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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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자 정희진의 신간이다. 학문과 글쓰기에만 조예가 깊은 줄 알았더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에서 음량을 음소거에 가깝게 해놓고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본 시네마 키드라고. 그때부터 영화는 무조건 혼자서 보는 게 습관이 되었고, 영화를 보고 나면 가급적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바로 집에 돌아와 감상을 글로 적었다. 덕분에 영화에 관한 글이 엄청나게 쌓였고, 그중 28편을 갈무리해 만든 책이 <혼자서 본 영화>다. 


역사학자는 역사 영화만 보고 과학자는 과학 영화만 보라는 법 없듯이, 여성학자인 저자 또한 이른바 '여성 영화'만 보는 건 아니다. <디 아워스>, <문 라이트>, <타인의 삶>, <밀양> 같은 여성주의, 평화, 인권 연구자로서 당연히 봐야 할 법한 영화도 보지만 <맘마 미아!>, <외출>, <YMCA 야구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웰컴 투 동막골>, <머니볼> 같은 대중 영화도 보고,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이른바 '알탕 영화'도 본다. 


여성학자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일반 관객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장면을 눈여겨보거나, 일반 평론가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영화는 북한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한국 영화의 주요 소비 계층인 20~30대 여성과 북한 남성의 가상 로맨스'라는 점이 특별하다. 이는 남한 남성에게 실망한 남한 여성이 정우성, 강동원, 공유, 현빈 등이 연기하는 북한 남성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게 하는, '북한 남성을 대상화'하는 영화들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대한 해석도 재미있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여성 상사가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여성 비서에게 시키는 일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남성 상사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시키는 일이다(옷 가져와라, 커피 사와라, 자식 뒷바라지하라 등등). 여성 리더들은 '아내'가 없기 때문에 비서에게 아내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한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성공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이렇게 섬세하게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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