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


믿고 읽는 정여울이다. 정여울 평론가를 알게 된 건 최근 몇 년 사이의 일인데, 문학에 대한 폭넓은 지식도 지식이지만, 글도 매끄럽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나 감성이 참 좋아서 신뢰하며 읽게 된다. 최근에는 모 방송국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계신 걸 알게 되어 찾아 듣고 있는데, 매주 소개해주시는 책과 책 이야기가 참 좋다. 언젠가 한번 실제로 뵙고 싶기도 하고... 실제로 뵈어도 참 매력적인 분일듯. 

딴소리가 길었다. <나만 알고싶은 유럽 top10>은 전작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의 인기에 힘입어 출간된 후속작인 듯 싶다. 전작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연이어 읽어보고 싶다. 올 여름 휴가 못가는 한을 이 책으로라도 풀어야지...











2. 항상 나를 가로막는 나에게


책의 주제를 보아 심리나 인문 분야로 분류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에세이란다. 좋아하는 정신건강전문의 김현철 선생님께서 감수하신 책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책일지 궁금하다(그러고보니 난 저자의 네임 밸류를 보고 책을 고르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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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수납법 - 시간은 절반으로 줄이고, 좁은 집은 두 배로 늘리는
카와카미 유키 지음, 김성미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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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지만, 여러분 옷장을 '나만의 옷가게'라고 생각해본 적이 있나요? 이 세상에 이렇게 멋지고 편리한 옷가게가 과연 있을까요? 옷은 전부 내가 좋아하는 디자인, 스커트도 팬츠도 딱 맞는 사이즈, 액세서리와 백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고, 어느 것을 어떻게 조합해도 딱 내 마음에 들죠. 그게 전부 자신의 것이니까요! 이렇듯 옷장은 본래 나를 위해서 직접 사서 준비한, '나만의 옷가게'인 것입니다. 옷장을 열 때마다 어느 것을 입을지 고르는 것이 즐겁고, 이 조합은 어떨까 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죠. 생각해둔 옷을 찾으려고 뒤죽박죽 엉망인 서랍을 뒤적여야 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래서는 패션에서도 일상에서도 즐거움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정리해"란 말을 들어도 정리할 의욕이 안 생기고, 바닥에 뒹구는 옷에 마음까지 침울해집니다. 하지만 생각을 바꿔 '나만의 옷가게 만들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의욕이 솟지 않나요? (p.17)



'나만의 옷가게'라...... 사실 내가 패션, 아니 패션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옷 입는 데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최근 몇 년의 일이다. 한창 멋부릴 대학교 때는 여대에 다닌다는 핑계로 백팩에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을 고수했고, 사회인이 된 후에는 그 나이대에 맞는 복장보다는 내가 입고 싶은 스타일의 옷을 입는 데에만 골몰했다. 그러다본니 어느덧 스물아홉. 더 이상 짧은 반바지에 티셔츠, 보이시한 후드 점퍼나 야상이 거북한 나이가 되어버렸다. 물론 사회의 시선에 맞추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완전히 포기할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장 차림에 구두, 때로는 하늘하늘한 여신 원피스같은 여성스러운 복장을 잘 소화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본의 인테리어 코디네이터 카와카미 유키가 쓴 <기적의 수납법>에서 옷장을 '나만의 옷가게'로 꾸미라는 대목을 읽고 무릎을 쳤다. 사실 이 책은 내용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책에 실린 일러스트와 편집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한 책인데(나는 이런 식으로 일러스트나 편집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하는 책이 꽤 된다), 다른 내용보다도 옷장 정리를 다룬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나만의 옷가게'를 만드는 방법을 간략하게 설명해보자면, 먼저 집에 있는 옷을 모두 모으고 거는 옷, 개는 옷, 가방, 장신구 등으로 분류한다. 분류가 끝나면 거는 옷은 옷장에 걸지, 행거에 걸지, 개는 옷은 서랍에 담을지, 바구니에 담을지 등 수납 장소를 정한다. 장소를 정하면 그에 맞추어 옷을 수납한다. 구체적인 수납 방법(거는 방법, 옷 개는 방법, 장신구 정리 방법 등)은 책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참조하시길.

 
이제까지 인테리어 서적을 꾸준히 읽으면서 느낀 점은, 좋아보인다고 무턱대고 따라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을 먼저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 스타일 인테리어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나는 원목과 무채색을 베이스로 하는 일본 스타일 인테리어를 참 좋아하는데, 이 책은 일러스트와 구성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화려함보다는 심플함, 복잡함보다는 깔끔함을 모토로 집 안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방법을 소개해서 좋았다.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을 비롯해 최근 발행된 일본의 정리, 수납 관련 책들에 비하면 크게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실천하기 어렵거나 쓸데없어 보이는 내용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만의 옷가게'라는 아이디어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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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드랴프카의 차례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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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빙과> 시리즈의 제 3편 <쿠드랴프카의 차례>의 배경은 주인공들이 다니는 가미야마 고등학교 축제다. 일명 '문화제'로 불리는 일본의 고등학교 축제는 우리나라의 그것보다 훨씬 활성화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축제는커녕 동아리 활동도 지지부진했던 고교시절을 생각하면 부러울 따름이다. 가미야마 고등학교 축제는 특히 문예계 동아리의 활동이 수준급이라 지역에서도 인정받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런 축제에서 폐부 직전에 있다가 기적적으로 회생한 고전부원 네 명의 활약을 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축제 직전 마야카의 실수로 고전부의 전통이 담긴 문집 <빙과>를 계획한 것보다 많이 찍은 고전부원들은 축제 기간 3일 동안 열심히 노력해 어떻게든 문집을 다 팔아보기로 뜻을 모은다. 만화연구회 활동으로 바쁜 마야카와 부스 담당이 된 오레키를 대신해 지탄다와 사토시는 다른 동아리에 부탁하거나 행사에 참여해 홍보하는 식으로 고전부를 알린다. 그러던 중 몇몇 동아리에서 물품이 하나씩 사라지는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고전부원들은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문집 완판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깨닫는다. 이리하여 오레키는 어쩔 수 없이 사건 해결에 나서고, 고전부실에서 한 발 자국도 나가지 않고 사건의 진상을 알아낸다.


<쿠드랴프카의 차례> 역시 <빙과> 시리즈의 메인 테마인 선천적인 재능과 후천적인 노력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아마추어 동인지 <저녁에는 송장이>를 만든 사람들 사이의 갈등, 그리고 이 작품을 둘러싼 사람들의 갈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는 역시 선천적인 재능이 있으나 좀처럼 발휘할 생각도, 자각도 없는 호타로와 후천적인 노력파인 사토시의 대립 구도와 이어지고, 여기에 <저녁에는 송장이>를 동경하지만 그만한 작품을 만들 실력이 못된다는 사실을 비관하는 마야카의 사정까지 더해져 갈등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나는 선천적인 재능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애초에 그걸 자각하지도 못하고 발휘할 마음도 없다면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세계 최고의 런너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을 진정 세계 최고의 런너라고 부를 수 있을까? 어쩌면 세상에는 그들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모르거나, 알고도 개발하지 않았거나, 개발할 수도 있으나 그럴 마음이 없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1위에 오를 수 없다. 자신의 재능을 모르거나 발휘할 마음, 뭔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의욕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재능을 자각하고 발휘할 마음을 가지는 것, 뭔가 성취하기 위해 노력할 의욕이 있고 그렇게 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실은 나도 호타로처럼 나만의 재능을 깨닫지 못하거나 낮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타로의 모습이 안타까우면서도 마냥 탓하지는 못하는 것일까. 아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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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15주년 축하합니다. 알라딘은 모르겠지만 ^^ 제 독서생활의 토양을 만들어주고 터전이 된 곳은 알라딘입니다. 남들 따라, 손길 가는 대로 책을 읽던 제가 나름대로 계획과 주관을 가지고 책을 골라 읽기 시작한 것도, 이 세상엔 삶만큼이나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해준 것도, 책 읽기와 아날로그적 감성이 점점 자리를 잃는 이 사회에서 여전히 이것들을 붙들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것도 모두 다 알라딘이었습니다. 이곳이 앞으로도 동화 속 알라딘에게 지니가 그러했듯 험난한 세상에서 꿈조차 꿀 수 없는 사람들로 하여금 간절한 소원을 품게 하는 공간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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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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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많은 영향과 자극을 준 에세이 작가를 고르라면 단연 정혜윤이다. '침대와 책'을 벗삼아 그녀의 문장을 읽을 때면 나는 '세계가 두 번 진행되'는 꿈을 꾸었고, 언젠가 '사생활의 천재들'이나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그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는 삶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인데(네이버 포스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리즈의 제목을 이 책 제목에서 빌리기도 했다), 신작 <마술 라디오>는 그 책을 아주 많이 닮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라디오 PD로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활자로 되살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아니, 거리의 현자들, 학위 없는 인생 박사들이라고 해야 할까. 경매가 파한 후 어촌의 뱃머리에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시장 구석에서, 제주의 해변에서, 성남의 떡집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했다.  

 

 

여기에 저자는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 속에서 구한 문장들을 버무렸다. 이를테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라는 현답을 한 통영의 어부 아저씨를 보면서 저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고(조르바는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어부는 이렇게 말한 셈이지. '당신이 밥을 먹고 무슨 고생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대표해 송전탑에 올라간 한상균 전 지부장을 보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는 식이다(내가 마지막 잎새 한 장일 수 있는 가능성, 아니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 베어맨 노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도 못한 거야).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을 연결하는 시도는 저자가 이전에 쓴 책들에서도 여러번 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시도가 더 강렬하게 혹은 애틋하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저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숨겨져있을 줄이야, 하는 발견도 그렇지만, 해고 노동자 문제와 세월호 사고 등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처보다도 마술 같은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 비극적인 일을 최근에 너무 많이 겪은 탓이 아닐까. 라디오 PD로서 사회의 구석진 곳에 마이크를 들이밀며 살아온 저자의 삶은, 어쩌면 이제껏 내가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틀에 맞춰 상상한 저자의 삶보다도 훨씬 더 고달프고 가혹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PD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도 굳이 작가로서의 이중 인생을 택한 것은 흔히 생각하듯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힘든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앙금과 미련을 해소하기 위한 그녀만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정혜윤이 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식의 평이 꽤 보였다. 나 역시 그녀가 언급하는 책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를 100%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문장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에 대해 뒷말을 남기지 않는 법.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나름의 메시지를 추출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매개체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 한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나 어쩌다 알게된 작가에게 반해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고 아주 드문 파장이다. 세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 넓고 깊은 식견, 웬만한 소설보다도 낭만적이고 기발한 문장들까지.....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을 쓴 저자답게 삶과 책을 맛깔나게 버무리고 있는 작가 정혜윤. 여기에 그녀의 직업적 무대인 라디오까지 더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

 

 

나는 그동안 내가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즉 나의 괴로움, 내 삶의 무게, 나의 성장, 나의 미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한 게 아니라 자아에 헌신 중이었던 거지. 그러느라고 24시간 내내 무척 바빴어. 내게도 제3의 밧줄이 있었던 셈이야. 소득+지출+자아. 로맹 가리의 행복한 세상과는 반대였지. 내가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없지 않음에도 그랬어. 괴로웠어. 왜냐하면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바라본 하늘은 한층 더 까마득하게,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게 높게 보였거든.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밧줄 같은 가느다란 비행운이 지나갔어. 


며칠 뒤에 나는 로베르토 볼라뉴의 <2666>을 읽었어. 2권에서 어떤 교수의 꿈에 보리스 옐친이 나와. 옐친이 꿈에서 말해. "(중략) 인생은 수요와 공급, 혹은 공급과 수요라오. 모든 게 그것으로 요약될 수 있소. 하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소. 역사는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소. 인간의 테이블이 역사의 쓰레기 구덩이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세 번째 다리가 필요하오. 그러니 받아 적으시오. 방정식은 바로 공급+수요+마술이오. 그런데 마술이 무엇이오? 마술은 서사시이며 동시에 섹스고 디오니소스의 안개며 놀이요." (pp.32-3)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중략) 나에게도 늘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지.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중략) 그러나 이것을 과연 내 인생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pp.48-9)

 

 

단테는 지옥은 감옥이 아니라 요새라고 생각했어. 지옥은 감금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닫아 잠근 곳이라고 생각한 거지. (중략) 우리도 다른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순간이 있잖아. 우리도 나의 선택, 나의 결정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자유인 줄로만 알고 다른 가능성은 다 마음에서 몰아낼 때가 있잖아. 우리의 닫힌 마음은 그렇게 지옥을 닮았어. (p.69)

 

 

책이 사막의 기후나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찢긴다면 현실의 바람은 맞설 수 있을까? 그 또한 견뎌내지 못하고 너덜너덜 찢기고 마는 걸까? 나도 곧잘 생각하곤 했었어. '책이란 뭘까? 책을 읽어버린다는 게 뭘까?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읽어버렸다면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읽는다는 게 현실 앞에선 무력하기만 한 건가? 무력하다면 무력함이 힘이어야 하지 않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쥘 베른이 던진 유서 깊은 질문도 이와 같아. 이론은 그렇지, 그러나 실제는?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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