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 형제 편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이노우에 마기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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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은 코난이 주인공이고 <소년탐정 김전일>은 김전일이 주인공인 것처럼, 대부분의 추리물은 주인공 탐정이 한 명이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작가 이노우에 마기의 최신작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는 다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형제편과 자매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형제편의 주인공은 형제 탐정단이 주인공이고, 자매편의 주인공은 자매 탐정단이 주인공이다. 한마을에 사는 이들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자 다르게 추리한다. 추리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같을 때도 있고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가령 첫 번째 사건에서 형제 탐정단과 자매 탐정단은 한 남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노부부가 운영하는 오래된 상점 앞을 들이받고 즉사한 사건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알고 보니 운전자는 사고 당시 발생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운전 중에 먹고 있던 닭꼬치구이가 목구멍에 박히면서 사망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제 탐정단은 꼬치에 남아 있던 닭꼬치 개수에, 자매 탐정단은 그것이 양념구이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각자 추리를 펼친다. 두 번째 사건은 도난 사건인데, 범인이 남긴 동일한 메시지를 형제 탐정단과 자매 탐정단이 각각 다르게 해석하면서 서로 다른 결말로 치닫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두 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구성도 기발하고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형제 편과 자매 편 각각의 가족 드라마 같은 서사도 재미있다. 형제 편은 미남 요리사인 맏형 겐타, 직감이 뛰어난 고등학생 둘째 후쿠타, 두뇌가 명석한 중학생 셋째 가쿠타, 밝고 순수한 초등학생 막내 료타, 이렇게 4형제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해외 근무 중인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즐거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추리는 둘째와 셋째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데, 감이 좋은 후쿠타와 머리가 좋은 가쿠타의 티키타카가 일품이다. 


자매 편은 맏이지만 가장 철이 없는 장녀 사사미,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둘째 쓰쿠네, 우등생인 막내 모모, 이렇게 3자매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긴나미 상점가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닭꼬치구이(야키토리) 가게의 딸들이다(참고로 사사미는 닭가슴살, 쓰쿠네는 닭고기 경단, 모모는 닭넓적다리살을 뜻한다). 형제 편이 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에 기반해 추리를 풀어간다면, 자매 편은 그들이 나고 자란 상점가 안팎에서 얻은 정보를 중심으로 추리를 진행한다. 특전으로 받은 소책자에는 형제 편의 어머니 레이 씨의 이야기가 실린 초단편이 실려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이니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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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무레 요코 지음, 이수은 옮김 / 라곰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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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 라이프'라는 개념을 알게 된 이후로 단순한 생활을 지향하며 수시로 정리하는 습관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정리할 때마다 버릴 게 많아도 너무 많다. 버리는 물건이 많은 만큼 버리지 못하는 물건도 많다. 최근 몇 년 동안 쓴 적도 없으면서, 앞으로 쓸 일도 없다는 걸 알면서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대체 뭘까. 이건 다른 무엇도 아닌 내 마음의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하던 차에 읽게 된 책이 무레 요코의 소설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책은 각자의 이유로 버리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는 다섯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못 버리는 언니, 버리려는 동생>은 같은 부모를 둔 혈육이지만 서로 너무 다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정리에 대한 생각도 너무 다른 자매의 이야기를 그린다. 비혼인 언니는 일찍 자립해서 경제관념은 뛰어나지만 물건 버리기에는 젬병이다. 반대로 대학 졸업 후 바로 결혼해서 사회 경험이 없는 동생은 경제관념은 낮지만 물건 버리기는 잘한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자매가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며 관계를 회복해 가는 전개가 인상적이었다. <쌓아두는 엄마>는 혼자 사는 칠십 대 엄마가 육체적, 정신적 한계로 인해 버리지 못하고 집에 쌓아둔 물건들을 정리하는 딸의 복잡한 심경을 잘 보여준다.


<책벌레와 피규어 수집가의 신혼집 논쟁>은 책을 좋아하는 여자와 피규어 수집이 취미인 남자가 결혼을 위해 각자의 짐을 정리하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처럼 처음엔 각자의 소유물을 정리하고 처분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해도 종국에는 해소되는 전개가 이어질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전개가 이어져서 신선했다. <남편의 방>은 입원한 남편의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동안의 결혼 생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물건을 발견한 아내의 이야기를 그린다. <며느리의 짐정리>는 남편과 아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며느리의 짐을 정리하는 시아버지의 이야기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넷플릭스 시리즈 <곤도 마리에 :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처럼 물건을 버리지 못했던 사람들이 정리를 통해 문제를 인식하고 관계를 회복하면서 인생이 바뀌는 내용일 줄 알았다. 읽어보니 이 책은 버리는 과정이나 버리고 난 후의 변화가 아닌 버리지 못하는 문제 자체에 주목한다. 살 빠지면 입겠다고 몸에 안 맞는 옷을 가지고 있거나 몇 년째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외국어 교재를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가 어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그 물건의 가격이나 용도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상징하는 어떤 기대나 미련, 집착 때문이다. 역시 마음을 정리해야 물건도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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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 자매 편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
이노우에 마기 지음, 김은모 옮김 / 북스피어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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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 코난>은 코난이 주인공이고 <소년탐정 김전일>은 김전일이 주인공인 것처럼, 대부분의 추리물은 주인공 탐정이 한 명이다.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 작가 이노우에 마기의 최신작 <긴나미 상점가의 사건 노트>는 다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형제편과 자매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형제편의 주인공은 형제 탐정단이 주인공이고, 자매편의 주인공은 자매 탐정단이 주인공이다. 한마을에 사는 이들은 하나의 사건을 두고 각자 다르게 추리한다. 추리 끝에 도달하는 결론은 같을 때도 있고 같지 않을 때도 있다. 


가령 첫 번째 사건에서 형제 탐정단과 자매 탐정단은 한 남자가 자동차를 운전하다가 노부부가 운영하는 오래된 상점 앞을 들이받고 즉사한 사건에 대해 조사하게 된다. 알고 보니 운전자는 사고 당시 발생한 충격 때문이 아니라 운전 중에 먹고 있던 닭꼬치구이가 목구멍에 박히면서 사망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형제 탐정단은 꼬치에 남아 있던 닭꼬치 개수에, 자매 탐정단은 그것이 양념구이였다는 사실에 주목해 각자 추리를 펼친다. 두 번째 사건은 도난 사건인데, 범인이 남긴 동일한 메시지를 형제 탐정단과 자매 탐정단이 각각 다르게 해석하면서 서로 다른 결말로 치닫는 전개가 인상적이다. 


이 소설은 하나의 사건을 두 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구성도 기발하고 사건 자체도 흥미롭지만, 형제 편과 자매 편 각각의 가족 드라마 같은 서사도 재미있다. 형제 편은 미남 요리사인 맏형 겐타, 직감이 뛰어난 고등학생 둘째 후쿠타, 두뇌가 명석한 중학생 셋째 가쿠타, 밝고 순수한 초등학생 막내 료타, 이렇게 4형제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어머니와 해외 근무 중인 아버지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며 즐거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추리는 둘째와 셋째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데, 감이 좋은 후쿠타와 머리가 좋은 가쿠타의 티키타카가 일품이다. 


자매 편은 맏이지만 가장 철이 없는 장녀 사사미, 자신의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둘째 쓰쿠네, 우등생인 막내 모모, 이렇게 3자매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긴나미 상점가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닭꼬치구이(야키토리) 가게의 딸들이다(참고로 사사미는 닭가슴살, 쓰쿠네는 닭고기 경단, 모모는 닭넓적다리살을 뜻한다). 형제 편이 주로 돌아가신 어머니와의 추억에 기반해 추리를 풀어간다면, 자매 편은 그들이 나고 자란 상점가 안팎에서 얻은 정보를 중심으로 추리를 진행한다. 특전으로 받은 소책자에는 형제 편의 어머니 레이 씨의 이야기가 실린 초단편이 실려 있다. 감동적인 이야기이니 마지막에 읽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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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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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시선은 무척 신경 쓰지만 비인간 존재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김멜라의 소설 <환희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화자가 곤충(들)이다. 한점털보톡토기, 빨간집모기, 집유령거미, 누에나방, 이렇게 네 곤충은 그들이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인간 중에서도 '비생식 동거 집단'으로 분류되는 레즈비언 커플 버들과 호랑을 관찰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번식을 목표로 살아가는 곤충의 삶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이들은 번식을 목표로 하지 않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버들과 호랑의 삶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의 시선일 뿐이고, 버들과 호랑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삶은 결코 흥미로운 것이 못 된다. 버들과 호랑은 둘 다 과거에 남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버들은 오랫동안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다. 호랑은 연인으로서 버들을 위로하고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고 싶지만 이따금 자신도 한계를 느낀다. 게다가 이들은 가난하고 일자리도 불안하고 기댈 가족도 없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닐 수도 없는데 번식이라니. 곤충도 이해하는 이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실제로) 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인간이 아닌 화자가 레즈비언 커플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김멜라 작가의 전작인 <저녁놀>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에 <저녁놀>을 읽을 때에는 비인간 화자(그것도 XX)를 내세운 것 자체가 충격에 가까울 만큼 신선했던 반면, <환희의 책>을 읽을 때에는 비인간 화자를 내세운 것보다도 비인간 화자인 곤충이 얼마나 다양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를 작가가 상당히 공을 들여 묘사한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곤충에 대해 더 넓게 알고 깊게 이해할수록 인간에 대해서도 더 넓게 알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곤충에 대해 이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한 건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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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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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경성 제일 끽다점'이라는 부제를 보고 나서야 개화기가 배경이겠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건 글쓴이가 박서련 작가이기 때문이다. 데뷔작 <체공녀 강주룡>을 시작으로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폐월 : 초선전> 등 이제까지 박서련 작가가 발표한 책들을 착착 읽어온 독자로서 이 책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짐작한 대로 개화기다. 1926년 부산항. 영화 감독을 꿈꾸는 경손은 관부연락선을 촬영하기 위해 부산항에 갔다가 뜻밖의 인물과 재회한다. 그 인물은 경손의 조카 미옥. 조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엄마 나이 뻘인 사촌 누나의 딸이기 때문에 미옥은 경손보다 한 살이 많을 뿐이다. 경손은 어릴 때 목사인 미옥의 아버지를 동경했고 그의 딸인 미옥을 미워했다. 그랬던 미옥이 너무나도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걸 보고 경손은 깜짝 놀란다. 


그로부터 1년 후 경성에서 또 다시 경손과 미옥은 재회한다. 이번에 미옥은 경손에게 '끽다점(카페)'를 하자고 제안한다. 안 그래도 영화 일이 잘 안 풀려서 수입이 좋지 않았던 경손은 미옥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끽다점 이름을 '카카듀'라고 짓는데, 카카듀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막극 '초록 앵무새(Der grune Kakadu)'에서 따왔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경손은 카카듀를 경성 제일의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미옥도 그 뜻에 따르는 듯하지만...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박서련 소설 맞나 싶었다. 그동안 여성 화자를 주로 내세웠던 박서련 작가가 이 소설에선 남성 화자를 내세운 것도 낯설었고, 이전 작품들은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에 펀치를 날리는 내용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서야 박서련 작품 맞구나, 이번에도 박서련이 박서련 했구나, 라고 느꼈으니 나처럼 초반만 읽고 단정 짓지 말고 무조건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에야 알게 된 사실이 또 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이경손, 현앨리스 등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상당히 알려진 인물들이라서 이들에 관한 책도 있다고. <체공녀 강주룡>을 읽을 때에도 느꼈지만 박서련 작가는 역사 속 인물(여성)의 삶을 재구성하고 재조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가까운 남성들(아버지, 남편, 애인, 친척)에게 이용 당하는 삶을 살아온 여성이 관계를 역전하는 이야기 전개는 <폐월:초선전>과 유사하다. 이 작품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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