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지는 마음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3
김멜라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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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면 행복하다. 김멜라 작가가 2023년에 발표한 산문집 <멜라지는 마음>을 읽는 내내 그랬다. 이 책은 2014년 등단한 소설가 김멜라가 처음으로 발표한 산문집이다. 이제까지 김멜라 작가가 발표한 책을 네 권 읽었는데(<제 꿈 꾸세요>, <적어도 두 번>, <환희의 책>, <없는 층의 하이쎈스>), 읽으면서 이렇게 기발하고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이 책을 읽었는데, 작가님이 어찌나 예쁜 사랑을 하고 계신지. 멜로 드라마가 따로 없다 싶고(사실 나는 작가님의 필명인 '멜라'가 멜로의 변형인 줄 알았다)그래서 그렇게 사랑스러운 소설들을 쓸 수 있으셨구나 싶다.


어린 시절 이야기나 가족들 이야기도 좋았지만, 저자와 저자의 오랜 애인 '온점' 님, 두 분의 일화들이 특히 좋았다. 작가님의 묘사에 따르면, 온점 님은 대화 중에 청파동이라는 지명이 나오자 아무렇지 않게 최승자 시인의 시 <청파동을 기억하는가>를 들려주는 사람. 방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화장실에서 나올 때 마치 재미난 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점프"라고 외치며 뛰어내리는 사람. 위층에서 누수가 일어나 작업실이 엉망이 되자 벽지 발라주신 분이 벽지를 잘 발라서 피해가 덜하다고 말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을 어떻게 안 사랑할 수 있을까 싶고, 이런 사람에게 사랑 받는 작가님도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이쯤 되면 짐작했겠지만, '멜라'의 뜻도 온점 님과 관련이 있다.)


창작, 글쓰기에 대한 대목들도 좋았다. 등단 이후에도 몇 년이나 청탁을 거의 받지 못했던 저자는 아르바이트, 계약직,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소설을 썼다. 불안한 생활을 견디면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유. 나에게는 이것이 글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그런 사람답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한다. 언니, 엄마, 조카, 비(雨), 수박, 새, 자서전, 그리고 물론 제일은 온점 님... ^^ 부디 앞으로도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많이 써주시고, 예쁜 사랑 오래오래 하셨으면 좋겠다. 두 분의 환갑, 칠순, 팔순 잔치 이야기도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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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엔드 소설Q
이주란 지음 / 창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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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도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 아니, 나이가 들수록 관계를 정리하는 일은 어렵다. 어릴 때처럼 학교나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사귀는 기회가 드물기에, 주변에 남은 사람들로부터 작은 흠이나 큰 허물이 보여도 안 본 것처럼, 안 보이는 것처럼 지내는 것이 나에게 이롭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될 관계는 정리되는 것이 인간사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정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관계는 큰맘 먹고 정리하는 것이 마땅한 경우도 있다. 이주란의 소설 <해피 엔드>의 주인공 '기주'의 상황이 그렇다.


기주에게는 안 본 지 2년 6개월이 된 친구 '원경'이 있다. 공개적으로 다투고 공식적으로 절교한 사이이기 때문에 더 이상 '친구'라고 부를 수 없는 관계인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기주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다. 기주와 원경을 모두 아는 친구들은 두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로 멀어졌다고, 이제 그만 화해하고 원래의 관계로 돌아가라고 말하지만, 원경은 몰라도 기주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기주에게 원경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공유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친구였고, 그렇기 때문에 원경이 과거에 한 어떤 말이나 행동이 기주에게는 치명적인 배신처럼 느껴진 탓이다.


소설은 기주가 원경에게서 오랜만에 메시지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원경과 소식을 끊은 후 집과 직장을 오가며 조용히 살고 있던 기주는, 겉으로 뚜렷하게 내색하지는 않지만 속으로는 심한 요동을 느낀다. 제주에서 서울로 장례식에 참석하러 온 애인과 문자로 대화하고, 집 앞 편의점 사장과 담소하고, 돌아가신 윗집 할아버지를 추모하고, 직장 사람들과 별것 아닌 일로 웃고 떠드는 동안에도 머릿속 한구석에선 원경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하다, 결국 용기를 내어 회사 동료인 장과장과 함께 원경이 운영하는 카페로 찾아간다. 그곳에서 기주는 뜻밖의 만남을 가진다.


(스포일러 주의!!) 기주는 원경을 만나기 위해 원경의 카페로 찾아갔지만, 공교롭게도 원경이 부재중이라 원경과 만나지 못한다. 그 대신 원경의 어머니와 동생, 조카를 만나는데, 이들은 원경의 '친구'라고 자신을 소개한 기주에게 무조건적인 친절을 베푼다. 원경과 다투고 2년 반이나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른 채 그저 원경의 친구라는 이유로 자신을 다정하게 대하는 이들을 보면서 기주는 마음의 변화를 느낀다. 어쩌면 자신이 원경에게 (멋대로) 너무 큰 기대를 했고, 그 기대를 무너뜨렸다는 이유로 (멋대로) 원경을 너무 오래 미워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비로소 하게 된다.


나는 왜 그토록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 했을까. 기쁨이나 슬픔은 그렇지 않은데 나조차도 이해하기 어려운 이 오래되고 깊은 마음들은 왜 꼭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어했는지 잘 모르겠다. (153쪽)


기대가 클수록 관계에 대한 실망감은 커진다는 것은, 친구 관계뿐 아니라 다른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 부모니까, 자식이니까, 애인이니까, 배우자니까 이렇게 해야지, 이 정도는 해줘야지, 라는 기대가 눈 앞에 있는 사람의 실체를 못 보게 만들고 진심을 가리고 관계를 망친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기주는 원경과의 관계만 문제인 것이 아니라 다른 관계에도 문제가 있다. 가난하고 불우했던 원가족과 이별하고 혼자서 자유롭게 살라는 어머니의 말에, 다른 사람이라면 홀가분함을 느낄 법도 한데, 기주는 어떻게 엄마가 되어서 딸에게 그런 말을 하느냐고 서운함을 느낀다. 남자친구가 제주에 살아서 자주 못 보는 것에도 불만이 있지만, 여자친구로서 남자친구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 체념한다. 


그렇게 해소되지 않은 채로 남은 마음들은 (어머니나 남자친구에 비하면) 중요하지 않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지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돌아가신 윗집 할아버지의 빈 집을 챙기고, 혼자서 매대를 지키는 편의점 사장님의 안부를 걱정하고, 남친 선물로 산 반바지를 직장 동료에게 건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라도 애정이 순환되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면 그렇지 않은 관계에 나누어줄 애정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면 역시 정리할 필요가 있는 관계는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지만, 기주가 원경과의 일 때문에 알게 된 것들이나 만나게 된 인연들을 생각하면 어느 관계에나 그 나름의 효용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관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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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매장
팡팡 지음, 문현선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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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소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이 있었다. 위화, 모옌, 옌롄커 등 그동안 읽은 중국 작가의 소설 대부분이 중국의 근현대사를 다루고 있고, 대체로 어둡고 참혹한 내용이 많아서 읽는 내내 괴로웠던 기억이 강렬했던 탓이다. 그래서 이 책이 SNS에서 화제가 될 때에는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누군가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말하는 걸 듣고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읽어보니 과연 올해의 책으로 고려할 만하다. 중국의 1950년대 토지개혁을 다루고 있고, 어둡고 참혹한 내용이 나오는 것은 맞지만, 내용을 풀어가는 방식이 그동안 읽은 중국 소설이나 여느 역사 소설보다는 오히려 히가시노 게이고 풍의 추리, 미스터리 소설에 가까워서, 이 장르의 팬인 사람으로서 끝까지 흥미를 가지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은 한 여인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여인은 과거의 기억이 하나도 없다.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해서, 의식을 잃고 강물에 떠내려온 그를 구해준 의사가 붙여준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이 딩쯔타오였다. 몇 년 후 딩쯔타오는 자신을 구해준 의사와 결혼했고 칭린이라는 아들도 얻었다. 그러나 칭린이 학교에 들어갈 즈음 의사가 사고로 죽었고, 딩쯔타오는 가정부로 일하며 혼자서 아들을 키웠다. 칭린은 잘 자라서 한 회사의 지사장 자리에 올랐고, 효심이 깊은 그는 어머니를 위해 대저택을 구입했다. 공교롭게도 그 때부터 딩쯔타오가 정신을 놓아버렸고, 어머니 간병과 회사 일을 병행하며 바쁘게 지내던 칭린은 사장의 아버지인 류진위안이라는 노인과 대화를 나누다 마음에 걸리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칭린은 어머니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제는 자신이 어머니에 대해 잘 모른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의 어머니, 인사불성이 된 어머니가 어떤 일로 인해 엄청나게 변해버린 듯했다. 더이상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가 아니었다. 완전히 다른 사람, 비밀을 간직한 사람 같았다. 그 비밀 때문에 어머니가 거대한 책처럼 느껴졌다. 지금까지 표지만 알았을 뿐 내용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는 책. (98-99쪽)


앞에도 썼듯이 이 소설은 전개 방식이 추리, 미스터리 소설 같다. 칭린은 건축설계를 전공한 기업인으로 탐정이나 형사와는 거리가 먼 전공과 직업을 가졌으나, 이 소설에서는 어머니의 과거라는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수행한다. 칭린은 어머니의 과거가 이전에 어머니가 말한 영문 모를 단어들,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일기, 주변 사람들의 기억(증언) 등과 관련이 있다고 짐작하고 이들을 '단서'로 활용해 진실에 다가간다. 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친구 룽중융의 연구를 돕다가 우연히 어머니의 고향과 어머니가 살았던 저택을 찾는 행운을 만나는데, 이 저택은 사실상 '사건 현장'이다. 그렇다면 '사건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생존자인 어머니는 가해자일까 피해자일까. 그런데 이걸 아는 게 그렇게 중요할까.


소설의 마지막에서 칭린은 진실을 완벽하게 아는 것과 현실을 유지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하다 후자를 택한다. 어머니가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이 현재의 자신에게는 불필요하고어차피 세상에는 객관적 진실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들이 알아낸 진실이 정답인지도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칭린과 함께 사건을 조사한 룽중융은 끝까지 진실을 추적하고 기록으로 남기기를 원한다. 그에게는 누가 가해자이고 피해자인지보다 그러한 일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칭린의 선택은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한 중국 정부를, 룽중융의 선택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작가 팡팡을 연상케 한다. 세상은 누구를 승자로 기억할까.


칭린은 알기 싫은 일을 알려 하지 않는 것도 강함의 또다른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긴 시간이 진실의 모든 것을 연매장했다. 설령 안다고 해도, 그게 진실의 모든 것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437쪽)


"누군가는 망각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기록을 선택해. 우리는 각자의 선택에 따라 살아가면 되는 거야." (4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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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합격에 필요한 이론과 문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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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합격에 필요한 이론과 문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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