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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듀 - 경성 제일 끽다점
박서련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카카듀>. 제목만 봐서는 무슨 내용인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경성 제일 끽다점'이라는 부제를 보고 나서야 개화기가 배경이겠구나 짐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기로 결정한 건 글쓴이가 박서련 작가이기 때문이다. 데뷔작 <체공녀 강주룡>을 시작으로 <마르타의 일>, <더 셜리 클럽>, <당신 엄마가 당신보다 잘하는 게임>, <코믹 헤븐에 어서 오세요>, <폐월 : 초선전> 등 이제까지 박서련 작가가 발표한 책들을 착착 읽어온 독자로서 이 책도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짐작한 대로 개화기다. 1926년 부산항. 영화 감독을 꿈꾸는 경손은 관부연락선을 촬영하기 위해 부산항에 갔다가 뜻밖의 인물과 재회한다. 그 인물은 경손의 조카 미옥. 조카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엄마 나이 뻘인 사촌 누나의 딸이기 때문에 미옥은 경손보다 한 살이 많을 뿐이다. 경손은 어릴 때 목사인 미옥의 아버지를 동경했고 그의 딸인 미옥을 미워했다. 그랬던 미옥이 너무나도 아리따운 여인이 되어서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걸 보고 경손은 깜짝 놀란다.
그로부터 1년 후 경성에서 또 다시 경손과 미옥은 재회한다. 이번에 미옥은 경손에게 '끽다점(카페)'를 하자고 제안한다. 안 그래도 영화 일이 잘 안 풀려서 수입이 좋지 않았던 경손은 미옥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인다. 두 사람은 끽다점 이름을 '카카듀'라고 짓는데, 카카듀는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단막극 '초록 앵무새(Der grune Kakadu)'에서 따왔다. 예술가 기질이 다분한 경손은 카카듀를 경성 제일의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하고 미옥도 그 뜻에 따르는 듯하지만...
사실 처음 이 소설을 읽을 때는 박서련 소설 맞나 싶었다. 그동안 여성 화자를 주로 내세웠던 박서련 작가가 이 소설에선 남성 화자를 내세운 것도 낯설었고, 이전 작품들은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사회에 펀치를 날리는 내용이었는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서야 박서련 작품 맞구나, 이번에도 박서련이 박서련 했구나, 라고 느꼈으니 나처럼 초반만 읽고 단정 짓지 말고 무조건 끝까지 읽어보길 권한다.
마지막에야 알게 된 사실이 또 있다. 이 소설의 등장인물인 이경손, 현앨리스 등은 모두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상당히 알려진 인물들이라서 이들에 관한 책도 있다고. <체공녀 강주룡>을 읽을 때에도 느꼈지만 박서련 작가는 역사 속 인물(여성)의 삶을 재구성하고 재조명하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가까운 남성들(아버지, 남편, 애인, 친척)에게 이용 당하는 삶을 살아온 여성이 관계를 역전하는 이야기 전개는 <폐월:초선전>과 유사하다. 이 작품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