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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르와 함께한 인생여행
미치 앨봄 지음, 윤정숙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4월
평점 :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present)은 현재(present), 즉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금은보화처럼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시간을, 사람들은 헛되이 흘려보내기 일쑤다.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쓸데없는 만남을 가지느라 정작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은 내팽개친다. 그러다가 세상을 떠날 때쯤이 되면 어느 영화의 명대사를 외치고 싶어질 것이다. "나 다시 돌아갈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작가 미치 앨봄의 신작 <도르와 함께한 시간 여행>은 시간에 관한 소설이다. 처음에 미치 앨봄이 쓴 책이라고 해서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처럼 잔잔한 일상을 통해 인생의 교훈을 전하는 내용일까 했는데 소설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몇 년 전에 읽어서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요즘 유행하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책을 주로 쓰던 작가가 제대로 된 소설을 썼다니 과연 어떤 책일까? 게다가 시간이라는 상투적인 주제를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참신하게 풀어냈을까? 여러 의문을 안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에는 도르, 세라, 빅토르 ㅡ 이렇게 세 명의 중심 인물이 등장한다. 도르는 시간을 발명한 죄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사람만이 시간을 측정한다. 오직 사람만이 정각마다 시보를 울린다. 사람만이 시간을 재기 때문에 다른 창조물들은 겪지 않는 두려움을 느낀다. 바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두려움이다." (p.23) 여고생 세라는 이혼한 어머니와 트러블과 좋아하는 남자아이의 냉대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다. 이렇게 쉽게 삶을 져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백만장자 노인 빅토르는 시한부 선고를 받고 어떻게든 수명을 늘리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삶이라는 것이 사람에 따라 얼마나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인지를 보여준다.
세 사람은 서로 다른 시공간에 있지만 어느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알게 된다. 그들 각자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지를 말이다. 셋 중에서 나는 빅토르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도르와 세라가 시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라면, 빅토르는 오히려 시간에 너무 집착하기 말고 초연하게 살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보여준다. 분초를 다투며 빡빡하게 시간을 관리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다보면 내가 시간을 관리하는 것인지, 시간이 나를 관리하는 것인지가 모호해지고, 시간에 종속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발명품이다. 시간을 어떻게 늘리고 쪼개쓸까 고민하는 대신, 그 시간에 좋아하는 일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중한다면 인생은 더욱 풍족해질 것이다.
"'시간이 끝이 없다면 그 무엇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상실도 희생도 없다면 우리는 그 무엇에도 감사할 수 없습니다.' 도르는 빅토르의 눈물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동굴이 떠올랐다. 자신이 이 여행에 선택된 이유를 마침내 깨달았다. 그는 영겁의 시간을 살았다. 빅토르는 영겁을 원했다. 도르는 그 노인의 마지막 말, 이제는 빅토르와 나누게 된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수세기가 걸렸다. '신이 사람의 수명을 정해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왜죠?' '한 사람 한 사람이 귀하도록.'"(p.295)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시간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가 생각해 보았다. 도르처럼 시간과 인생을 바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라처럼 삶을 쉽게 포기할 생각을 한 적은 없는지, 빅토르처럼 시간의 노예가 되어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가령 이십대에는 무엇을 해야 한다든가, 삼십대가 되기 전까지 무엇을 해야 한다든가, 연초 또는 연말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한다든가 하는 규칙 내지는 관습도, 사실 생각해보면 내 의사와 상관 없이 의무적으로 행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의 주체는 나인데, 시간에 이끌려서 할 일을 정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통해 인생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행 같은 소설 <도르와 함께한 시간여행>. 이 봄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