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더 월드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밝은세상 / 2013년 4월
평점 :
절판


 


현존하는 서방 세계의 소설가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단연 더글라스 케네디다. 기욤 뮈소의 낭만적인 분위기도 좋고, 댄 브라운의 역사와 문화, 종교 등을 적절히 배치하는 능력도 좋아하지만, 기욤 뮈소는 몽환적인 느낌 때문에 가볍게 느껴지고, 댄 브라운은 종교성이 강해서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그에 반해 더글라스 케네디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재미있으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도 적절히 무게가 있어서 딱 좋다.


이렇게 말해도, 사실 이제까지 읽은 그의 작품은 <빅 픽처>, <위험한 관계>, 그리고 신작 <리빙 더 월드>까지 고작 세 권에 불과하니 민망할 따름이다. 사놓고도 읽지 않는 변명을 대보자면, 일단 그의 소설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좀처럼 멈추기 어려울 만큼 몰입이 잘 되기 때문에 웬만큼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은 때에는 읽기를 주저하게 된다. 이번 <리빙 더 월드>도 자기 전에 잠깐 읽으려고 했는데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계속 읽다보니 어느새 밤을 꼴딱 새워버렸다. 또한 웬만한 '막장 드라마' 못지 않은 전개 때문에 정신적으로 충격이 큰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대표작 <빅 픽처>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딱 좋겠다 싶을 만큼 사건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고 상황이 극적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살면서 한 번 겪을까말까 한 일들이 주인공에게 연속으로 닥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내 기분까지 아찔해진다.


게다가 신작 <리빙 더 월드>는 <빅 픽처>와 <위험한 관계>를 연상시키는 요소가 많아서 세 권을 동시에 읽을 때 입을 만한 충격을 받았다. 전반부는 <위험한 관계>와 매우 흡사하다. 불행한 가족사를 딛고 독립적인 여성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주인공이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 예기치 않게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다는 설정은 <위험한 관계>의 시작 부분과 똑같다. 게다가 남자가 출산 이후 급변하고, 주인공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약물을 복용했다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것까지도 비슷하다. 후반부는 <빅 픽처>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았다. 주인공이 신분을 숨기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이 그렇고, 우연한 계기로 엄청난 일을 해내서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까지 유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리빙 더 월드>가 그저 전작을 반복하거나 결합하는 수준에 그치는 작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러한 반복과 결합은 오랜 세월동안 작품 활동을 해온 작가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고, 그의 작품의 특징 내지는 세계관을 구축해가는 과정으로 보인다. 오히려 이번 작품에서 나는 더글라스 케네디의 세계관이 좀 더 심도있게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알려진 대로 더글라스 케네디는 미국 중산층 사회의 모순과 추악한 이면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고 인생의 참된 의미를 추구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하버드 출신의 영문과 교수로 설정된 이번 작품의 주인공 역시 겉으로는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중산층 여성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의 내면에는 불우한 어린 시절과 부모와 갈등이 내재되어 있고, 사귀는 남자마다 그녀를 불행하게 만든다. (게다가 그 남자들 대부분이 그녀를 버린 아버지의 잔상처럼 보인다.)


작가가 인생의 참된 의미를 도출해내는 방법도 매우 정교해졌다. <빅 픽처>만 해도 설정의 특이함만 보였는데, <리빙 더 월드>를 읽으면서 작가는 안정된 삶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송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은 주어진 삶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 그러나 막상 그 모두를 잃고나니 예전의 생활이 그리워졌다. 삐걱거리고 답답하기 그지 없었던 그 생활이 말이다. "'인생에서 가벼운 짐을 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목적지에 다 와 간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모든 일이 엇나가기 시작하는 게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 ...... (p.39)" 사람은 누구나 현재의 생활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그러나 그 욕망이 정말로 실현되었을 때 사람은 과연 행복할까?


일상의 무게를 통해 인생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계속 찾아 읽게 될 것 같다. 물론 시간이 허락하고 정신이 여유로울 때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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