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 new 시리즈 4
The School Of Life 지음, 구미화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불과 백여 년 전에 비하면 먹고사는 형편이 월등히 나아졌음에도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인생이 막막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생학교에선 현대인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다양한 문제의 원인으로 자기 이해, 연민, 의사소통의 결핍을 든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인생학교는 문화를 통해 감성지능을 계발하기 위한 다채로운 방안을 모색한다. 인생학교의 신간 <관계>는 현대인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 중에서도 이성 간의 사랑에 관한 문제를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 책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사랑을 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에 부딪히고 좌절하는 까닭은 '낭만주의 애정관'과 관련이 깊다. "낭만주의자들에게 사랑은 본질적으로 '발견'을 뜻한다. 우리가 별생각 없이 러브스토리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 태반은 러브스토리의 '시작'이다. 사랑에서 정말로 투지 넘치는 도전은 어떻게 오랫동안 사랑을 지속하느냐와 관계가 있다."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낭만주의가 출현하기 전까지 인류는 '남자 집안에서 하는 곡물 사업이 번창하고 있어서' 혹은 '여자의 아버지가 그 지역의 치안판사라서' 등의 이유로 남녀 간의 결합을 결정했다. 이들에게 결혼은 경제적 또는 법적 계약에 지나지 않았고, 섹스는 후손을 만들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낭만주의가 출현한 이후 인류는 내면과 외면이 굉장히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야 하며, 첫눈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을 느껴야 연애로 발전할 수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다. 이들에게 결혼은 연애의 완성이며, 성적, 정서적인 애정이 없는 결혼은 곧 불행한 결혼이다. 


하지만 대체로 그렇듯이 이상과 현실은 일치하기 어렵고, 이 때문에 사람들은 낭만주의 애정관이라는 이상과 실제 연애 또는 결혼 생활 사이에서 갖은 어려움을 겪는다. 방금 전까지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도 치약을 끝부터 짜지 않고 중간부터 짰느니, 일을 본 다음 변기 뚜껑을 내렸느니 안 내렸느니 하는 문제로 토라지고 다투는 것은 서로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 큰 어른 두 사람이 한 집에서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낭만주의 애정관에서 벗어나 심리학적으로 성숙한 애정관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한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인위적인 노력을 수시로 해야 한다. 직감으로는 자신이 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알 수 없다." 낭만주의 애정관이 만든 이상적인 연애, 이상적인 결혼 생활에 서로를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좋은 남녀관계란 우선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핬다. 


낭만주의 애정관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면 - 이미 사귀고 있는 애인 또는 배우자가 있다면 - 상대의 단점이나 약점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마다 '장점의 약점'이라는 개념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미국 작가 헨리 제임스가 제시한 이 개념은 간단히 말해 한 사람의 좋은 점과 짜증 나는 점이 교묘하게 연결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애인 또는 배우자를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사람으로 여긴다면 한때 당신은 그를 책임감 있고 믿음직한 사람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애인 또는 배우자가 잔소리가 많고 간섭이 지나치다고 여겨진다면 한때 당신은 그런 그를 배려심 넘치고 자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 책은 또한 낭만주의 애정관이 강조하는 '백년해로'라는 신화로부터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두 사람이 서로를 소유하는 것이 아님을 알면 매일같이 서로에게 존중받기 위해 극도로 조심한다. 상대방이 언제든 떠날 수 있음을 알면 불안감만 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애정 어린 고마움을 가지도록 끊임없이 자극한다." 불행하지만 덜 외로운 결혼 생활이 외롭지만 행복한 독신 생활보다 낫다는 믿음도 낭만주의 애정관이 낳은 해악이다. 사람이 다 같은 생김새가 아니듯 사랑도 다 같은 형태일 수 없다. 나에게 잘 맞는 사랑의 형태가 누구에게나 잘 맞는 사랑의 형태일 순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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