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에게 묻는다
사소우 아키라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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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버지는 폭력을 휘둘렀다. 참다못한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 변기를 닦고 술을 나르며 하루 종일 일해도 멀쩡한 신발 한 켤레를 못 산다. 치하야에게 인생이란 죽어야 벗어날 수 있는 지옥 그 자체다. 그런 치하야에게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난다. 치하야가 무심결에 걷어찬 지팡이의 주인, 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 이치타로다.


치하야는 지팡이를 걷어차서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이치타로는 사과 대신 보이는 풍경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한다. "10분이면 되니까 내 눈이 되어줘." 처음으로 같이 집으로 가는 중학생 커플, 시험 점수가 나빴는지 체육복이 담긴 주머니를 발로 차며 걷는 초등학생, 개미구멍을 들여다보는 할머니, 편의점에서 산 크로켓을 먹다가 떨어뜨린 회사원... 이치타로의 눈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던 치하야는 갑자기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걸 깨닫는 순간, 너무나도 슬퍼질 때가 있거든." 





사소우 아키라의 <꽃에게 묻는다>는 불우한 처지의 여성과 시각 장애인 남성의 사랑을 그린 감동적인 만화다. 치하야는 거친 여자다. 머리카락도 아무렇게나 묶고 다니고, 옷도 점퍼에 헐렁한 바지 차림이고, 표정도 항상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웬만해선 미간에 잡힌 주름이 펴지지 않는다. 


이치타로는 부드러운 남자다. 이치타로는 태어났을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고 부모와 떨어져 이모와 단둘이 사는데도 세상에 대한 불평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얼굴은 항상 미소 짓고 있고, 주변에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치하야는 처음에 이치타로의 부드러움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치하야만큼 세상이 원망스러울 텐데, 원망은커녕 감사의 말만 늘어놓으니 뭐 이런 별종이 다 있나 싶다. 하지만 점점 이치타로의 부드러움이 치하야의 마음을 움직인다. 사람들이 이치타로만 보면 웃고 말 걸고 잘 해주는 이유를 이해하게 된다. 





치하야가 이치타로를 만난 후 자기한테 주어진 삶에 감사함을 느끼고,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고, 세상 곳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과정을 보면서 나 또한 치하야처럼 마음이 열리고 눈이 새롭게 뜨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인생은 지옥 같지만, 지옥에 있다고 해서 나까지 악마가 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로는 이치타로 같은 천사를 만날 수도 있고, 때로는 나부터 이치타로 같은 천사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 가난도 장애도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치하야와 이치타로, 이 둘이 함께라면 극복보다 더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오랜만에 마음을 치유해주는 만화를 만나서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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