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경관 마르틴 베크 시리즈 4
마이 셰발.페르 발뢰 지음, 김명남 옮김 / 엘릭시르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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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는 사망한 사람이 남긴 흔적을 조사하는 데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사망한 사람이 다름 아닌 '형사'라면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들은 자신들이 속한 경찰 조직과 그동안 풀지 못한 사건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제4권 <웃는 경관>의 줄거리는 이렇다. 이야기의 배경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선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고, 이로 인해 마약, 폭력, 성매매 등을 단속하는 데 투입되던 경찰들이 시위 현장에 투입되어 '지하 세계'는 때아닌 '호황'을 맞이한 상태다. 우리의 주인공 마르틴 베크는 시위 현장에 투입되지도 않고 지하 세계를 단속하는 데 불려가지도 않고, 자신의 가장 절친한 동료인 콜베리의 집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시각, 스톡홀름 시내를 달리던 이층버스 한 대가 코너를 돌자마자 인도를 타고 올라가 철조망을 들이받고 그대로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마침 주위를 순찰하던 순경 둘이 지나가던 시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에 가고, 순경들은 심한 총상을 입은 시체 아홉 구가 버스 안을 나뒹구는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다. 얼마 후 스톡홀름 살인수사과 소속 형사들에게 이 소식이 전해지고,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하던 마르틴 베크는 재빨리 현장으로 달려간다. 그가 아주 잘 아는 형사 하나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기다리는 줄도 모른 채... 


이 사건은 '스웨덴 최초의 대량 살해 사건'으로 불리며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는다. 마르틴 베크와 동료 형사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하나 더 있다.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사람 중에 자신들이 아주 잘 하는 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인수사과 형사들은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누구인지 추적하는 동시에 죽은 형사가 왜, 그 시간에, 어쩌다가 그 버스 안에 있었는지 알아내려고 한다. 어쩌면 죽은 형사가 범인일까? 범인이 따로 있다면 형사를 왜 죽였을까? 죽은 형사에게 동료들이 알지 못하는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 


사실 나는 일하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 대개는 자기 자신도 차라리 세상에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스러기 인생들이지.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세상사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고민하겠지만, 사실은 그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건 바로 xxxxx 같은 작자들이야. 자기 돈, 자기 집, 자기 가족, 그 잘난 사회적지위 외에 다른 건 염두에도 없는 천박하고 비열한 놈들. 어쩌다 보니 떵떵거리고 살게 되었다고 해서 남들을 마구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지. 그런 놈들이 수없이 많지만, 대개는 포르투갈 창녀를 목 졸라 죽일 만큼 멍청하진 않아. 그래서 우리는 그런 놈들을 절대로 잡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그런 놈들의 희생양을 만날 뿐이지. (407~8쪽) 


이야기 자체도 흥미진진하지만 사회파 소설답게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또한 거창하고 묵직하다. 작가는 작중 인물의 입을 빌려 악을 저지르는 사람도 나쁘지만 악을 저지르게 만드는 상황(또는 사람) 또한 나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사회파 소설이 하나의 장르로 확립된 지금으로서는 새롭지 않지만, 1968년 이 소설이 처음 출간되었을 때는 참신하게 여겨졌을 것 같다. 이러한 메시지를 전하는 대상이 정부와 경찰, 엄청난 부를 지닌 기업가 등 이 사회의 주류라는 점도('자기 돈, 자기 집, 자기 가족, 그 잘난 사회적지위 외에 다른 건 염두에도 없는 천박하고 비열한 놈들' 이 대목에서 여러 인간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 소설은 결말도 대단하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 제1권 <로재나>와 제2권 <연기처럼 사라진 남자>의 결말만 해도 이 정도의 임팩트가 있지는 않았는데, 얼마 전에 읽은 제3권 <발코니에 선 남자>의 결말이 상당한 충격을 주더니 이번에 읽은 제4권 <웃는 경관>의 결말은 그야말로 쐐기를 박는다. 이제까지 읽은 추리 소설의 결말 중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다(이 소설 안 읽은 사람 없게 해주세요 ㅠㅠ). 


부르주아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과 경찰 조직 내의 무능과 무기력을 고발하면서도 이야기 자체의 재미와 긴장감을 잃지 않은 점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북유럽 범죄소설의 선구자'로 만들지 않았나 싶다. 이래서 요 네스뵈가, 故물만두 님이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극찬했나 보다. 아무래도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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