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책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2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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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인간들의 시선은 무척 신경 쓰지만 비인간 존재의 시선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이는 김멜라의 소설 <환희의 책>을 읽고 든 생각이다. 이 소설은 특이하게도 화자가 곤충(들)이다. 한점털보톡토기, 빨간집모기, 집유령거미, 누에나방, 이렇게 네 곤충은 그들이 '두발이엄지'라고 부르는 인간 중에서도 '비생식 동거 집단'으로 분류되는 레즈비언 커플 버들과 호랑을 관찰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번식을 목표로 살아가는 곤충의 삶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이들은 번식을 목표로 하지 않는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버들과 호랑의 삶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은 타자의 시선일 뿐이고, 버들과 호랑이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는 삶은 결코 흥미로운 것이 못 된다. 버들과 호랑은 둘 다 과거에 남성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적이 있고, 버들은 오랫동안 우울증과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다. 호랑은 연인으로서 버들을 위로하고 어떻게든 힘이 되어 주고 싶지만 이따금 자신도 한계를 느낀다. 게다가 이들은 가난하고 일자리도 불안하고 기댈 가족도 없다.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고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다닐 수도 없는데 번식이라니. 곤충도 이해하는 이들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실제로) 있다는 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소설은 인간이 아닌 화자가 레즈비언 커플을 관찰한다는 점에서 김멜라 작가의 전작인 <저녁놀>과 유사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내 경우에 <저녁놀>을 읽을 때에는 비인간 화자(그것도 XX)를 내세운 것 자체가 충격에 가까울 만큼 신선했던 반면, <환희의 책>을 읽을 때에는 비인간 화자를 내세운 것보다도 비인간 화자인 곤충이 얼마나 다양하고 섬세한 존재인지를 작가가 상당히 공을 들여 묘사한 점이 더 인상적이었다. 곤충에 대해 더 넓게 알고 깊게 이해할수록 인간에 대해서도 더 넓게 알고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곤충에 대해 이 정도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한 건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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