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잃어버린 것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2
서유미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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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82년생 김지영>이 생각났다. 주인공 경주는 임신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다. 결혼 전에는 15년 동안 회사에 다니면서 열심히 경력을 쌓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게 되면서 슬슬 경력을 재개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복직 의사를 묻는 연락이 오자 경주는 겁부터 난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상태로 아이를 키우는 일도 벅찼는데, 회사에 다니면서 아이를 키우면 얼마나 힘들까. 복직을 말리는 사람들의 말처럼, 회사 일도 제대로 못하고 아이 키우는 일도 제대로 못하면 어떡할까. 이런 경주의 마음을 비혼인 친구들은 알 리 없고, 남자인 남편은 더더욱 모른다. 


여자는 왜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할까.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여자 인생이 바뀐다는 걸 경주도 모르지 않았다. 모르지 않았기에, 알면서 스스로 택했기에 더 화가 난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있고 가족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경주는 외롭다. 누구에게도 분노를 표출할 수 없고 슬픔을 호소할 수 없다. 몇 천 원을 내면 따뜻한 커피를 주고 한동안 머무를 수 있는 자리를 주는 카페만이 경주의 답답한 심정을 말없이 위로해 준다. 이런 것이 기혼 유자녀 여성의 삶이라니. 1억을 준다고 해도 비혼, 비출산을 택하는 여성들이 많은 이유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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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교양 - 지적이고 독립적인 삶을 위한 생각의 기술
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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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남보다 많이 아는 것만으로도 경쟁우위를 얻을 수 있었지만, 요즘처럼 누구나 쉽게 지식을 얻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는 남보다 많이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는 것보다는 아는 것을 어떻게 활용하고 변형하는 지가 더 중요한 세상. 이런 세상을 잘 살기 위해 필요한 기술로 저자는 인문학을 든다. 책에는 철학, 예술, 역사, 정치, 경제 이렇게 다섯 분야에서 걸출한 족적을 남긴 30인의 사상을 소개한다. 철학 분야에서는 소크라테스, 헤겔, 세네카, 니체, 에피쿠로스, 석가모니의 사상의 핵심을 소개하고, 예술 분야에서는 바흐, 호크니, 클림트, 셰익스피어, 베케트, 르코르뷔지에의 작품 경향 및 특징을 소개하는 식이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히틀러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악인을 이 책에 '굳이' 소개한 이유는 뭘까. 히틀러는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적의 수단을 생각해낼 만한 지능과 이를 수행할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실제로 히틀러는 대형 군중집회와 방송 장악, 출판 검열 등을 통해 대중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주입하고 비판 가능성을 차단했다. 조직 내부에서 일어나는 반목과 연합, 중상모략을 방치했고,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부하는 가차 없이 처단했다. 이런 식의 부정, 불합리는 현실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어쩌면 뛰어난 철학자, 예술가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것보다 이런 '실패 사례'를 배우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에는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문도 변한다. 경제학도 마찬가지다. 책에는 경제학 분야의 최신 동향도 간단히 정리되어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슨은 '일의 경계' 이론을 주창했다. '일의 경계' 이론이란, 쉽게 말해서 대기업이 업무를 위해 인력을 채용하는 것이 외주를 하는 것보다 비용 절감의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윌리엄슨의 이론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유효하다고 본다. 로봇과 플랫폼, 데이터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게 되어도, 로봇 노동자가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인간을 고용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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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브루너 ㅣ 일러스트레이터 2
브루스 잉먼 외 지음, 황유진 옮김 / 북극곰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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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끼, 미피를 만든 네덜란드의 일러스트레이터 딕 브루너의 일생을 담은 책이다. 1927년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서 유명한 출판업자의 장남으로 태어난 딕 브루너는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피카소나 마티스 같은 예술가가 되고 싶었지만, 가업을 계승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타협해 아버지의 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전후 호황과 아버지의 사업 수완, 딕 브루너의 탁월한 감각이 상승효과를 이뤄 출간하는 책마다 큰 성공을 거뒀다. 


어릴 때부터 동경했던 피카소를 비롯해 조르주 심농 같은 대작가에게도 극찬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 딕 브루너는 운명처럼 미피를 만났다. 계기는 사소했다. 어느 여름, 아내와 1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휴가를 떠난 곳에서 토끼 한 마리를 보았다. 아들을 위해 작은 토끼 그림을 그렸고, 이 그림을 점점 발전시켜서 우리가 잘 아는 미피 캐릭터로 완성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좋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했기 때문에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평생 그림을 그렸고, 그림 외에는 욕심내지 않았던 딕 브루너의 생애를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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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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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딸 사이의 애증을 실감나게 잘 그렸다. 안 보면 그리운데 막상 얼굴 보면 한숨이 푹푹 나는 그 기분을 어쩜 이렇게 잘 묘사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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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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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열심히 읽고 있다. 이렇게 푹 빠질 줄 모르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서 순서가 뒤죽박죽인 점이 아쉽다(<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올리브 키터리지>, <무엇이든 가능하다> 순으로 읽었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가 1998년에 발표한 첫 장편 소설이다. 배경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이 늘 그렇듯이 미국 메인 주의 작은 마을 셜리폴스다. 에이미와 이저벨은 모녀 사이다. 14년 전, 이저벨은 에이미와 단둘이 연고가 없는 셜리폴스로 왔다. 얼마 안 있어 남편감으로 적당한 남자가 나타날 거라고 믿었기에, 이저벨은 '임시 거처'로 적당한 집을 구했고 아무런 흥미 없는 구두공장에 취직했다. 하지만 남자친구 한 번 사귀지 못한 채 14년이 흘렀고, 그동안 에이미는 열여섯 살이 되고 이저벨은 구두공장의 사장 비서로 승진했다. 이저벨은 남몰래 사장인 에이버리를 짝사랑하고 있지만, 아내도 있고 장성한 아들들도 있는 에이버리는 이저벨에게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저벨은 에이미를 순진하게만 보지만, 사실 에이미는 엄마한테 숨기는 것이 아주 많다. 엄마는 에이미가 교사가 되길 바라지만, 에이미는 시 쓰기에 관심이 있다. 엄마는 에이미가 남자를 전혀 모르는 줄 알지만, 에이미는 남몰래 좋아하는 남자가 있다. 에이미는 가족이라고는 하나뿐인 엄마를 무척 아끼지만, 때로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엄마 말고 다른 가족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와 떨어지면 엄마가 보고 싶고 어서 빨리 집에 가고 싶지만, 막상 집에 가서 엄마를 보면 짜증이 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저벨보다는 에이미의 감정에 더 이입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저벨의 나이가 겨우 서른넷. 나보다도 젊다. 사실은 가족도 있고 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에도 다녔던 이저벨이 고향을 떠나 혼자서 아이를 키운 건, 사랑해선 안 될 남자를 사랑했기 때문인데, 그 남자는 아이의 존재도 모르는데 이저벨 홀로 그 모든 고통과 부담을 감내해야 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부당하게 느껴지고 화가 난다. 자신의 과거를 딸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저벨이, 그동안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그들과 좋은 친구가 되는 과정은 감동적이었다. 어쩌면 나한테 친구가 별로 없는 건 비밀을 잘 털어놓지 않기 때문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숨기는 것도 없지만...). 


에이미의 경우, 에이미의 머릿속을 휘젓는 남자들보다도 절친인 스테이시와의 관계가 더 흥미로웠다. 에이미와 스테이시는 소위 말하는 '노는 물'은 다르지만, 점심시간마다 남들 눈을 피해 숲에서 담배를 피우며 수다를 떠는 사이다. 에이미도 스테이시도 가족이나 연인에게서는 얻지 못하는 공감이나 안정을 서로에게서 얻는데, 이런 관계가 참 귀하고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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