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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는 남자아이 10
폼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25년 9월
평점 :

학창 시절에 나는 긴 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치마 교복을 입고 다녔다. 여성이니까, 여학생이니까 그렇게 하고 다녀야 한다고 들었고, 나 또한 당연히 그렇게 하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거리에서 십 대 여학생들을 보면 숏컷을 한 아이도 있고 바지 교복을 입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 아침마다 머리 감는 게 너무 귀찮았는데 숏컷을 했다면 얼마나 편했을까. 겨울에 스타킹 차림이 너무 추웠는데 바지 교복을 입었다면 얼마나 따뜻했을까. 나와는 반대로 어떤 남학생은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바로 잘라야 하고 무더운 여름에도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 게 귀찮고 힘들었을 것이다. 성별에 따라 선택지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필요나 선호에 따라 선택지를 정할 수 있었다면 모두가 편하고 좋았을 텐데.
Pom의 만화 <선배는 남자아이>는 남성이지만 여학생처럼 긴 머리와 치마 차림을 하고 다니길 좋아하는 남학생 하나오카 마코토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만화다. 처음에는 마코토의 미모에 호감을 드러냈던 학생들도 마코토가 '여장 남자'라는 사실을 알면 '변태'라며 혐오감을 나타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마코토를 응원해주는 존재가 둘 있으니, 어려서부터 친구인 류지와 한 학년 후배인 사키다. 류지와 사키는 마코토의 겉모습도 좋아하지만, 남들이 뭐라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마코토의 태도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특히 사키는 항상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마코토와 류지에게 힘을 더해주는 존재다. 그런 사키에게도 남들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가족사가 있다.
사키는 오랫동안 할머니와 단둘이 살았다. 사키의 아버지는 고래 연구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고, 사키의 어머니는 사키가 어릴 때 집을 나갔다. 사키는 지금처럼 할머니와 계속 살고 싶은데, 연로해진 할머니를 친척이 돌보게 되면서 사키가 지낼 곳이 애매해진다. 마침 사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시에 사키와 같이 살고 싶은 뜻을 전했고, 사키는 부모 중 한쪽을 정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해서 가족을 등한시한 아버지와 어머니 때문에 상처를 받은 사키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어쩌면 자신의 그런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걸 명확히 알고 있고 그렇게 행동하는 마코토를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10권에서 사키는 고민 끝에 누구와 살지 정하고, 사키의 선택에 대해 들은 마코토는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이 과정에서 마코토는 자신이 그동안 사키를 그저 후배로서 귀여워 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사키 역시 자신이 그동안 마코토를 그저 본받고 싶은 선배로서 동경하기만 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다. 결국 사키가 마코토에게 데이트를 신청하면서 끝이 나는데, 지금 이대로도 괜찮은 두 사람의 관계를 꼭 이성애 관계로 묶어야만 했을까. 다른 만화도 아니고 젠더 규범을 부정하면서 시작한 만화가, 결국 여러 등장인물 중에 남성과 여성을 커플로 엮는 방식으로 끝이 난 점이 못내 아쉽다. 이걸 해피엔딩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게, 커플 성립이 문제의 시작이지 끝이냐고요... (시리즈 2탄 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