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 하우스
앤 패칫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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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앤 패칫의 산문집 <할머니, 개, 그리고 죽도록 쓰기>를 읽은 이후로 앤 패칫의 책을 벌써 네 권째 읽었다. 소설은 <커먼웰스> 이후로 두 권째인데, <커먼웰스>와 <더치 하우스> 둘 다 작가의 가족사를 반영한 내용이라 비슷할 것 같았지만 읽어보니 그렇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혀 관련 없는 내용도 아니라서(작가의 부모는 작가가 어릴 때 이혼해 각각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렸다. 내 생각에 <커먼웰스>는 어머니쪽 가정에서의 일을, <더치 하우스>는 아버지쪽 가정에서의 일을 바탕으로 한 것 같다.) 앤 패칫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가 궁금한 독자라면 반드시 두 권을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 '더치하우스'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대저택에 누나인 메이브와 남동생 대니가 살고 있다. 남매의 아버지는 지역의 유명한 부동산 업자이고 어머니는 몇 해 전 집을 떠났다. 어머니는 안 계시지만 아기 때부터 돌봐준 가사 도우미들의 살뜰한 보살핌을 받으며 즐겁게 살고 있던 남매 앞에 어느 날 불청객이 나타난다. 얼마 후 아버지와 결혼해 새어머니가 될 앤드리아와 그의 두 딸 노마와 브라이트이다. 메이브와 대니는 노마, 브라이트와는 잘 지냈지만 그들의 어머니인 앤드리아와는 잘 지낼 수 없었고 이는 앤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메이브는 대학 진학을 기회로 집을 떠나고, 혼자 남은 대니는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계기로 집에서 아예 쫓겨난다.


여기까지만 보면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자란 소년, 소녀가 부모의 부재, 계모의 학대로 인해 집을 잃고 신분 하락을 겪는, <신데렐라>나 <소공녀>를 연상케 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메이브는 부잣집 딸로 자라다 명문대에 다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는 소녀 가장이 되어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에 다니며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대니는 다행히 아버지가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남긴 유산을 받아 명문 기숙학교를 나오고 메디컬 스쿨에도 진학하지만 그 자신은 의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고, 남들 보기에는 좋아 보였을지 몰라도 스스로는 돈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하고 반대로 하고 싶은 일은 못 하는 고통스러운 나날을 오랫동안 보낸다.


그런 두 사람에게는 (남들이 보기에는 기괴하고 이상하지만 그들 자신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 날 때마다 어릴 때 살았던(그러나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더치하우스 앞에 차를 대놓고 그 집을 지켜보는 것이다. 처음에 그들은 준비도 없이 떠나야 했던 그 집을 추억하고 그들로부터 그 집을 빼앗은 계모를 욕하기 위해 그렇게 했지만, 세월이 흐른 후 그들은 그렇게 매번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 자체가 그들에게는 '집'이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같은 부모에게서 나고 자랐고 혈연이라고는 둘밖에 없어서 누구보다 끈끈한 누나와 남동생 사이라도, 각자의 경험과 가치관, 입장과 상황에 따라 어떤 사람 또는 어떤 사건을 보는 시각이 전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메이브와 대니의 삶을 보면, 어떤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사는 것이 그 자신의 선택인지 아니면 환경의 영향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메이브와 대니는 둘 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고 똑같이 (아버지를 닮아) 셈에 밝았는데, 메이브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학과를 졸업하고도 작은 회사의 회계 담당 직원으로 일하며 대니의 뒷바라지를 하고, 대니는 의사로서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버지를 따라) 부동산업에 뛰어든다. 다시 말해 메이브는 어머니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했어야 하는 일을 하면서 어머니처럼 남을 위해 살았고, 대니는 (누가 보더라도) 아버지처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부모와 계속 같이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래도 같은 삶을 살았을까. 그들 누구와도 다른 삶을 택한 대니의 딸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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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속의 비밀 1~2 세트 - 전2권
댄 브라운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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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년 전이 되어가는) 대학 시절의 기억 중에는 댄 브라운에 관한 것도 있다. 그 시절 나는 이런저런 동아리를 기웃거리다 2학년 2학기가 되어서야 한곳에 정착했는데, 그곳이 (그때까지 신입부원을 받아준 몇 안 되는 동아리 중 하나였던) 생활도서관이었다. 생활도서관 활동을 하면서 자의로 타의로 많은 책을 읽었는데, 그때 읽은 책들 중에 댄 브라운의 <디지털 포트리스>, <디셉션 포인트>,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등이 있었다. 지금 다시 이 책들을 읽으면 그때만큼 재미있지 않을 것 같지만 그때는 밤을 새워 읽을 만큼 재미있었고, <다빈치 코드>와 <천사와 악마>는 영화로도 몇 번을 봤다(지금 생각하면 친구들이 유럽 여행 갈 때 나는 못 가니까 영화로라도 유럽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댄 브라운 하면 그 시절 생각이 자동반사적으로 나고 신작이 나오면 어김없이 사게 되는데 이 책도 그랬다. <비밀 속의 비밀>은 댄 브라운이 <오리진> 이후 8년 만에 출간한 장편 소설이다. 하버드대 소속의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 교수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노에틱 과학자인 여자 친구 캐서린 솔로몬의 학회 참석을 위해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다. 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솔로몬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랭던은 악몽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 러닝을 하다가 뜻밖의 광경을 본다. 불안감에 사로잡힌 랭던은 솔로몬에게 연락을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 행방조차 알 수 없고, 설상가상으로 '우지(UZSI)'라고 불리는 체코의 외교관계정보국에 의해 위험인물로 인식되어 쫓기는 신세가 된다. 


짐작하겠지만 전체적인 플롯은 기존의 댄 브라운 소설의 그것과 동일하고 (항상 그랬듯이) 배경이 되는 도시와 주요 사건(그리고 여성 파트너)만 다르다. 개인적으로 노에틱 과학자인 솔로몬이 책으로 발표하려고 하는 연구의 내용이 (어쩌면 소설 전체 내용보다) 흥미로웠는데, 그 내용을 거칠게 요약하면 '인간의 정신은 가능성이 무한한데 육체로 인해 가능성이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다. 육체와 정신의 관계(일원론인지 이원론인지)에 대해 나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는데, 최근에 돌아가신 분이 꿈에 나와 '(오랫동안 병을 앓다) 죽고 나니 편해졌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복수의' 사람에게 듣고, 영혼이라는 게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산 사람의 소망이 반영된 꿈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프라하에서 우지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랭던의 이야기와는 별도로 뉴욕에서 캐서린의 원고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자가 의문의 조직에게 쫓기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랭던은 이전 시리즈들을 통해 전 세계의 어떤 조직으로부터 추적을 당해도 무사히 빠져나온다는 것을 입증해서인지) 이 부분을 읽을 때가 훨씬 더 스릴 넘쳤다. 오랫동안 기다린 원고가 마침내 들어왔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작가는 연락 두절에 사본조차 없다? 편집자로서 이보다 더 공포스러운 일이 있을까 ㄷㄷㄷ 


기사를 찾아보니 이 책 출간 이후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 중에 책에 나온 장소들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솔로몬이 강연을 한 프라하성도, 랭던과 솔로몬이 머물렀던 호텔도, 랭던이 러닝을 하다가 의문의 여인과 마주치는 다리도 모두 실재하며, 현존하는 중세의 필사본 중에 가장 방대하다는 '악마의 성경(코덱스 기가스)'도 (당연히) 실제로 존재한다. 사진을 보니 더욱 무시무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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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렙! 덕질 전설 YOSHIO 1
사이토 반죠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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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최고의 불량으로 불리는 '니시 요시오'는 사실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메리네이처'의 만렙 오타쿠이다. 니시가 귀엽고 깜찍한 여자아이 취향의 애니메이션에 미쳐 있다는 사실은 그의 가장 가까운 부하들도 모르는 사실. 그러거나 말거나 니시는 콜라보레이션 카페에 가서 한정 굿즈 사기, 그동안 열심히 수집한 최애의 굿즈로 나만의 제단 만들기, 랜덤으로 나오는 최애의 굿즈를 받기 위해 아르바이트 하기 같은 퀘스트를 완수하며 자기만의 즐거운 덕질 생활을 이어 나간다.





사이토 반조의 <만렙! 덕질 생활 YOSHIO>는 싸움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량 학생 요시오가 겉모습과 다르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분위기의 애니 캐릭터 오타쿠라는 설정의 코믹 일상 만화다. 거친 인상의 불량배가 정반대 분위기를 지닌 애니 캐릭터의 광팬이라는 갭이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으로, 겉모습은 거칠어도 최애 캐릭터 앞에선 누구보다 약하고 덕질할 때만은 다른 오타쿠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 공감을 자아낸다(채소연을 좋아하는 강백호 같달까?). 가볍게 웃으면서 보기 좋은 만화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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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下 - 완결
와야마 야마 지음, 현승희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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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이 된 사토미는 24시간 영업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일하면서 바쁘게 지내는 사토미의 유일한 낙은 이따금 도쿄로 출장 오는 쿄지를 만나 밥을 얻어먹는 일 정도이다. 그러나 그 시간이 더없이 소중한 나머지, 상권 마지막에 사토미는 자기도 모르게 (한참 연상에 야쿠자인) 쿄지를 끌어안는다. '나 무슨 짓을 한 거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사토미는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만 누구 하나 마음에 드는 답을 해주지 않고, 결국 쿄지에게 문자를 보낸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상권이 출간된 지 2년 만에 하권이 출간되었다. 오래 기다린 만큼 재미있게 읽었는데 <가자> 시리즈의 완결이라고요...?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의 완결이라면 몰라도 <가자> 시리즈는 아직 갈 데가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요... (쿄지 집이라든가 사토미 본가라든가...) 분명 그럴 거라고 믿고 다음 <가자> 시리즈를 기다려 보도록 하겠습니다(아님 말고...). 그나저나 애인 만나러 오사카에서 도쿄로 올 때 551 돼지고기 만두 스무 개랑 리쿠로 오지상 치즈 케이크 두 개 사오는 남자, 상상만 해도 너무 좋다. 부럽다 사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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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면 팔 만큼 1
코지마 아오 지음, 장혜영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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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에 관한 책'도 좋아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만화를 만났다. 2026년 일본 만화대상 1위, 2025년 이 만화가 대단하다! 남성편 1위를 차지한 화제작 <책이라면 팔 만큼>이다. 


올해로 6년째 '시월당'이라는 이름의 헌책방을 운영 중인 주인은 태평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이다. 책이 좋아서 직장을 그만두고 헌책방을 인수받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막상 해보니 헌책방 주인이 하는 일 중에는 팔리지 않는 책들을 처분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다. 누군가 정성 들여 만들고 오랜 시간 귀하게 보관해 온 책을 단지 팔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처분하는 일이 그에게는 '사형집행'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책방 문을 닫지 않는 건, 책이 예전만큼 팔리고 읽히지 않는 시대에도 여전히 어떤 책을 찾고 그 책을 소중히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시월당'을 무대로 책을 통해 인연을 찾고 인생이 바뀐 사람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준다. 타계한 남편이 생전에 애지중지했던 책들을 정리하는 아내, 친구들과의 수다보다 책 속의 세계에 빠져 있는 것이 더 좋은 여학생, 평생의 로망인 서재를 만들기로 한 남자와 그를 도와주게 된 남자, 또래에 비해 고풍스러운 취미를 가진 여자, 자신만의 원칙을 고수하며 헌책방을 운영하는 노인과 용돈을 아껴 헌책을 사 모으는 대학생 등 평범한 사람들의 특별한 책 이야기가 담담하게 펼쳐진다. 


가마쿠라의 헌책방을 배경으로 고서(古書)에 얽힌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내용인 미카미 엔의 <비블리아 고서당 사건 수첩>을 좋아한 독자라면 이 만화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서울 마포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는 윤성근 작가의 실제 경험담을 담은 산문집들 - <이상한 나라의 책 읽기>, <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 낙서 수집광> - 도 함께 읽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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