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
이다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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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어른들이 '유행은 돌고 돈다'라는 말을 하면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요즘 십 대들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짧은 상의와 펑퍼짐한 바지, 허리까지 길게 늘인 배낭과 색색의 키링, 스티커 사진과 흡사한 인생네컷, 다이어리 꾸미기 등 많은 것이 내가 그들의 나이였던 시절에 유행했던 것이라서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속설에 의하면 유행은 20년 주기로 돈다는데 내 나이가 3X이니 그럴 만도... ㅠㅠ) 


뜬금없이 이런 생각을 한 건 요즘 내가 '뉴진스'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이며(사람들이 뉴진스 보면 S.E.S, SPEED, 스파이스 걸즈 생각난다고 하는데, 그 세 그룹 다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나...), 뉴진스를 보면서 세기말(& 21세기 초) 감성에 대해 생각하다 책장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바로 이다 님의 <기억나니? 세기말 키드 1999>. 


이 책에는 1982년생인 저자가 누구를 좋아하고 무엇에 열광하며 어린이, 청소년 시절을 보냈는지가 자세히 나온다. 종이인형, 문방구, 미미와 쥬쥬, 만화 대여점, 슬램덩크, 짱,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스키스, 스티커 사진, 육공 다이어리, 분신사바 등등 저자와 비슷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그와 관련된 추억을 하나 이상 떠올릴 수 있는 키워드들이 잔뜩 나온다. 개인적으로 '사랑의 빵' 저금통과 '따조'가 나오는 대목에서 헉 소리가 나올 정도로 놀랐다(작가님 이걸 기억하시다니...!).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젝키 덕질이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보다 어리지만 내가 다닌 학교에서도 젝키 팬은 소수파였고 단지 젝키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H.O.T. 팬들에게 불링을 당했던(야만의 시대...) 기억이 있어서 이런 문화는 전국 공통이었나 싶었다(참고로 전 신화팬...). 그때는 학교 주변에 문방구가 몇 개씩 있었고, 문방구에서 연예인 사진을 팔기도 했다(초상권 개념이 없던 시절...). 문방구에서 팔던 것 중에 '미스터 케이(MR.K)라는 잡지도 있었는데 기억하실지... 


작가님 말씀대로 이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이미지가 귀해서 잡지 한 장, 만화책 한 장이 그렇게 소중했다. 대여점에서 만화책 빌리면 중요한 장면을 누가 잘라서 못 본 적도 많았고, 잡지 사서 예쁜 사진이나 화보는 따로 갈무리 해두었다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활용하기도 했다. 책에 스포트 리플레이(최창민!)가 나와서 검색해 봤는데 당시 화제가 되었던 일본인 모델이 지금의 하야미 모코미치구나... 비슷한 시기에 기무라 타쿠야 리바이스 광고도 화제가 되지 않았던가?ㅎㅎ 유행이 돌아올 때마다 추억도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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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이혜림 지음 / 라곰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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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한 지 올해로 십 년 정도 되었지만,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머리로는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의 방처럼 100개 이하의 물건으로 사는 삶을 그리지만, 지금 내 방에는 책만 100권, 의류만 100벌(속옷, 양말, 모자, 가방 등등 포함)이 넘는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의 저자 곤도 마리에의 말대로 '설레는 것만 빼고 다 버렸'지만, 인생은 계속되고 설레는 것이 너무 많아... ㅠㅠ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이혜림의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졌다>. 맥시멀리스트였던 저자는 어느 날 멀쩡하던 행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 지나치게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필요 없는 물건,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물건 등등을 열심히 버렸고, 그 결과 사사키 후미오처럼 방을 거의 텅 빈 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시피 한 방에서 저자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사용하면 편한 물건이 없으니 불편했고, 단조로운 디자인의 무채색 의상만 입으니 지겨웠다. 


극단적 채우기와 극단적 비우기를 모두 경험하면서, 저자는 '무엇을 비울까'가 아니라 '무엇을 남길까'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비우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채우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불편한 것, 원치 않는 것, 낭비되는 것을 열심히 버렸고, 덕분에 얻은 공간을 새로운 물건으로 채우는 대신 남편과 세계 여행을 떠났다. 7리터 배낭을 매고 여행하면서 사는 데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저자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며 원하는 것은 모두 해보는 삶을 살고 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저자에게 생긴 변화는 소유에 국한되지 않는다. 예전의 저자는 무엇이든 시작하면 끝을 보고,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지금의 저자는 극단이 아닌 자신의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 균형 상태를 추구한다.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려고 애쓰기보다는 적당히 비우고 적당히 채우며 살아간다. 불필요한 소비와 소유의 원인이 되는 불필요한 관계, 욕망, 집착, 불안 등을 버리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미니멀 라이프의 본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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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고양이 서꽁치 문지아이들 170
이경혜 지음, 이은경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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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검은 고양이 섬이라는 뜻의 흑묘도. 다섯 남매 고양이 중 맏이로 태어난 꽁치는 어느 날 엄마로부터 엄청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엄마의 집안은 대대로 한 세대에 한 마리씩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가 나오는데, 엄마 대에서는 글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가 엄마였고, 엄마의 자식 대에서는 꽁치가 바로 그 고양이라는 것이다. 


자신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꽁치는 그 날 이후로 글 읽는 재미에 푹 빠진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간판이나 포스터 등에 적힌 글을 읽다가, 나중에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하지만 자신이 책을 읽을 줄 아는 고양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큰일이 날 게 분명하다. 책을 읽고 싶은 욕망과 책 읽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된다는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던 꽁치는 결국 고향을 떠나 더 많은 책이 있는(그러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곳으로 떠난다. 


고향을 떠난 꽁치는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책을 읽지 않고 고향에 계속 있었어도 충분히 행복했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지 않고 고향에 계속 있었다면 바로 그 장소, 바로 그 인연, 바로 그 경험을 하지는 못했을 터. 책으로 달라진 인생, 아니 묘생을 알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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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는 곳으로 오늘의 젊은 작가 16
최진영 지음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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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에 출간된 소설인데 정체 모를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과연 3년 후 실제로 팬데믹이 발생할 거라고 예상했을까. 다행히 팬데믹이 발생한 지 3년 차인 현재 작가의 예상과 유사한 정도의 참극이 벌어지지는 않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은 점, 농업 생산량이 줄고 전력 수급이 불안정해진 점, 소설의 무대인 러시아에서 전쟁이 일어난 점 등은 작가의 예상과 어느 정도 들어맞는다. 


이 소설에는 복수의 화자가 등장한다. 전염병으로 가족과 친척을 한꺼번에 잃고 아빠와 남은 친척들과 피난길에 오른 지나는 어린 여동생 미소를 데리고 피난 중인 도리를 만난다. 지나에게는 함께 피난길에 오른 건지라는 친구도 있는데, 이들은 함께 피난 생활을 하면서 유사 자매 또는 남매 같은 관계가 된다. 류는 해림과 해민, 두 아이와 생계를 위해 사랑 없는 결혼 생활을 지속해 왔다. 그러다 전염병으로 딸 해림을 잃은 후 남은 아들 해민, 남편 단과 함께 그동안 어렵게 장만한 집과 힘들게 버텨온 직장 모두를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면서 자신의 지난 결혼 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처음에는 작가가 팬데믹이 일어나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글로 표현한 소설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읽을수록 이 소설의 핵심은 팬데믹이 아니라 팬데믹, 즉 재난이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가정함으로써 지금 현재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정상적인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류가 재난 이전보다 재난 이후 오히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더 길고 부부 간의 대화가 많아졌음을 깨닫는 장면이라든가, 지나와 도리의 사랑을 혈육인 아빠와 친척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반면 생판 남인 건지나 류가 이해해 주는 장면이 그랬다. 


작가의 말대로 생략된 부분이 많은 소설이라서 후속편을 기대하게 된다. 해가 지는 곳으로 떠난 이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곳에서 영영 지지 않는 해를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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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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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내용인지 보려고 책을 펼쳤다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그만큼 흡인력이 대단하고, 2010년 한겨레문학상 심사위원들이 어째서 이 소설을 그 해의 수상작으로 뽑았는지(그것도 만장일치로) 단번에 이해됨... 


이야기의 주인공은 '소녀'다. 허구한 날 때리는 아버지와 걸핏하면 밥을 굶기는 어머니를 둔 소녀는 이들이 진짜 부모라면 이렇게 나를 괴롭힐 리 없다고 생각하며 어딘가에 있을 '진짜 엄마'를 찾아 떠난다. 소녀는 황금다방 장미언니, 태백식당 할머니, 교회 청년, 폐가의 남자, 각설이패 삼촌들, 유미와 나리 등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의지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에게 버림받거나 그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설정과 줄거리만 보면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난 소녀가 어린 나이에 가출해 험한 세상을 경험하는 모험기 같은데(맞다), 같은 경험은커녕 유사한 경험조차 없는 내가 이 소설에 크게 감정이입한 이유는 뭘까. 내 생각에 이 소설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껴보았을 감각 혹은 감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 어디에도 내가 안심하고 머물 수 있는 자리는 없는 것 같다는 불안. 나에게 주어진 삶이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는 사실에 대한 절망.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체화하는 성숙이라는 이름의 체념. 운 좋게 신뢰할 수 있고 애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도 그 사람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랑을 받을 수 없고 나 또한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걸 체감할 때의 비애 또는 무력감. 


잠깐이라도 나를 받아주었던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이 다만 '그것'뿐이라서, 그것을 하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될지를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소녀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더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자신의 이름을 겨우 알게 되고, 살면서 마음을 준 친구는 몇 명인가 있었지만 최후에는 곁에 아무도 없는 소녀의 모습을 보며, 언젠가 이다혜 기자님의 인스타그램에서 본 에밀리 메리 오스본의 그림 <Nameless and friendless>이 떠오르기도 했고... (결국 '소녀'의 삶은 모든 여성들의 삶, '소녀'의 죽음은 모든 여성들의 죽음일까) 


이 소설을 읽고, 조숙하지만 미숙하기도 한 소녀의 시점에서 소설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은희경의 <새의 선물>이 떠오르기도 했다.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끝내 불행한 방식으로 삶을 마감하는 어린 아이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을 연상할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체공녀 강주룡>, <코리안 티처> 등을 읽었을 때 느낀,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에 대한 신뢰를 다시 한 번 굳힌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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