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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 - 오래 걸을 때 나누고 싶은 이야기
정혜윤 지음 / 한겨레출판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최근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많은 영향과 자극을 준 에세이 작가를 고르라면 단연 정혜윤이다. '침대와 책'을 벗삼아 그녀의 문장을 읽을 때면 나는 '세계가 두 번 진행되'는 꿈을 꾸었고, 언젠가 '사생활의 천재들'이나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된 그들 중 한 명으로 소개되는 삶을 소망하게 되었다. 그녀의 책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은 <삶을 바꾸는 책 읽기>인데(네이버 포스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시리즈의 제목을 이 책 제목에서 빌리기도 했다), 신작 <마술 라디오>는 그 책을 아주 많이 닮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라디오 PD로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인터뷰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활자로 되살렸다. 이들 중 대부분은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보통 사람들이다. 아니, 거리의 현자들, 학위 없는 인생 박사들이라고 해야 할까. 경매가 파한 후 어촌의 뱃머리에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뚝뚝 떨어지는 시장 구석에서, 제주의 해변에서, 성남의 떡집에서...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이야기를 '채집'했다.  

 

 

여기에 저자는 그동안 읽은 수많은 책 속에서 구한 문장들을 버무렸다. 이를테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작은 물고기는 놔주고 금지 어종은 풀어주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건 내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라는 현답을 한 통영의 어부 아저씨를 보면서 저자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떠올리고(조르바는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밥을 먹고 무엇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어부는 이렇게 말한 셈이지. '당신이 밥을 먹고 무슨 고생을 하는지 말해달라. 그럼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을 대표해 송전탑에 올라간 한상균 전 지부장을 보면서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떠올리는 식이다(내가 마지막 잎새 한 장일 수 있는 가능성, 아니면 마지막 잎새를 그려 넣는 베어맨 노인일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도 못한 거야). 

 

 

사람들의 이야기와 책을 연결하는 시도는 저자가 이전에 쓴 책들에서도 여러번 한 바 있지만, 이 책에서는 그 시도가 더 강렬하게 혹은 애틋하게 다가왔다. 오늘 하루도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저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숨겨져있을 줄이야, 하는 발견도 그렇지만, 해고 노동자 문제와 세월호 사고 등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처보다도 마술 같은 기적을 기대해야 하는 비극적인 일을 최근에 너무 많이 겪은 탓이 아닐까. 라디오 PD로서 사회의 구석진 곳에 마이크를 들이밀며 살아온 저자의 삶은, 어쩌면 이제껏 내가 책을 읽으며 작가라는 틀에 맞춰 상상한 저자의 삶보다도 훨씬 더 고달프고 가혹했을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PD라는 번듯한 직업을 가지고도 굳이 작가로서의 이중 인생을 택한 것은 흔히 생각하듯 답답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나 새로운 도전이 아니라, 힘든 일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앙금과 미련을 해소하기 위한 그녀만의 의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언젠가 인터넷 서점에서 정혜윤이 쓴 책에 대한 리뷰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난해하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식의 평이 꽤 보였다. 나 역시 그녀가 언급하는 책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요,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를 100% 이해하고 있다고 확신하지는 않는다. 그녀의 문장이 다른 작가들의 그것과 비교하면 독특하게 느껴진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에 대해 뒷말을 남기지 않는 법. 작품을 읽고 해석하고 나름의 메시지를 추출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책은 작가와 독자가 소통하는 매개체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 모두가 내 마음에 들 수는 없는 것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작가 한둘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거니까. 그러나 어쩌다 알게된 작가에게 반해 그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은 운명이고 아주 드문 파장이다. 세상에 대한 뜨거운 관심, 엄청난 독서량에서 비롯된 넓고 깊은 식견, 웬만한 소설보다도 낭만적이고 기발한 문장들까지..... <삶을 바꾸는 책 읽기>라는 근사한 제목의 책을 쓴 저자답게 삶과 책을 맛깔나게 버무리고 있는 작가 정혜윤. 여기에 그녀의 직업적 무대인 라디오까지 더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녀에게 반했다.

 

 

 

밑줄 그은 문장들

 

 

나는 그동안 내가 나한테 너무 관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어. 즉 나의 괴로움, 내 삶의 무게, 나의 성장, 나의 미래에 너무 많은 시간을 썼어. 나는 내가 사랑하는 것에 헌신한 게 아니라 자아에 헌신 중이었던 거지. 그러느라고 24시간 내내 무척 바빴어. 내게도 제3의 밧줄이 있었던 셈이야. 소득+지출+자아. 로맹 가리의 행복한 세상과는 반대였지. 내가 나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없지 않음에도 그랬어. 괴로웠어. 왜냐하면 그런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바라본 하늘은 한층 더 까마득하게, 결코 따라잡을 수 없게 높게 보였거든. 하늘에서 내려온 한 줄기 밧줄 같은 가느다란 비행운이 지나갔어. 


며칠 뒤에 나는 로베르토 볼라뉴의 <2666>을 읽었어. 2권에서 어떤 교수의 꿈에 보리스 옐친이 나와. 옐친이 꿈에서 말해. "(중략) 인생은 수요와 공급, 혹은 공급과 수요라오. 모든 게 그것으로 요약될 수 있소. 하지만 그렇게는 살 수 없소. 역사는 공허의 쓰레기 구덩이로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고 있소. 인간의 테이블이 역사의 쓰레기 구덩이로 무너지지 않으려면 세 번째 다리가 필요하오. 그러니 받아 적으시오. 방정식은 바로 공급+수요+마술이오. 그런데 마술이 무엇이오? 마술은 서사시이며 동시에 섹스고 디오니소스의 안개며 놀이요." (pp.32-3)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중략) 나에게도 늘 반복되는 하나의 질문이 있었지. "뭐가 문제지?"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지?" (중략) 그러나 이것을 과연 내 인생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pp.48-9)

 

 

단테는 지옥은 감옥이 아니라 요새라고 생각했어. 지옥은 감금되어 있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닫아 잠근 곳이라고 생각한 거지. (중략) 우리도 다른 이야기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못하는 순간이 있잖아. 우리도 나의 선택, 나의 결정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것이 자유인 줄로만 알고 다른 가능성은 다 마음에서 몰아낼 때가 있잖아. 우리의 닫힌 마음은 그렇게 지옥을 닮았어. (p.69)

 

 

책이 사막의 기후나 바람을 견뎌내지 못하고 찢긴다면 현실의 바람은 맞설 수 있을까? 그 또한 견뎌내지 못하고 너덜너덜 찢기고 마는 걸까? 나도 곧잘 생각하곤 했었어. '책이란 뭘까? 책을 읽어버린다는 게 뭘까? 읽지 않았다면 모를까, 읽어버렸다면 다르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읽는다는 게 현실 앞에선 무력하기만 한 건가? 무력하다면 무력함이 힘이어야 하지 않을까?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쥘 베른이 던진 유서 깊은 질문도 이와 같아. 이론은 그렇지, 그러나 실제는?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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