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공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0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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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과 스몰토크를 잘하는 사람이 부럽다. 날씨 같은 가벼운 주제에 관해서라면 낯선 사람과도 얼마든지 대화를 나눌 수 있지만, 상대가 조금이라도 사적인 영역에 발을 들이는 듯한 기분이 들면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어렵다. 나는 아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스몰토크를 잘하고 심지어 즐기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털어놓기 힘든 이야기를 일부러 버스나 지하철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들려주고 그걸로 기분을 풀거나 마음의 짐을 더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안다(어차피 다시는 안 볼 사이이기에 속마음을 들려줘도 걱정이나 부담이 없는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1955년에 발표한 소설 <동네 공원>은 어느 봄날 오후 동네 공원에서 우연히 같은 벤치에 앉게 된 젊은 여성과 중년 남성의 대화를 그린다. 여자는 스무 살의 가사도우미로 매일 아이를 돌보고 과체중의 노인을 씻기고 먹이는 노동을 하며 몸과 마음 모두 지쳐 있는 상태다. 불행한 현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결혼뿐이라고 여긴 여자는 댄스 클럽에 나가서 춤을 추며 자신과 결혼해 줄 남자를 물색하지만 쉽지 않다. 남자는 가방 하나 들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것으로 생계를 잇고 있는 행상이다. 가난한 육체노동자이고, 매일 열심히 일하지만 장래가 막막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은 잠시 쉬어 가려고 들른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상대와 대화를 나누며 각자의 인생의 의미를 곱씹는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불행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쩌면 더 불행해질지도 모르는) 결혼이라는 관습적인 길을 가려고 하는 여자를 오히려 남자가 말린다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인간에게는 먹고 자는 욕구만 있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으며, 행상으로 일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자유로웠던 여행의 추억을 들려주며 결혼(이라는 예속)을 유일한 정답으로 간주하지 말라고 한다. 남자의 말이 여자의 마음에 얼마나 가닿았는지는 모르지만, 마침내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늘 동경하며 찾아다니는 (떠나지 못한) 나의 마음에는 충분히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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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자서전
마리-헐린 버티노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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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좋은 점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서 다른 인간으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소설은 다른 인간이 아니라 다른 동물이나 다른 식물, 다른 존재로도 스스로를 상상해 볼 수 있게 도와준다. 마리 헐린 버티노의 장편 소설 <외계인 자서전>이 그렇다. 소설의 주인공 '아디나'는 1977년 미국에서 태어난 인간 여자 아이지만 스스로를 외계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보이저 1호가 우주로 향하고 <스타워즈>가 탄생한 기념비적인 해에 자신이 태어날 리도 없거니와, 무엇보다 평범한 팩스 기계로 외계 동료에게 지구 관찰 일기를 보내고 답변을 받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디나는 언젠가 외계인들이 지구로 와서 자신을 데려갈 거라고 믿지만, 현실은 외계인 이야기가 끼어들 틈조차 없다. 아디나의 엄마 테레즈는 장애인 시설에서 일하며 혼자 힘으로 외동딸인 아디나를 키운다. 아디나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일하면서 자신을 키우고 있는지 잘 알기에 좋은 딸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이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가난하고 불우한 형편에 놓여 있다는 걸 모르지 않고 그 때문에 종종 괴롭고 외롭다. 다행히 아디나에게는 좋은 이웃들과 친구들이 있어서 늘 괴롭고 외롭지만은 않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아디나가 외계인과 팩스를 주고받는 일은 점점 줄어들지만, 빈자리를 아디나가 새롭게 만나는 사람들과 아디나가 좋아한 책, 음악, 영화, 연극 등이 채우며 아디나의 인생은 점점 더 넓어지고 깊어진다.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아디나가 외계인이라고 믿는 존재, 그러니까 아디나가 팩스로 지구 관찰 일기를 보내면 답변을 해주는 존재가 따로 있으며 소설 후반부에 나올 줄 알았다(아디나의 친부라든가 아니면 잘못 도착한 팩스에 진심으로 답해준 마음 좋은 어른이라든가...). 그런데 끝까지 그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정말 외계인이었던 걸까...? 그도 외계인이고 아디나도 (인간 여자아이가 아니라) 외계인이라면, 평생을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야 했던 아디나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쩌면 이 소설의 외계인은 지구 바깥의 천체에서 온 우주인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같은 인간이지만 사회적으로 힘이 없고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힘 있고 다수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지 못하는 약자, 소수자들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뿐 아니라 다른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만화 등에 나오는 외계인들도 전과 다른 시선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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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결정
오가와 요코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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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끝없는 소멸과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일본 작가 오가와 요코가 1994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은밀한 결정>은 소멸과 상실이 극단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을 전제한다. 


어떤 섬이 있다. 이 섬에선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주기적으로 어떤 단어가 소멸된다. 그러면 얼마 후 사람들은 소멸된 단어는 물론 그 단어와 관련된 기억까지 잊게 된다. 잊지 않았다는 것을 비밀경찰에게 들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소설가인 '나'는 어머니를 그렇게 잃었고 연이어 아버지도 잃었다. 자신처럼 가족을 잃고 페리마저 잃은 할아버지와 의지하며 지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른다. '나'가 살아가는 이유는 현재 작업 중인 소설을 마치는 것인데, 어느 날 자신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고 평가해 주는 편집자 R씨가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다. 


R씨마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할아버지의 도움을 받아서 자신의 집 안에 은신처를 만들고 R씨를 그곳에 살게 한다. 식량과 물자가 부족하고 이동이 제한되는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언젠가 R씨가 원래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지만 단어의 소멸은 계속되고 기억을 잃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비밀경찰들의 추적과 탄압은 점점 더 심해진다. 하루라도 빨리 소설을 완성하고 싶지만 단어가 사라지고 그에 관한 기억도 사라지면서 완성은 점점 더 요원한 일이 된다.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단어와 기억이 사라진다는, SF 같기도 하고 판타지 소설 같기도 한 설정이지만, 실제로 외세에 의해 모국어 사용을 금지 당하고 역사라는 공적 기억을 제거 당한 이력이 있는 나라의 일원으로서 소설 속 상황이 허황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외세가 아니어도 요즘 보면 유행이나 기술의 변화 등의 이유로 원래 쓰던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체하거나 단어 자체가 사어(死語)가 되는 경우가 흔해서 '나'가 겪는 불안이나 혼란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를테면 두쫀쿠가 그렇다. 한동안 하루에도 몇십 번씩 그 이름을 들었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 이야기를 안 한다. 사실상 소멸 아닌가...) 


이 소설은 지금으로부터 30년도 훨씬 전인 1994년에 일본에서 처음 출간되었고 2019년 영문판이 출간되면서 국제적으로 재조명을 받았다고 한다. 아마도 영문판 출간 이후 공교롭게도 전 지구적으로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그전에는 자유롭게 했던 활동들을 제한 또는 금지 당하는 상황을 겪으며 많은 독자들이 소설 속 상황에 더욱 깊이 공감할 수 있었던 덕분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저자는 미래를 예상하고 쓴 소설이 아니라 자신이 겪은 과거를 그린 것이라고 하는데, 역시 미래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고 사건은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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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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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 때부터 일본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 열심히 읽었던 일본 작가 중에 지금도 읽고 있는 작가는 많지 않다. 요시모토 바나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읽고 있는 몇 안 되는 작가 중 하나인데, 아무리 읽어도 신선하고 언제 읽어도 배울 점이 있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2025년에 국내에 출간된 요시모토 바나나의 산문집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타인의 욕망이나 사회의 기준이 아닌 자기 자신, 나로 사는 방법을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의 근본은 절대 변하지 않으니까 본래의 나를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이란 처음 태어났을 때의 상태를 향해 돌아가는 여정이며, 자기 자신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돌아오는 과정이 힘들 뿐이다. 나로 사는 게 좋은 건 알겠는데 '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나'를 아는 방법으로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을 제안한다. 


나와 맞지 않는 것을 하지 않는 방법은 단순하다. 거리를 걷다가 께름칙한 느낌이 들면 돌아서 다른 방향으로 걷듯이, 왠지 아닌 듯한 느낌이 들면 억지로 하기 보다 안 하는 편을 선택하는 것이 낫다. 남들이 보기에는 이상하거나 사회의 기준에는 맞지 않아도 자기 자신의 개성에 맞는 반응을 하면, 그 자체로 몸과 마음의 스트레스가 감소하고 통증이 줄어들며 좋은 기운과 에너지에 따르는 사람들과 기회가 생겨난다. 온천물이 아무리 좋아도 가슴이 답답하면 나와야 하듯이, 일이나 관계도 내가 불편하면 멈추는 것이 스스로를 구하고 더 큰 사고를 예방하는 길이다. 


이 책은 돈과 시간, 경력, 인맥 등에 관한 실용적인 조언을 하는가 하면, 저자가 오랫동안 영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영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혼이라든가, 우주와 연동된 에너지라든가). 어떤 질문이든 답은 '나로 살아라', '나와 맞지 않은 것을 하지 마라'여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라', '나를 버려라'라고 말하는 요즘의 트렌드와는 정반대 방향을 향하는 것 같지만, 나는 역시 이런 책이 좋고 이런 답을 주는 작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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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인송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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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아주 드물게 마주치는 천사 같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를 살려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미래의 나가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모르는) 사람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2014년 작고한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의 장편 소설 <플레인송>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우연히 만난 천사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콜로라도주의 작은 마을 홀트. 고등학교 교사인 거스리는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대신해 어린 두 아들을 돌보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진다. 거스리의 아들인 아이크와 보비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두렵고, 그런 엄마가 자신들 곁을 영영 떠날까 봐 또 두렵다. 고등학생인 빅토리아는 댄스파티에서 만난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살 곳을 찾고 있다. 이웃에 사는 교사 매기는 자신의 집에 빅토리아를 머물게 하지만, 매기 자신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혼자서 간병하는 처지라 임신한 빅토리아까지 거두기 어렵다. 결국 매기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에 사는 두 노인, 맥퍼런 형제에게 빅토리아를 맡기기로 한다. 


대략적인 설명만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이들 중 누구도 쉽고 편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게다가 각자가 진 삶의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상황이 펼쳐져 읽는 사람까지 괴롭게 만드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니 그저 완독한 정도가 아니라 켄트 하루프의 작품 전체를 읽어보고 싶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은 건, 이토록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이 남들이 겪는 괴로움과 외로움으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도와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아내가 겪는 고통을 우선시하는 거스리, 자신들도 힘든데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돌보려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아이크와 보비, 임신한 여학생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매기와 맥퍼런 형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은하려고 노력하는 빅토리아...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의 삶이 보잘것없고 상처투성이로 보일지 몰라도, 남보다 잘 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남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완벽하고 매끈한 어떤 이들의 삶보다 이들의 삶이 훨씬 더 거룩하고 위대해 보인다. 집 나간 인류애를 되찾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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