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모에가라 지음, 김해용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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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오리는 내게 친구 이상의 존재, 연인 이상의 관계,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 자신보다 좋아한 사람이었다.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전국시대의 장군이나 연예인, 어느 아티스트가 아니라 작은 키에 적당히 통통한 얼굴, 유독 흰자가 많은 눈동자, 그리고 팔에 아토피가 있었던 귀여운 못난이였다." (213쪽) 


마흔세 살의 중년 남자가 러시아워를 맞은 전동차 안에서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어시스턴트로부터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어서 조바심이 든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러다 습관처럼 페이스북을 열었는데 '알 수도 있는 사람' 목록에 알 수도 있는 정도가 아니라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의 이름이 있어서 눈을 번쩍 뜬다. '오자와(가토) 가오리'. 이십 대 청춘을 함께 보낸 여자. 지난날 나 자신보다 소중했던 여자. 추억에 젖는 것도 잠시.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친구 신청 버튼을 누른 것을 깨닫고 낭패감에 빠진다. 


모에가라의 소설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는 이렇게 시작한다. 페이스북에서 오래전 헤어진 연인의 이름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친구 신청 버튼을 누른 남자는 17년 전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지금은 번듯한 회사의 중역으로 일하고 있지만, 17년 전만 해도 남자는 전문학교 졸업 후 아무 곳에도 취업하지 못하고 에클레어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살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인도 물건 잡화점에서 일하는 가오리를 만나 사귀게 되고 이로 인해 인생이 바뀐다. 꿈도 생기고 직업도 생기고, 친구도 사귀고 적도 만들고, 성공도 하고 실패도 하며 비로소 어른이 되기 위한 계단에 오른다. 


8,90년대의 일본 문화를 잘 아는 독자라면 이 소설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남자와 가오리가 만나게 된 것은 오자와 켄지를 좋아한다는 공통점 때문이고, 두 사람은 영화관에서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보며 데이트를 한다. 가오리의 여동생은 아무로 나미에의 패션을 따라 하는 아무라였고, 남자는 우루후루즈의 노래를 부르며 배달을 한다. 그 시절의 일본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나는 일본에서 산 적도 없는데 그 시절이 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를까) 마치 자신의 청춘을 돌아보는 듯한, 애잔한 기분을 느낄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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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짐을 수업하다 - 나를 지키면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법
쑨중싱 지음, 손미경 옮김 / 미래의창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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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연애하는 동안의 관계와 이별을 충분히 돌아보고 곱씹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별의 단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헤어짐을 수업하다>의 저자 쑨중싱은 타이완의 사회학자이자 저명한 연애 카운슬러이다. 저자는 타이완 대학교에서 '사랑의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10년 이상 하고 있다. 저자는 수업을 시작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연애 다이어리 쓰기'라는 과제를 내준다. 지나간 연애든 현재 진행 중인 연애든, 짝사랑이든 열애든 삼각관계든, 사랑의 경험이라면 무엇이든 좋으니 마음껏 쓰도록 한다. 


연애 다이어리를 쓰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지난 연애 경험을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당시에는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그때는 상대한테 이별의 원인이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나한테 이별의 원인이 있었다거나, 그때는 내가 무조건 잘못한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상대한테도 책임이 있었다거나. 그렇게 지난 사랑을 돌아보고 현재의 사랑을 진단하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사랑과 이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고, 더 나은 사랑, 더 나은 이별을 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게 된다. 


나아가 저자는 사랑이란 무엇이고 이별이란 무엇인지, 사람은 왜 사랑에 빠지고 이별을 결심하는지, 사랑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나는지, 잘 사랑하는 법은 무엇이고 잘 이별하는 법은 무엇인지, 이별 후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한때는 서로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사람들이 돌연 이별을 결심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별의 이유를 크게 외재적 요인과 내재적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외재적 요인은 나이, 사회계층, 종교, 교육 정도, 가정환경, 성격 차이, 연인 간의 소통 및 상호작용 부족, 가족이나 친구의 반대 또는 더 나은 사람의 등장 등이다. 내재적 요인은 상대에 대한 열정 또는 연애에 대한 낭만 감소("너에 대한 감정이 식었어."), 연인 간의 친밀감이나 포용력 감소("너 변했어. 예전엔 이렇지 않았잖아!"), 역할의 증가("나는 결혼을 하는 거지, 당신 집에 팔려가는 게 아니야!"), 점점 줄어드는 대화 등이다. 


저자는 만약 자신이 연애를 할 때마다 거듭 차이고 연애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면 지난 연애부터 돌아보라고 조언한다. 지난 연애를 돌아보고 문제점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 없이 무작정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은, 마치 노트북을 포맷하지 않은 상태에서 윈도우를 새로 설치하는 것과 같다. 연애를 할 때 나는 주로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특성을 보이며, 상대는 나의 어떤 점을 좋아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이별에 대한 분석과 학습은 점점 늘어나는 이별 범죄를 예방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저자는 특히 남자가 연인에게 차여 울고 있을 때 가족이나 친구들이 "사내자식이 그깟 일로 눈물을 흘리고 그래, 못난 놈!"이라며 비난하는 반응을 보여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헤어진 것도 서러운데 남들이 욕까지 하면 이 남자는 자신의 고통에 공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느끼게 되고, 심하게는 범죄나 자살 같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지나간 사랑은 새로운 사랑으로 잊혀진다' 같은 말도 이별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한테는 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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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 왜 민주주의에서 마음이 중요한가
파커 J. 파머 지음, 김찬호 옮김 / 글항아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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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이 나라에는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없었다. 오직 소수의 권력자와 자본가와 지식인들을 위한 정치,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만 있었다. 그리고 4년 전 오늘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비통한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어떤 사람들은 시끄럽다, 그만하라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함께 울었다. 더 이상 비통한 자들을 만드는 정치는 없어져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그 결과 정권이 바뀌었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국의 정치학자 파커 J. 파머의 책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대립과 분열의 정치를 극복하고 화해와 통합의 정치로 나아가는 방안으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를 제시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란 쉽게 말해 '마음을 다친 사람,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한 정치'다. 정치적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화해시키고 통합하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비통함'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입장이 다르기 어렵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을 때, 큰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렸을 때, 직장에서 해고되거나 생계의 위협을 받을 때, 불합리한 차별이나 편견에 부딪힐 때, 사람은 누구나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과 아픔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 놓인 사람을 보면 연민을 느끼고 도와주고 싶은 감정이 드는 것도 '인간이라면' 당연하다. 


문제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느껴야 할 연민이나 동정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는 몰인정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우리는 그 예를 '너무 많이' 안다). 저자는 현대인들이 타인의 슬픔이나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을 잃거나 무관심한 이유로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를 든다. 모든 것을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고 그에 따라 판단하는 소비주의는, 세월호 사고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의 목숨보다 사고 처리에 드는 세금이나 유족들에게 주어지는 보험금에 주목한 당시 일부 언론의 행태에 잘 드러난다. 또한 당시 정부가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유가족을 정부에 반항하는 반동분자 취급한 것은 희생양 만들기의 전형적인 예다. 소비주의와 희생양 만들기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자연히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정치 혐오에 빠진다. 인간관계와 시민 공동체는 금세 무너진다. 


자아와 세계의 관한 지식을 온 마음으로 붙든다면 마음은 때로 상실, 실패, 좌절, 배신, 또는 죽음 등으로 인해 부서질 것이다. 그때 당신 안에 그리고 당신 주변의 세계에 무엇이 일어나는가는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부서지는가에 달려있다. 만일 그것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부서져 흩어진다면 결국에는 분노, 우울, 이탈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경험이 지닌 복합성과 모순을 끌어 앉을 위대한 능력으로 깨져서 열린다면, 그 결과는 새로운 삶으로 이어질 것이다. 마음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 (57쪽) 


저자는 민주주의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가치는 결국 화해와 통합이며, 화해와 통합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가장 많이 눈물 흘리고 아파하는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결코 '그들'과 화해하거나 통합할 마음이 없지만, 그들과 화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통한 자들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라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만약 그들이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다고 죽은 사람들이 살아서 돌아오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4주기인 오늘. 어떤 언론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정치 이용은 할 만큼 하지 않았나'라는 사설을 실었고, 어떤 정당은 추도식에 참석하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 나라에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가 제대로 자리 잡을 날은 아직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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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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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글이 오랫동안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쓴 글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히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은 전자가 후자보다 크다는 방증일까.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가 정년 퇴임 전 대학에서 진행한 마지막 강의인 '창조적 글쓰기'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 철학 책은 왜 어려운가 등등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행위다. 주관식 시험을 볼 때 수험자로서는 아무리 답안을 잘 써도 채점자가 읽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 작가가 제 딴에는 아무리 잘 써도 독자가 그 글을 읽고 싶은 마음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살아남는' 글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자기표현,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 또는 사회와 소통하는 방편으로 글을 쓰는 존재여야 한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에 의하면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이다. 독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종이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전자책은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실감하기도 어렵고(종이책은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잡고 있는 책의 부피와 무게가 달라진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그렇다면 전자책 화면에 남은 페이지 수를 표시하는 기능을 추가하면 전자책의 인기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문학에 '외향(外向)'과 '내향(內向)'이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쉽게 말해 시바 료타로는 일본인을 편 드는 글을 쓰는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인을 편들지 않는 글을 쓴다. 시바 료타로는 노몬한 사건에 관한 글을 쓰려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생존 병사를 인터뷰했지만 자국을 욕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집필을 포기했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몬한 사건에 관해 끈기 있게 취재해 <태엽 감는 새>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는 일은 힘들다.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보다 훨씬 강하다. 독자에게도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어느 집이라도 그 집 고유의 냄새가 나지만 그곳에 사는 인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집은 냄새가 안 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자기 집 냄새를 '냄새'라고 느끼지 못하면 자기 집에 대해 '외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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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조커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5
다카무라 가오루 지음, 이규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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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쇼와 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으로 불리는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다룬 소설 <죄의 목소리>를 읽었다. 마침 <죄의 목소리>보다 먼저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을 다룬 소설이 20년 만에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고 해서 얼른 구입해 읽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추리작가 다카무라 가오루의 1997년작 <레이디 조커>다. 


<죄의 목소리>는 사건으로부터 30년 이상 지난 시점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며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레이디 조커>는 종전 직후 한 맥주 회사에서 일어난 노동 쟁의부터 그로부터 40여 년 후 경마장에서 만난 다섯 남자가 범죄를 모의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는 방식을 취한다. 


'쇼와 시대 최대의 미제 사건'이라고 해서 범인이 잡히지 않은 것은 물론 경찰이 범인의 윤곽도 알아차리지 못한 줄 알았는데, <죄의 목소리>와 <레이디 조커>에 나오는 범인 그룹에 대한 묘사가 대체로 일치하는 걸 보면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두 소설 모두 범인 그룹 내에 현직 경찰과 재일조선인, 금융 지식에 해박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는 사건 당시 제기되었던 내부자 범행설, 주가조작설, 부락민 관련설 등을 모두 아우르기 위한 것이다. 


<레이디 조커>가 <죄의 목소리>와 다른 점은 재일조선인을 비롯한 피차별 부락민 문제에 관해 비교적 적극적으로 발언한다는 점이다. 노년의 약국 주인 모노이는 자신이 재일조선인 출신인 것은 개의치 않지만, 하나뿐인 손자가 대기업 입사 면접에서 가족 중에 재일조선인이 있다는 이유로 불합격 처리를 당한 뒤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해 범죄를 계획한다. 범인 그룹의 브레인인 고 가쓰미는 재일조선인 출신이라는 이유 때문에 번듯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제2금융권 회사에 입사해 불법적인 일을 하다가 범죄에 가담한다. 


저자는 일본의 어엿한 시민이고 성실하게 일하고 세금도 내는 재일조선인을, 단지 그들의 선조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고 배제하는 일본 사회의 문화가 글리코 모리나가 사건 같은 거대한 범죄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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