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소문이나 평판이 멀쩡한 사람을 바보 만드는 일은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대중화되고 SNS가 실시간으로 개인 정보를 퍼나르는 요즘만큼 심하지는 않았을 터. 누가 어떻게 인터넷과 SNS를 이용해 여론을 조작하고 목적을 이루는지, 홍콩을 대표하는 추리 소설가 찬호께이의 신작 <망내인>에 잘 나와 있다. 


홍콩의 한 아파트에서 열다섯 살 여중생 '샤오원'이 투신해 목숨을 잃는다. 사인은 자살이지만 사람들은 안다. 샤오원이 얼마 전 지하철에서 한 남성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고, 범인으로 지목된 남성의 가족이 샤오원의 신상을 '털고'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리자 견디다 못해 '자살당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샤오원의 유일한 혈육인 언니 '아이'는 수소문 끝에 '탐정들의 탐정'으로 불리는 천재 해커 '아녜'를 찾아가 동생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혀달라고 의뢰한다. 


언뜻 보기에는 해커들의 두뇌 싸움을 축으로 한 IT 소설 같지만, 90년대 외환위기와 2000년대 금융위기 이후 중산층이 급속히 몰락하고 빈부 격차가 점점 더 극심해지는 홍콩의 현실을 고발하는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하다. 휴일에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일했지만 가족이 살 집 한 칸 남기지 못하고 쓸쓸히 죽은 아이의 부모, 생활비를 벌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한 아이, 어린 나이에 가족의 붕괴를 목격하고 학교와 사회에서도 소외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샤오원... 이들의 이야기는 2018년 대한민국 현실과도 다르지 않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어두운 본성을 유감 없이 드러내는 모습도 마찬가지다. 홍콩이나 대한민국이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각자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 안에 자신이 느끼는 혐오와 차별, 질투와 시기, 우울과 분노 등을 쏟아붓고 있다. 이렇게 형성되고 유지되는 거대한 망(net)에 자기 이름 석 자가 걸리는 순간 신상 털이는 물론 인격살인 수준의 비방과 음해를 당하게 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공인이나 연예인들이 인터넷상의 악플로 인해 스트레스 또는 우울증에 시달리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를 우리는 잘 안다. 


작가는 이토록 시의적절하고도 중요한 주제를 흥미진진하게, 그러나 결코 가볍지는 않게 풀어냈다. 다만 결말이 잘 빠진 중화권 드라마처럼 지나치게 매끄러운 것이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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