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인송
켄트 하루프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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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 세상이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 같은 세상에서 탈출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아주 드물게 마주치는 천사 같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의 나를 살려준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과 미래의 나가 만나게 될(지 어떨지 모르는) 사람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살게 한다. 


2014년 작고한 미국 작가 켄트 하루프의 장편 소설 <플레인송>은 지옥이나 다름없는 세상에서 우연히 만난 천사 같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야기의 배경은 콜로라도주의 작은 마을 홀트. 고등학교 교사인 거스리는 우울증에 걸린 아내를 대신해 어린 두 아들을 돌보는 일이 점점 버겁게 느껴진다. 거스리의 아들인 아이크와 보비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는 엄마를 보는 것이 두렵고, 그런 엄마가 자신들 곁을 영영 떠날까 봐 또 두렵다. 고등학생인 빅토리아는 댄스파티에서 만난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집에서 쫓겨나 살 곳을 찾고 있다. 이웃에 사는 교사 매기는 자신의 집에 빅토리아를 머물게 하지만, 매기 자신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혼자서 간병하는 처지라 임신한 빅토리아까지 거두기 어렵다. 결국 매기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농장에 사는 두 노인, 맥퍼런 형제에게 빅토리아를 맡기기로 한다. 


대략적인 설명만 봐도 짐작이 가겠지만, 이들 중 누구도 쉽고 편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게다가 각자가 진 삶의 무게에 무게를 더하는 상황이 펼쳐져 읽는 사람까지 괴롭게 만드는 대목이 없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계속 읽을 수 있었던 건, 아니 그저 완독한 정도가 아니라 켄트 하루프의 작품 전체를 읽어보고 싶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은 건, 이토록 괴롭고 외로운 사람들이 남들이 겪는 괴로움과 외로움으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끝까지 그들을 도와주려고 애쓴다는 것이다. 자신이 겪는 고통보다 아내가 겪는 고통을 우선시하는 거스리, 자신들도 힘든데 혼자 사는 할머니를 돌보려고 일부러 시간을 내는 아이크와 보비, 임신한 여학생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매기와 맥퍼런 형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보은하려고 노력하는 빅토리아...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이들의 삶이 보잘것없고 상처투성이로 보일지 몰라도, 남보다 잘 사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이고 남의 위기는 나의 기회라고 가르치는 세상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가, 내 눈에는 완벽하고 매끈한 어떤 이들의 삶보다 이들의 삶이 훨씬 더 거룩하고 위대해 보인다. 집 나간 인류애를 되찾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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