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손톱
빌 밸린저 지음, 최내현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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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 스미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아가씨>로 재탄생한 것처럼, 20세기 미국 최고의 서스펜스 걸작으로 꼽히는 소설 <이와 손톱>이 최근 정식, 김휘 감독의 영화 <석조저택 살인사건>으로 다시 태어났다. 빌 밸린저의 1955년작인 <이와 손톱>은 50년대 뉴욕이 배경인 반면, <석조저택 살인사건>은 해방 직후의 경성(서울)이 배경이다. 이런 차이점 외에도 세부적인 설정이 다른 부분이 많아서 소설과 영화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마술사 루는 어느 날 곤경에 처한 여인 탤리를 구하게 되고, 처지가 딱한 탤리를 보다 못해 지낼 곳과 일자리까지 찾아준다. 루가 찾아낸 일자리란 자신이 매일 밤 공연하는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보조하는 것. 루와 탤리는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공연을 흥행시키고, 자연스럽게 둘은 사랑에 빠지고 부부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탤리가 의문의 추락사를 당한다. 타살임을 직감한 루는 마술사로서의 재능을 총동원해 탤리를 살해한 살인범에게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소설을 영화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배경을 해방 직후의 경성으로 바꾼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덕분에 주인공이 쫓는 살인범이 단순한 위조 지폐범이 아니라 친일파가 되고, 수많은 친일파들이 기회주의적인 성격과 언어 능력을 활용해 부정한 방법으로 부와 명예를 쌓았던 역사적 사실과 연결되면서 허구인 소설이 현실성을 얻었다. 루가 살인범을 찾아내기 위해 쓴 방법과 살인범이 루의 정체를 알게 되는 과정도 소설보다 영화가 훨씬 신선하고 흥미진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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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 - 어느 수집광의 집요한 자기 관찰기
윌리엄 데이비스 킹 지음, 김갑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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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집하는 것이 없다. 한때는 책도 모으고 음반도 모았지만, 간소한 생활을 추구하는 미니멀 라이프를 만난 후로는 읽지 않는 책은 바로 처분하고 음반 대신 음원을 구입하거나 라디오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수집하는 것이 없는 생활은 때로 아쉽고 쓸쓸하다. 윌리엄 데이비스 킹의 자전적 에세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대하여>를 읽으며 부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어려서부터 남들 눈에는 아무것도 아닌 잡다한 것들을 수집했다. 통조림, 생수병, 고양이 사료 등 온갖 종류의 라벨만 1만 8000개를 모았다. 시리얼 상자는 1579개, 우편봉투 속지 패턴은 800개, 병뚜껑은 500개, 치약 포장 상자는 120개를 모았다. 저자는 대체 왜 이런 잡다한 것들을 수집할까. 알고 보니 저자는 수집에 강박적으로 집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저자의 바로 위 누나 신디는 태어나면서부터 뇌성마비를 앓았고 정신박약이었다. 부모의 관심은 자연히 누나에게 쏠릴 수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누나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한 저자를 미워했다. 저자는 부모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고 누나에게 미움받는 현실을 잊기 위해 수집을 택했다. 텅 빈 마음을 잡다한 물건으로 채웠다. 


다만 저자가 수집하는 것들은 '말 없고 빈약하고 실용적인 가치가 없는 물건들'에 한정된다. 해변 위를 굴러다니는 돌멩이, 남이 버리고 간 물통 뚜껑 같은 것이야말로 저자가 열광하는 수집 대상이다. 저자는 이런 물건들을 보면 '잃어버린 사랑'을 느낀다. 어쩌면 저자는 잡다한 물건들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 부모와 누나로부터 받지 못한 자신을 떠올리고 이내 안쓰러워지는 지도 모르겠다.


내 삶의 이야기. 또는 이야기들. 우리는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모든 사람은 수집가다. 경험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야기들은 기억 속에서 더미를 이룬다. (358쪽) 


저자는 수집한 물건들을 보면서 과거를 떠올리고, 외롭고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아주 무의미하지만은 않았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수집하는 것이 없는 나는 과연 훗날 무엇을 보면서 지난날을 떠올릴까. 미래를 위해 현실을 희생해 가며 수집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만, 현재 수집하고 있는 물건들을 보면서 과거를 떠올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의미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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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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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드러진 사진과 가벼운 글로 채워진 여행 에세이에 지쳐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여행 에세이 읽는 즐거움을 느꼈다. 낯선 경험과 지난 시간을 교차시키는 저자의 글맛도 좋았다. 30년간 신춘문예에 도전한 내공이 괜한 것이 아닌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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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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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에 있는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 '작은 섬나라'라고 해서 제주도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고 인구는 제주도 인구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한다. 얼마나 한적할까. 얼마나 여유로울까. 짐작한 대로 아이슬란드는 전 세계에서 행복지수 1위, 평균수명 1위를 자랑하고, 세계에서 범죄율이 가장 낮은 나라로 손꼽힌다. 뿐만 아니라 국민 열 명 중 한 명은 작가, 여섯 명 이상은 음악가이다. 1955년에는 할도르 락스네스가 아이슬란드인으로는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한국인이라면 아이슬란드에 반할 만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용인되지 않는 한국과 달리 아이슬란드에선 실패가 낙인이 되지 않고 오히려 실패자를 찬양한다. 이 점에 혹해 아이슬란드 여행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의 저자 강은경이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30년 넘게 신춘문예에 도전한 저자는 어느 날 노안이 온 걸 깨닫고 신춘문예를 포기했다. 글을 쓰는 동안 제대로 된 직업도 가지지 않았고 결혼도 사랑도 실패했다. 이제 평생의 꿈인 신춘문예까지 포기했으니 '내 인생은 실패했다'는 좌절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다 저자는 우연히 에릭 와이너의 <행복의 지도>라는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가 실패에 관대한 나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 찬양받아 마땅한 '인생 실패자'로서 아이슬란드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때부터 저자는 '아이슬란드 여행'이라는 새로운 꿈에 도전했다. 아이슬란드에 관한 책을 읽고, 아이슬란드 출신 뮤지션의 음악을 들었다. 한옥 짓기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보험까지 깨면서 여행 자금을 모았다. 그렇게 모은 돈이 300만 원.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히치하이킹과 야영만으로 두 달여를 보내는 가혹한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신 실패한 사람 맞아요?" 

"네?" 

"당신은 쓰고 싶은 글 쓰며 살았잖아요. 그랬으면 됐지, 왜 실패자라는 거죠? 지금 여기에 앉아 있는 당신이 인생을 다 실패했다니, 난 당신 말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당신에겐 사는 게 뭐죠?" (454쪽) 


아이슬란드가 실패에 관대하다 못해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라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한국에선 가족조차 저자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숨겼지만, 아이슬란드에선 이혼이 드문 일이 아니었고 오히려 용기 있는 선택을 했다며 칭찬을 받았다. 어떤 할머니는 저자가 왜 자신을 실패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쓰고 싶은 글 실컷 썼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도 해봤고, 아이를 셋이나 가졌고, 이렇게 건강한 몸으로 여행도 다니는데 '인생을 다 실패했다'고 말하는 이유가 뭐냐고 되물었다. 


할머니의 말이 마음에 와 닿아서 친구들에게도 들려줬다. 얼마 전 애인과 헤어진 친구, 경제적으로 어려운 친구,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 좌절한 친구. 너희들 모두 실패하지 않았다고. 그 무엇도 인생을 포기하거나 스스로를 실패자로 규정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할머니의 말을 나 자신에게도 들려줬다. 나 역시 저자처럼 글을 쓰고 공부하며 돈과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만,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고 있으니 실패한 건 아니라고. 그러다 정말 아무 것도 안 되면 저자처럼 아이슬란드로 훌쩍 떠나야겠다고. 나도 저자처럼 전보다 더 단단해져서 돌아왔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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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출판사 창비에서 <공부의 시대>라는 이름의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원로 역사학자 강만길, 미학자 진중권, 작가 유시민, 전 대법관 김영란, 정신과 의사 정혜신 등이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기까지 체득한 공부법과 독서법을 소개하여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올여름 창비에선 <정치의 시대>라는 이름의 시리즈를 출간할 예정이다. 작년 말 불거진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 등으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진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충족시켜줄 만한 시리즈로 보인다. 미학자 진중권, 국회의원 은수미, 변호사 최강욱, 역사학자 한홍구가 필자로 참여했다. 시리즈 출간을 앞두고 <정치의 시대> 시리즈 중 한 권을 먼저 만나 보았다. 내게 주어진 책의 필자는 은수미 전 국회의원. 오랜 시간 노동 문제에 대해 연구해온 저자는 이 책에서 현대 사회에서 노동의 의미와 현실의 노동 문제,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에 대해 심도 있게 풀어놓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술이 발전해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술이 발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 산재로 죽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의자를 없애는 극소수가 교묘하게 책임을 회피하면서 노동자를 쥐어짜고 있습니다. 사회가 의자놀이의 규칙을 따르면서 벌어지는 비극입니다. (26쪽) 


저자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 현실을 의자놀이에 비유한다. 의자가 10개 있고 사람이 10명 있으면 모두가 의자에 앉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사람 수와 똑같은 수의 의자를 제공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에서 죽어라 경쟁하고, 대학교에서 스펙을 쌓아도 사회에 나오면 앉을 자리가 없는 것을 그 때문이다. 경기가 좋아지고 국민 소득이 높아져도 의자는 늘지 않는다. 내 자리 어디 갔냐고 물으면 '저기 너보다 능력 좋은 정규직이 앉아 있다', '공기업 철밥통이 앉아 있네', '네 부모가 차지하고 있잖아',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 '지방대 나왔으면서 눈만 높다'라는 답이 돌아올 뿐이다. 최근에는 정리해고, 성과연봉제, 명예퇴직, 비용 절감, 민영화 등 기업 입장에서 의자 수를 보다 쉽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늘고 있다. 


백화점은 출퇴근, 매출, 접객 태도 등 모든 것을 통제하면서, 고용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물론 백화점에도 정규직이 있긴 합니다. 10퍼센트를 넘지 않지만요. 아무런 근로계약 없이도 노동자를 지배할 수 있는 사회, 이게 하청 사회입니다. (21쪽) 


사회가 의자놀이의 규칙을 따르면서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첫째는 하청 사회, 둘째는 포스트 민주주의이다. 하청 사회의 특징은 '노동자는 있는데 고용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배달 대행업체나 백화점에서 직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파견 회사에 소속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청의 형태로 고용하고 고용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그 예다. 포스트 민주주의는 '시민은 가상 정치에 끌려들어 가고, 정치인은 판촉행사를 열고, 실제 정치는 기득권 1퍼센트가 밀실에서 진행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10여 년 전 사회학자 콜린 크라우치가 쓴 책에 나오는 개념인데, 한국에선 2016년에 박근혜,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드러나면서 정치가 밀실에 숨은 비선 세력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히 드러난 바 있다.

 

삼성이 정유라에게 주려던 220억 원만 있으면 배달로 생계를 유지하는 2만 명에게 최소 21년 동안 산재보험을 지원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재벌 대기업은 박근혜 정권에, 최순실에게 돈을 줘서 대대손손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할 뿐이지요. (70쪽) 


저자는 노동 전문가이자 정치가로서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헌법 조항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실생활의 규칙으로 보장하는 '국민 기본선'을 비롯해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마련, 비정규직 노조 조직 등이 그 예다. 또한 저자는 어떻게 하면 광장의 촛불을 어떻게 일상으로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모두가 자기 몫의 의자를 지니는 사회, 헌법이 생활의 규칙으로 적용되는 사회, 국민 개개인이 일상적으로 정치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찾고 있다. 이 밖에도 국회의원 은수미의 이름을 대중에게 깊이 각인시킨, 2016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테러방지법 제정을 막기 위한 필리버스터 후일담과 현재 한국 정치에 대한 조언, 일상에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 등이 이 책에 담겨 있다. 강연록을 엮은 책이라서 문장이 어렵지 않고, 강연 말미에 진행된 질의응답 내용이 실려 있어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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