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소설의 계보학 - 탐정은 왜 귀족적인 백인남성인가
계정민 지음 / 소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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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소설의 계보학>의 저자 계정민은 영미 문학 전공자로는 드물게 범죄 소설을 전공했다. 그중에서도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범죄 소설 연구에 천착한 저자는 이 책에서 범죄 소설의 탄생과 변화, 기능과 폐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나는 오랫동안 범죄 소설의 시작이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인 줄 알았는데, 이 책에 따르면 <셜록 홈스> 시리즈 이전에도 범죄 소설은 존재했다. 범죄 소설은 범죄자 전기물을 가리키는 뉴게이트 소설에서 출발해, 추리소설, 하드보일드 추리소설로 변형, 발전했다. 뉴게이트 소설은 범죄가 불공정한 사회체제로 인해 발생한다고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보다 사회개혁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취했다(일본의 사회파 소설과 유사해 보인다). 


뉴게이트 소설이 인기를 끌자 반사회적 풍조를 우려한 정부는 추리소설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추리소설은 범죄자가 아니라 탐정의 시각으로 범죄를 바라보며, 범죄자를 체포하고 처벌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뒤이어 나타나는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은 범죄 자체를 근절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드보일드 추리 소설의 주인공은 선도 악도 부정하는 안티 히어로인 경우가 많다. 


범죄 소설에 나오는 형사나 탐정이 죄다 남성인 것은 실제로 형사나 탐정이 대부분 남성인 까닭도 있지만, 범죄 소설이 남성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범죄 소설에서 남성은 주로 형사나 탐정으로 등장하고, 이성, 논리, 명석함, 냉철함 등을 상징한다. 반면 여성은 주로 범죄 피해자나 가해자, 형사나 탐정의 파트너 또는 뮤즈로 등장하고, 감정, 직관, 어리석음, 히스테리 등을 상징한다. 


예외도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 시리즈를 비롯한 이른바 노처녀 탐정 추리소설이다. 결혼하지 않은 노처녀, 할머니, 추녀 등은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남성성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여겨졌고, 이로 인해 '가까스로' 이성이나 논리를 내세우는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이 밖에도 범죄 소설은 오랫동안 백인, 귀족, 제국주의 등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고 공고히 하는 기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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