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를 너무 많이 한 걸까. 리안 모리아티의 전작인 <허즈번드 시크릿>,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이 워낙 좋았기에 이 책도 좋을 줄 알았는데 아쉬운 점이 많다. <허즈번드 시크릿>, <커져버린 사소한 거짓말>과 마찬가지로 살인 사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일 줄 알았는데, <아홉 명의 완벽한 타인들>에는 살인 사건은 물론이고 딱히 눈에 띄는 스릴러의 요소가 '거의' 없다(아주 조금 있다).


소설의 무대는 몸과 마음을 치유하기로 이름난 최고급 건강휴양지 '평온의 집'이다. 이곳에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아홉 명의 사람들이 모이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곳에선 차도 이용할 수 없고 휴대폰도 사용할 수 없다. 열흘 동안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해진 일과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해야 한다. 한 며칠 편하게 쉬다 갈 생각으로 이곳을 찾았던 사람들은 빡빡한 일정과 엄격한 규율에 점점 지쳐간다. 급기야 명령을 어기거나 싸움을 하는 등의 트러블이 발생하면서 갈등과 긴장이 고조된다. 


작가는 개성이 넘치는 캐릭터들과 이들의 사연을 통해 인생에 다양한 면이 있음을 보여준다. 벤과 제시카는 젊고 외모도 근사하고 돈도 많지만 부부 관계가 예전만큼 좋지 않다. 유명 로맨스 소설 작가인 프랜시스는 슬럼프에 빠져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결코 뚱뚱하지 않은 카멜은 남편이 자신보다 날씬한 여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몸매를 비관한다. 토니는 유명 풋볼 선수가 될 뻔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은퇴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를 곱씹으며 현재를 흘려보낸다. 


마르코니 가족의 사연은 더욱 암울하다. 겉보기에는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처럼 보이지만, 사실 나폴레옹과 헤더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 잭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다. 그들의 딸 조이는 잭을 그리워하는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잭만 그리워하고 자신은 돌보지 않는 부모를 원망한다. 평온의 집을 운영하는 마샤는 대기업에서 승승장구하다가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기고 현재에 이르렀다. 죽음을 간접 경험하고 나서야, 인생에 돈이나 명예보다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렇게 한 사람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결핍이나 문제가 보이기 마련인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볼 시간적,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그래서 (잘 모르는) 타인에 대해서는 멋대로 '완벽하다'고 판단하고, (잘 아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부족하다', '문제가 많다'며 비관한다. 세상에는 완벽한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삶도 없는데 말이다. 기대했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 아닌 건 아쉽지만, 이런 주제 의식은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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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희 작가의 '물좋권('물건이 좋지 않으면 권하지 않아요'를 줄인 말)' 시리즈를 애정하는 독자로서 이 책을 아니 사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처음에는 신예희 작가가 소비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해서 당연히(!) 물좋권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저자가 직접 구입해 사용해보고 좋았던 물건들을 추천해 주는 내용일 줄 알았다. 막상 읽어보니 구체적인 제품 추천보다는, 저자가 이제까지 '소비러'로 살면서 겪은 고충이나 시행착오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이나 지혜를 공유하는 내용이 더 많았다. 위시리스트가 꽉 찰 줄 알았는데 눈물샘이 꽉 찼다는...(ㅠㅠ)


저자는 자칭 타칭 '맥시멀리스트'이다. 신제품이 출시되면 직접 구입해 써봐야 직성이 풀리고, 한 번 구입한 제품은 웬만해선 잘 버리지 않는다. 프리랜서라서 업무에 필요한 장비를 구입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돈을 쓰고, 비혼 1인 가구로서 살림을 '외주'하는 데 필요한 제품들도 부지런히 들인다(로봇 청소기라든가, 건조기라든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저자에게 '돈지랄' 그만하라고 타박하거나 훈계하기도 한다(주로 부모님이 그러신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굴하지 않는다. 아껴야 잘 사는 것도 맞지만, 아끼면 똥 되는 것도 맞다. 돈도 써본 사람이 잘 쓴다고, 돈을 아무리 열심히 벌고 착실하게 모아도 써야 할 순간에 잘 못 쓰면 말짱 꽝이다. 그럴 바에는 평소에 돈을 적재적소에 잘 쓰는 습관을 들이는 편이 낫다.


저자에게 소비란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발견하는 기회다. "소비 패턴을 들여다보면, 그러니까 카드 내역을 쭉 살펴보면 내가 어디에 비중을 두고 사는지 답이 딱 나온다고 한다. 외면하고 싶은 진짜 내 욕망이 그 안에 숨어 있다. 그렇게 헛돈을 쓴 덕분에, 낭비한 덕분에 진짜를 찾았다." (서문 중에서) ​ 


저자도 한때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소비를 많이 했다. 최신 트렌드의 옷이나 높은 굽의 구두, 색색의 화장품을 사들이는 데 많은 돈을 썼다. 그 결과 저자는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유행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에 들고 몸이 편안한 옷과 신발을 구입한다. 정말 좋아하는 브랜드 또는 제품이라면 진품 같은 저렴이 말고 진품을 구입한다. 그렇게 하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돈을 잘 쓰기 위해 돈을 잘 모으는 팁도 나온다. 저자는 카카오뱅크를 애용한다.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적금을 시작할 수 있고, 천 원이나 만 원 단위의 소액으로 목돈 만들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1년 동안 하루에 천오백 원씩 모아서 애인에게 근사한 선물을 해주었다는 글을 읽고 나도 바로 카뱅 적금을 시작했다. 선물할 애인은 없지만(ㅠㅠ), 부지런히 모아서 나를 위한 선물을 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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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장소에서는 내 존재가 더욱 분명해진다. 집에서나 밖에서나 변함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다." ​


미국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자 심리학자인 앤드루 솔로몬의 책 <경험 수집가의 여행>에서 발견한 문장이다.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난 저자는 어려서부터 가능한 한 많은 나라들을 여행해보길 원했고,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외국에 나갔다. 이 책에는 저자가 1980년대 말부터 2015년까지 약 25년 동안 여행했던 28곳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저자가 찾은 국가는 탈냉전 이전의 소련과 탈냉전 이후의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 남아공, 타이완, 터키, 잠비아, 캄보디아, 몽골, 그린란드, 세네갈, 아프가니스탄, 일본, 솔로몬 제도, 르완다, 리비아, 남극 등이다.


저자가 여행에 빠져든 이유는 저자가 지닌 소수자성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어릴 때 부모로부터 과거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겪은 박해와 차별, 학살에 관한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망명 신청을 해도 받아주는 나라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국적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영국 국적을 얻었다). 성소수자이기도 한 저자는 국가별로 성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다른 것이 재미있다고 느꼈다. 어떤 나라에선 사람들이 성소수자라는 말만 들어도 경악한 반면, 어떤 나라에선 성소수자라는 개념조차 없었다. 성소수자임을 밝혀도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봐주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는 여행을 하면서 남들이 알려주는 정보와 자신이 직접 겪어서 얻는 정보가 얼마나 다른지도 여실히 느꼈다. 냉전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저자는 소련을 비롯한 공산 진영 국가들에 대해 막연한 공포 내지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언론이 공산 진영 국가들에 대해 안 좋은 보도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직접 가보니 그곳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사람 사는 곳'이었다. 관점에 따라서는 미국보다 좋아 보이는 부분도 많았다. 이 일을 겪고 저자는 남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무턱대고 믿기보다는 직접 경험해보고 스스로 판단을 내리기로 결심했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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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
김보영 외 지음 / 돌베개 / 201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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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SF라고 하면 난해하고 비현실적이라고만 느꼈는데, 이 책을 통해 SF 안에도 다양한 갈래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앞으로 어떤 결 또는 어떤 흐름을 따라 읽으면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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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난해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이유로 SF 문학을 읽지 않았는데, 요즘은 인터넷서점 장바구니에 SF 문학이 그득하다.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곰곰 생각해보니, 연초에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 시리즈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은 기억과 테드 창의 <숨>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 기억이 떠올랐다. 예전만큼 한국 남성 작가들의 책을 읽지 않게 되면서 그동안 무심했던 장르의 책들을 읽을 금전적, 시간적 여유가 생긴 것도 있고... ​ 


'기왕 SF 문학을 읽기 시작했으니 제대로 읽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집어든 책이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이다. 이 책은 한국의 SF 문학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김보영, 박상준, 심완선 세 작가가 SF 문학의 시초로 여겨지는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부터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는 SF 작가인 테드 창과 코리 닥터로우에 이르는 SF 문학의 연대기를 정리한 결과물이다.


이 책의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중에서도 첫째로 들 수 있는 장점은 문학뿐 아니라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 장르를 불문하고 SF로 통칭할 수 있는 작품들을 폭넓게 선별했다는 것이다. 이 책에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하인라인, 어슐러 르 귄 같은 작가들의 이름이 나올 거라고는 짐작했지만, 데즈카 오사무, 미야자키 하야오,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 생각해보니 이들만큼 SF에 정통하고 대중들에게 SF를 널리 알린 'SF 거장'이 없는데 이들과 SF를 쉽게 연결 짓지 못한 것을 보면, 나조차도 SF라고 하면 일종의 서브컬처 또는 하나의 장르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이 책은 또한 SF가 비현실적이라는 인식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론을 펼친다. 이것에 관해서는 김보영 작가의 말을 인용한다. "우리는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에는 과학 소설이 사회 소설이며 우리의 현실을 가장 직설적으로 반영하는 문학이다. 많은 SF 작가들이 말하듯이 SF는 미래를 예측하는 문학이 아니다. 이 책이 보여 주듯, 미래를 바라본 그 많은 작품들이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쳤으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그에 따라 세상을 바꾸어 간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6쪽, 서문 중에서) ​


아울러 이 책은 SF의 변화가 시대의 변화, 사회의 변화에 선행한 예를 자세히 보여준다. SF는 여성, 유색인종, 성소수자 등 사회로부터 소외받고 차별당하는 집단 또는 계층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도구로 자주 활용되어 왔다. 지금처럼 성 평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았던 시절에도 메리 셸리, 마거릿 애트우드, 어슐러 르 귄, 코니 윌리스 같은 여성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당하는 억압과 차별을 묘사하고 성 평등이 이루어진 세상을 상상했다. 오랫동안 서구 백인 남성들이 장악했던 SF 문학계에서 여성 또는 제3세계 출신 작가들이 약진하는 현상도 눈여겨볼 만한 흐름이다. 이 밖에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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