 계속 싸워왔다. 생존 그 이상을 넘어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해서.

 

부서진 대지 3부작 시리즈를 드디어 시작한다. 디스토피아 세계를 보고 있자니 살고 있는 지금이 가장 완벽해 보여서 사랑스러울 지경이다. 허나 작가는 지금의 차별과 편견에서 더이상 기댈곳을 찾지 못한듯 하다. “흑인 여성으로서, 나는 현상 유지에 딱히 관심이 없다. 내가 왜 그러겠는가? 지금의 현실은 해롭다. 상당히 인종차별적이고 성차별적인 데다, 그 외에도 바뀌어야 한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한가득이다.” (- <가디언>지 인터뷰중에서) 그랬기에 작가의 세계관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을까 궁금했다.

 

SF 장르를 좋아하나 상상력이 좀 딸려서 영상으로 보는 걸 더 선호한다. 뭐 영상으로 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들도 많긴하지만.ㅋㅋ 작년 초 이 책이 출간되었을 때 얼핏 본 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놓쳐버렸는데 2020년 남은 한 달을 이 미래 세계에 쏟아부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종말을 맞이한 세상. 하지만 세상은 끝나지 않았다. 행성은 여전히 존재하니까. 다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누군가의 삶은 시작된다. 물론 이전 세계와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이곳은 늘 위험이 도사린다. 과거의 흔적이 사라진 대지는 불안정하고 지금의 인류와는 다른 존재도 태어난다. 그들은 태생부터 초인적 힘(오로진)을 지녔다. 미드 <플래시>에 나오는 것처럼 특정 종족들에게 초능력이 주어진다. 하지만 그들의 숫자는 많고 그들은 위험하다. 즉 스스로 욕망을 제어 못하는 자들과 뜻하지 않게 발현되어 주변을 위험에 빠뜨리는 자들로 인해 그들은 스스로 오로진을 관리한다. 펄크럼은 오로진을 육성하고 관리하지만 실상은 철저한 훈련을 통해 이용한다. 그들의 잠재력은 대지를 잠재우고 대지를 뒤흔들 만큼 강력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을 로가라고 부르며 천대시한다. 마치 불량한 존재를 보듯 혐오하고 배척한다. 확실히 그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다. 막강한 힘을 지닌 자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이 세계에 진실은 감추어져 있다. 오로진 그들 스스로 자초한 세계에서 그들이 찾는 희망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이곳에 인간애는 존재할까. 에쑨의 자식 사랑을 보면 남아 있는 듯하고 에쑨을 돕는 자들을 봐도 언뜻 살아있는 듯하다. 다만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정해서 미약해 보인다. 키우던 개가 주인을 무는 상황은 흔하게 벌어진다. 그렇기에

계속되는 두려움과 공포가 내내 소설 전반을 지배한다. 초인적인 힘을 지닌 생명체와 그렇지 못한 생명체 간에 존재하는 간극이 아슬아슬해 보인다. 세계는 뒤집혔으나 차별받는 종족은 여전하다. 대지의 안정을 위해 누군가의 지속적인 희생이 요구되고 죄 없는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간다. 오로진의 힘은 그들을 정상적인 삶의 궤도에 안착할 수 없는 운명을 지닌다.

 

 

 

  

이야기는 세 여인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오로진의 힘을 지녔으나 그 힘을 숨긴 채 살고 있는 여인 에쑨.

오로진의 힘을 지녔다는 이유로 부모에게 버림받은 여인 다마야.

이미 펄크럼안에서 임무를 수행중인 여인 시에나이트.

 

에쑨은 아들을 잃었다. 범인은 다름 아닌 남편. 아이는 처참한 몰골로 파괴되었고 남편은 나머지 한 아이를 데리고 떠나버렸다. 아이에게서 위협적인 힘을 감지한 남편은 그 싹을 잘라버렸다. 이 세상은 인간애보다 더 강한 게 있다. 두려움과 공포. 에쑨의 남편이 끝날 때까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에쑨의 분노를 흡수한 채 달리는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남편을 죽이기 위해 대륙을 지난다.

보통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가장 아프게 하는 법이거든. -p.134

 

다마야는 부모에게 버려서 수호자의 손에 맡겨진다. 그를 따라 펄크럼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수호자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서 거짓 없는 신뢰와 믿음을 느낀다. 허나 독자들은 그런 독함에 이유가 있었음을 알게 되면서 소름이 돋는다. 다마야가 스스로의 힘을 통제하고 제어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에 잔악성이 느껴진다.

 

펄크럼안에서 시엔이 해야 하는 임무는 생산과 신분 상승이다. 그들이 획득해야 하는 반지의 수는 힘을 의미한다. 네 반지 시엔과 열 반지 알라베스터. 그들은 의무적으로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 섹스를 하고 서로를 비난하고 증오한다. 시엔보다 알라베스터는 내면의 동요가 심하고 인간애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그는 최고의 힘을 지녔지만 힘으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힘을 쓰면 쓸수록 그가 알던 가치관이 흔들린다. 씁쓸한 비난과 조소 어린 미소 안에서 그의 평범한 욕망이 드러난다. 그저 그에게도 삶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 그것은 결코 이 세상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운명임을 안다. 그들을 위해 스스로 부서져버린 그가 제일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에쑨은 그런 능력에 대해 회의적(그건 저주지 재능이 아니에요.)이다.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전엔 계절을 잃었다. 그녀는 또다시 잃을 것들이 두렵다. 딸만큼은 어떻게든 지켜내고자 한다. 그녀의 분노가 어찌나 강렬한지 남편을 만나면 그 자리에서 찢어 죽일 것만 같다.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으면 재능이지. 스스로를 파멸시킨다면 재주고. 그걸 결정하는 건 바로 너다. 교관도 아니고 수호자도 아니고, 다른 누구도 아니야." -p.552

 

대지를 쥐고 흔드는 능력은 마을 하나를 집어삼킬 정도의 위력을 지녔다. 에쑨은 그러한 능력 때문에 배척되기도, 환영받기도 한다. 세 여인의 이야기가 하나로 모아지면서 이 세계의 두 번째 시리즈가 열린다.

곳곳에 등장하는 석상의 글귀와 그녀의 수호신 역할이 되어주는 스톤이터는 여러 판타지물에서 유사하게 보아온 플롯이라 다음 편에서 좀 더 명확하게 등장하지 않을까 한다.

 

방랑의 계절, 광기의 계절(산제 제국), 이빨의 계절(펄크럼), 질식의 계절, 붕괴의 계절

 

다섯 번째 계절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 인간들앞에 찾아온 계절의 모습 말이다. 그것은 인간들 스스로가 망쳐놓은 대지의 모습이었다. 곧 닥칠 미래라고 생각하니 끔찍하다.

시엔은 곁에 있는 이들을 또 잃었다. 펄크럼과 어떻게든 엮이고 싶지 않아 독한 맘도 먹는다. 슬프다.

2부에서는 그녀의 딸과 그녀의 활약상이 더 두드러지겠지. 좀 더 깊이 있는 해석을 하고 싶지만 머릿속으로 잘 그려지지 않는 것들이 있어서 포기.ㅎ

에쑨 곁을 따라붙은 호야(스톤이너)의 정체가 궁금하다.

 

아버지 대지의 표면이 달걀 껍질처럼 산산조각 났다. 그의 사납고 맹렬한 분노가 다섯 번째 계절, 즉 붕괴의 계절이라는 최악의 형태로 발현되어 거의 모든 생명들이 죽었다. - p.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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