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 우치다 다쓰루의 혼을 담는 글쓰기 강의
우치다 다쓰루 지음, 김경원 옮김 / 원더박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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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내가 쓴 글이 오랫동안 읽히고 사랑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내가 쓴 글이 사람들의 뇌리에서 빠르게 잊히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그러면서도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제목의 책을 고른 것은 전자가 후자보다 크다는 방증일까. 


이 책은 일본을 대표하는 사상가인 우치다 다쓰루가 정년 퇴임 전 대학에서 진행한 마지막 강의인 '창조적 글쓰기'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 철학 책은 왜 어려운가 등등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진행한다. 


'어떤 글이 살아남는가'라는 질문은 '작가는 누구를 위해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글을 쓰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인 동시에 타인의 이해를 구하는 행위다. 주관식 시험을 볼 때 수험자로서는 아무리 답안을 잘 써도 채점자가 읽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 작가가 제 딴에는 아무리 잘 써도 독자가 그 글을 읽고 싶은 마음조차 가지지 않는다면 그 글은 '살아남는' 글이 될 수 없다. 작가는 자기표현, 자기만족을 위해 글을 쓰는 존재가 아니라 타인 또는 사회와 소통하는 방편으로 글을 쓰는 존재여야 한다.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저자에 의하면 독서는 "'지금 읽고 있는 나'와 '벌써 다 읽어버린 나'의 공동 작업"이다. 독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종이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이유는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전자책은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물리적으로 실감하기도 어렵고(종이책은 책장이 넘어갈 때마다 왼손과 오른손이 각각 잡고 있는 책의 부피와 무게가 달라진다), 다 읽은 나의 모습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그렇다면 전자책 화면에 남은 페이지 수를 표시하는 기능을 추가하면 전자책의 인기가 더 높아지지 않을까).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 문학에 포함된 반면 시바 료타로는 세계 문학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문학에 '외향(外向)'과 '내향(內向)'이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쉽게 말해 시바 료타로는 일본인을 편 드는 글을 쓰는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인을 편들지 않는 글을 쓴다. 시바 료타로는 노몬한 사건에 관한 글을 쓰려고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생존 병사를 인터뷰했지만 자국을 욕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생각에 결국 집필을 포기했다. 반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노몬한 사건에 관해 끈기 있게 취재해 <태엽 감는 새>라는 대작을 완성했다.


 자신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조직의 치부를 드러내는 글을 쓰는 일은 힘들다. 위험도 따른다. 하지만 그런 글을 쓰는 작가는 그런 글을 쓰지 않는 작가보다 훨씬 강하다. 독자에게도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다. "어느 집이라도 그 집 고유의 냄새가 나지만 그곳에 사는 인간은 깨닫지 못합니다. 자기 집은 냄새가 안 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리고 자기 집 냄새를 '냄새'라고 느끼지 못하면 자기 집에 대해 '외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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