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울어라, 펜 1
시마모토 카즈히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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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이 진행 중인 야구 경기장. 투수와 타자의 기싸움이 한창인 가운데 한 남자가 그들에게로 다가간다. 선수도 아니고 감독도 아니고 심판도 아닌 남자의 정체는 다름 아닌 원작 만화가. 알고 보니 이곳에선 진짜 시합이 아닌 영화 촬영이 진행 중이었고, 영화의 원작을 그린 만화가 '호노오 모유루'가 원작자로서 촬영 현장에 등장해 주연 배우의 연기에 훈수를 두려고 하는 것이다. 원작을 그린 만화가라고 해도 영화에는 초짜이기 때문에 함부로 간섭해선 안 된다는 것이 불문율이지만, 의성어, 의태어 한 줄도 영혼을 다 바쳐 쓰는 그로서는 자신의 눈앞에서 작품이 훼손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는데...


시마모토 카즈히코의 만화 <신(新) 울어라, 펜>은 여러 의미로 강렬한 만화다. 일단 작화가 강렬하다. 제목도 <'신(新)' 울어라, 펜>인 데다가 작화가 옛날 느낌이 많이 나서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같은 작가가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연재한 만화 <타올라라, 펜>과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연재한 만화 <울어라, 펜>의 후속작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작화가 90년대 만화 풍이라서 그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작품이 담고 있는 강하고 뜨거운 에너지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느꼈다.


내용도 강렬하다. 1권의 주요 에피소드는 주인공인 만화가 호노오 모유루가 원작자로서 실사 영화 촬영 현장에 뛰어들면서 벌어지는 일련의 소동을 그린다. 호노오는 영화 촬영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짧은 내적 갈등 끝에) 간섭을 하고야 만다. 작가 자신이 만화가이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직접 겪어봤거나 주변에서 보고 잘 알 것 같아서, 비록 책 띠지에는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 실존하는 인물, 단체, 사건과는 일절 관계없습니다?'라고 적혀 있지만, 묘하게 리얼리티가 느껴졌다. 이렇게 사실적인 업계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를 어찌 뜨겁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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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1
야츠키 와카츠 원작, 아카바네 니나 지음, 하루노 타쿠 캐릭터 원안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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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니 미콜라는 시골 남작의 서녀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뒤늦게 마법 능력이 발휘되면서 왕립학원에 성녀 견습생으로 입학한다. 귀족 자제의 남학생들은 처음 보는 여학생인 데다가 미모와 마법 능력도 상당한 아이니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는 반면, 여학생들은 자신이 마음에 둔 남학생이 갑자기 나타난 아이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 이런 가운데 왕태자의 약혼녀로 여학생 무리의 탑(top) 같은 존재인 후작 영애 세라피나에게 어떤 소식이 전해진다. 최근 들어 왕태자와 아이니가 부쩍 가까워진 것으로 보아 둘 사이에 연애 감정이 싹튼 것 같다는 소식인데... 

아카바네 나나의 <악역 영애들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야츠키 와카츠, 하루노 타쿠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점은 주인공과 악역 영애가 일종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기는 하지만,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나쁘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같은 장르의 다른 작품에서는 일종의 빌런 역할을 수행할 법한 악역 영애가 가진 특징들을 좋은 덕목으로 묘사한다. 이를테면 자신이 마음에 둔 남자가 다른 여자와 친하게 지내는 것 같다는 소식을 접해도 쉽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대하며 정치적으로 행동한다는 식이다. 

이런 식으로 히로인과 악역 영애의 대결 구도가 형성된 상황에서 남자만 이득을 보는 전개가 연출될 법도 한데, 이 작품은 두 여자 사이에서 남자가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도 보여준다. 이를테면 왕태자처럼 잠깐의 관심은 인정하되 자신의 지위를 감안해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든가, 그렇지 않은 남자에 대해서는 가혹한 처벌을 내린다든가... 설정이나 전개가 신선해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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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기둥서방 하나 군은 죽고 싶어 해 2
아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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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인 2년차 요시노 카에데는 블랙 기업에 다니며 동료들에게 호구로 이용되고 있다. 그런 카에데가 마음 둘 곳은 하나라는 이름의 반려묘뿐이었는데, 하나마저도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슬픔에 빠져 있던 카에데는 어느 날 밤길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돌아갈 곳이 없다며 일주일만 머무르게 해달라는 그의 말에 문득 '하나'가 생각나 겁도 없이 그를 집에 들인 카에데. 그런데 이 남자와의 동거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살림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외로운 카에데에게 위로가 된다.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그와의 동거를 계속 이어가도 괜찮을까. 

아메코의 만화 <쓰레기 기둥서방 하나 군은 죽고 싶어 해>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위기에 몰린 여자 회사원이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면서 벌어지게 되는 일을 그린 묘한 분위기의 로맨스 만화다. 만화 속 '쓰레기 기둥서방' 하나 군은 '쓰레기'라기에는 너무나 스윗하고 유능하다. 하지만 이따금 보이는 표정이나 발언, 행동이 카에데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이 카에데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카에데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주로 남자) 또는 카에데가 관심을 보이는 사람에게 향하기 때문에 위협적으로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2권에서 카에데는 회사 동료들과 함께 짧은 여행을 간다.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동료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카에데로서는 즐거운 여행이 아니다. 그런 카에데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하나 군이 카에데를 따라와 예상치 못한 즐거운 시간을 선사한다. "너무 좋아"를 연발하는 카에데의 마음에 나도 깊이 공감... 위험해 보이는 남자에게 빠지면 위험한데, 이 사랑은 괜찮을지도? 부디 그랬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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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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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번역가 중에 김선형 번역가가 있다. 번역에 대해서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고,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조앤 디디온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번역한 이의 이름이 거의 항상 김선형이었기에 그대로 믿고 읽게 되었다. 그런 김선형 번역가가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망설이지 않고 구독했다. 매주 수요일 발송된 레터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분량도 상당했지만 내용이 원고 수준으로 많은 정보와 깊은 지식을 담고 있어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 같았다. 역시나 지난 12월 16일(제인 오스틴의 생일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고, 김선형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의 새 번역본도 출간이 되었다. 세 권 모두 읽어보지 않을 수가.


<오만과 편견>은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소설이다. 영화,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내용은 가난하지만 화목한 베넷 가의 다섯 자매 중에서도 둘째딸 엘리자베스(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선량하고 온순한 언니 제인과 달리 독립적이고 바른 말도 잘하는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언니와 연애 감정을 품고 있는 빙리 씨의 친구 다아시 씨와 만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첫만남에서 오만하고 무례한 인상을 준 다아시 씨에게 마음의 문을 닫지만, 다아시 씨는 여느 여자들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든다('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의 원조랄까?).


어릴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의 로맨스에만 주목했는데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자식이 다섯이나 있지만 전부 딸이라는 이유로 저택과 재산을 먼 친척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인 베넷 부부의 상황이라든가, 그런 집안의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빨리 좋은 혼처를 구하고 싶은 제인의 상황이라든가.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 하나는 재산이 많은 독신 남자라면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9쪽)도 다르게 읽힌다. 베넷 가의 딸들의 처지를 감안할 때 "(지금 영국에서는)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독신 여자라면 반드시 남편이 필요하다"라고 쓰는 편이 작가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원래 문장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블랙 유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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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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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작가 루스 윌슨이 쓴 <제인 오스틴을 처방해 드립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1932년생인 저자는 육십 살 생일을 기점으로 자신의 '인생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소설 전체를 다시 읽기 시작했고, 이 과정은 그 자신의 생애 전반을 회고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도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반복해 읽으며 함께 나이 들어갈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저자가 이토록 좋다고 추천하는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을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엘리에서 김선형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을 출간해 읽어보았다. 


<이성과 감성>은 1775년생인 영국의 여성 작가 제인 오스틴이 1795년에 집필을 시작해 1811년 출간한 첫 장편소설이다. 이 작품은 1995년에 개봉된 이안 감독, 엠마 톰슨, 케이트 윈슬렛 주연 영화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내용은 <이성과 감성> 다음에 출간된 <오만과 편견>의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장녀 엘리너와 감성이 풍부해 때로는 행동이 앞서기도 하는 차녀 메리앤이다. 자매는 아버지 헨리 대시우드가 갑자기 사망하고 이복오빠가 전 재산을 차지하면서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된다. 


가진 재산은 많지 않아도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두 자매를 주변 사람들(특히 남자들)이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 엘리너는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기 전부터 이복오빠의 아내의 동생, 즉 사돈총각인 에드워드와 연애 감정을 키우는 중이었다. 메리앤은 이사 간 동네에서 만난 비슷한 또래의 월러비라는 청년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브랜던 대령과 삼각관계를 이룬다. 하지만 즐거운 시간도 잠시. 엘리너는 에드워드에게 숨겨둔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메리앤은 월러비가 친지를 만나러 떠난 이후로 감감무소식이라 속앓이를 한다. 과연 두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오래전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엘리너와 메리앤이 각각 어떤 남자와 맺어질 지에만 집중했다. 이번에 읽은 새 번역본은 중요한 문장이나 장면마다 김선형 번역가의 주석이 붙어 있어 소설이 쓰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배경에 대해서도 알 수 있고, 원문에 쓰인 영어 단어의 의미도 보다 폭넓게 사유할 수 있어 좋다. 가령 이 소설이 쓰인 시대에는 장자상속과 정의의 문제가 정치,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이슈였다. 이 소설 역시 상속 문제와 함께 개인의 부도덕과 이기주의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가정과 연애라는 좁은 영역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26쪽 주석6 참조) 


우리말 제목의 '이성'과 '감성'이라는 단어는 의미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원제의 'sense'와 'sensibility'는 의미가 대립하지 않는다는 설명도 흥미롭다. sense와 sensibility는 sensible이라는 형용사를 공유하며, sensible은 상식과 분별을 갖춘 엘리너와 감수성이 예민한 메리앤의 성격을 묘사하는 경우 모두 쓸 수 있다. 김선형 번역가는 제인 오스틴이 단어가 지닌 이러한 모호성을 활용해 작품 안에서 일종의 말놀이를 한 것에 착안해 이 번역본에서도 sense, sensible, sensibility이 나오는 부분을 영어 원문 그대로 표기했다. 이러한 대목을 찾아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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