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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제인 오스틴 지음, 김선형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평점 :

믿고 읽는 번역가 중에 김선형 번역가가 있다. 번역에 대해서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고, 토니 모리슨, 마거릿 애트우드, 조앤 디디온 등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을 번역한 이의 이름이 거의 항상 김선형이었기에 그대로 믿고 읽게 되었다. 그런 김선형 번역가가 뉴스레터를 발행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망설이지 않고 구독했다. 매주 수요일 발송된 레터의 내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분량도 상당했지만 내용이 원고 수준으로 많은 정보와 깊은 지식을 담고 있어 조만간 책으로 나올 것 같았다. 역시나 지난 12월 16일(제인 오스틴의 생일이다) <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고, 김선형 번역가가 우리말로 옮긴 <오만과 편견>, <이성과 감성>의 새 번역본도 출간이 되었다. 세 권 모두 읽어보지 않을 수가.
<오만과 편견>은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작품 중에서도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소설이다. 영화, 드라마로도 여러 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내용은 가난하지만 화목한 베넷 가의 다섯 자매 중에서도 둘째딸 엘리자베스(리지)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선량하고 온순한 언니 제인과 달리 독립적이고 바른 말도 잘하는 엘리자베스는 어느 날 언니와 연애 감정을 품고 있는 빙리 씨의 친구 다아시 씨와 만나게 된다. 엘리자베스는 첫만남에서 오만하고 무례한 인상을 준 다아시 씨에게 마음의 문을 닫지만, 다아시 씨는 여느 여자들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는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점점 더 빠져든다('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의 원조랄까?).
어릴 때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의 로맨스에만 주목했는데 나이가 들어 이 소설을 다시 읽으니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인다. 이를테면 자식이 다섯이나 있지만 전부 딸이라는 이유로 저택과 재산을 먼 친척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인 베넷 부부의 상황이라든가, 그런 집안의 상황을 감안해서라도 빨리 좋은 혼처를 구하고 싶은 제인의 상황이라든가. 소설의 유명한 첫 문장 "온 세상이 인정하는 진리 하나는 재산이 많은 독신 남자라면 반드시 아내가 필요하다는 것이에요."(9쪽)도 다르게 읽힌다. 베넷 가의 딸들의 처지를 감안할 때 "(지금 영국에서는) (물려받을) 재산이 없는 독신 여자라면 반드시 남편이 필요하다"라고 쓰는 편이 작가의 의도를 더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원래 문장은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블랙 유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