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아
고다마 지음, 신현주 옮김 / 책세상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췌장'에 이어 '성기'라니. 요즘 일본 소설 제목은 참 자극적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읽기 시작한 이 책. 삐딱한 시선으로 본 게 민망할 정도로 담담하고 처연했다. 작가가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인 것 같은데 대체 어떤 삶을 짜내면 이런 글이 써질지 짐작도 안 된다. 


이야기는 저자의 분신으로 짐작되는 화자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홋카이도 땅끝 마을에서 세 자매 중 장녀로 태어난 화자는 아버지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학대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사람 사귀는 것도 서툴러서 친구 하나 없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집 근처 대학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만류를 물리치고 도시에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욕실도 없는 허름한 다세대 주택에서 자취를 시작한 화자는 대학 1년 선배인 이웃 남자와 어울리게 되고 얼마 후 그의 여자 친구가 된다. 


연인 사이이니 자연히 잠자리도 가진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남자친구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두 사람 다 성 경험이 처음은 아니므로 신체적 결함이 있었던 건 아니다. 성적인 끌림도 있었고 사이도 좋았다. 결국 대학 시절 내내 한 번도 제대로 된 잠자리를 가지지 못한 채 졸업한 두 사람은 똑같이 교사가 되었고 결혼을 한다. 남편의 그것은 여전히 들어가지 않지만 그것만 빼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성관계 없이 남매처럼 혹은 식물처럼 조용히 살기로 한다. 


하지만 세상은 두 사람을 가만두지 않는다. 가족들은 손주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성화이고, 직장에선 자기 자식이 없어서 학생 관리가 안 된다는 비난을 듣는다. 잘 모르는 사람도 결혼했는데 애가 없다고 하면 "왜 아이 안 낳아?". "둘 사이에 무슨 문제 있어?" 같은 사생활 침해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급기야 화자의 어머니는 시댁 어른들을 볼 낯이 없다고 사죄 여행을 떠난다. 소설 제목만 봤을 때는 남편의 그것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인 듯했으나, 소설을 전부 읽고 나서는 임신과 출산을 하지 못하는(또는 하지 않는) 여성(및 남성)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차별과 압박을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분명 근사한 일이겠죠. 경험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말하니 아마 틀림없을 거예요. 하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이 거듭 생각하고 고민한 끝에 내린 결단을, 그렇게 살기로 한 결의를, 그건 틀렸다고 가볍게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 성장 배경이나 살아온 환경 등 다양한 인생의 조각들이 모여 그 사람의 현재가 있으니까요. (214쪽) 


누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다. 내 눈에는 최악의 선택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사람에게는 최선의 선택이다. 이것저것 다 시도해보고 남은 유일한 선택지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판단하거나 간섭하지 말 것. 누구에게나 남편의 그것처럼 남에게 쉽게 말할 수 없는 비밀 또는 콤플렉스가 있다는 걸 항상 기억할 것. 안 그래도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서 우리 서로만이라도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갖춰야 할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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