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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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의 2017년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아몬드>가 선천적인 이유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라면, <서른의 반격>은 별 볼 일 없는 대학을 나와 별 볼 일 없는 직장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보내는 '일반적인'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1988년생 김지혜. DM 그룹 산하의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직업도 다르지만 지혜의 일상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아카데미 비슷한 교육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지혜처럼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나 마케팅 업무를 배우길 기대하고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막상 출근하면 수강생들 오기 전에 책상과 의자 정리하고 칠판 닦고 정수기 물통 채워놓고. 직원들 식사 주문하고 스타킹, 담배 심부름하러 뛰어다니다가 결국 반 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의자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지혜의 말이 어찌나 내 마음 같던지. 다만 지혜에게는 동갑내기 신입 인턴 규옥과 무명 시나리오 작가 무인,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남은이 있고, 지혜는 이들과 손잡고 부당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사소한 '반격'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1년이 가도록 소식이 없는 상사의 책상에 장난 쪽지를 놓는 것이다.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어찌 보면 유치하다 못해 치졸하게 느껴지는 장난인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다. 내친김에 지혜와 동지들은 또 다른 반격을 시도하고, 이런 식으로 지혜는 답답한 일상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반격이라고 하기에는 강도가 약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조차도 상상해본 적 없는 (쫄보인) 나로서는 지혜와 동지들의 반격이 그저 용감해 보일 뿐이다. 그나저나 나이 먹고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이런 쪽지를 받는 어른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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