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여자는 없다 - 국민여동생에서 페미나치까지
게릴라걸스 지음, 우효경 옮김 / 후마니타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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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강렬한 이 책. 원제는 더욱 자극적이다. <Bitches, Bimbos, and Ballbreakers>. 이 책은 1985년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미국의 페미니스트 행동주의 그룹 게릴라걸스가 2003년에 출간한 책을 번역한 것으로, 연령과 피부색, 직업 등을 불문하고 여자들을 따라다니는 온갖 고정관념들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미국 사례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의 번역자가 각 용어에 대응되는 우리말 단어는 물론 해당 단어의 역사와 숨은 이야기를 꼼꼼하게 첨부해놓았다. 


이 책에 소개된 단어로는 파파걸, 말괄량이, 이웃집 소녀, 빔보, 팜므 파탈, 잡년, 엄마, 노처녀, 할망구, 등등이다. 여기에 첨가된 우리말 단어로는 국민여동생, 아줌마, 꽃뱀, 철벽녀, 된장녀, 걸레, 창녀, 공순이, 꼴페미 등이 있다(한국이 이 정도인데 각 나라마다 조사하면 그 양이 얼마나 될까). 실제와 무관하게 고정관념으로 이용되는 여자들의 사례로는 나이팅게일, 제마이마 아줌마, 플래퍼, 카르멘 미란다, 마더 테레사, 도쿄 로즈 등이 있다. 특히 나이팅게일은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상당히 과격하고 터프한 인생을 살았고, 마더 테레는 '세계의 성녀'라는 이미지와 다르게 돈을 밝히고 불의와 타협했다고. 


남성과 달리 여성에 관해서는 개별 사례를 일반화하여 집단 전체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용어도 상당히 많다. 골드 디거, 트로피 와이프, 사커맘, 스테이지맘 등은 워낙 유명해 일반명사처럼 사용되고 있으며(트로피 허즈번드, 사커대디, 스테이지대디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던가), 사치하기를 좋아하는 여성을 조롱하는 말인 밸리걸이 한국에선 된장녀로, 페미나치는 꼴페미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보스턴 결혼의 구성원들이 실제로 성적 관계를 맺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겠지만, 당시 여성을 스스로는 성욕이 없는, 남성의 성적 욕구를 받아 주는 존재로만 생각했던 빅토리아 시대 사회는 이런 관계를 용인하고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했다. 이 커플들은 과연 독신 생활을 함께 견디는 그저 좋은 친구 사이였을 뿐일까? 아마도 실제로는, 단순히 좋은 친구 사이인 사람들도 몇몇 있었겠지만, 많은 이들이 그 이상의 관계를 맺었을 것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차별과 압박을 인식하고 이를 타파하고 개선하기 위해 앞장섰던 여성들은 당연히 각자의 삶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서도 진보적인 면을 보였다. 가령 19세기에 어떤 여성들은 결혼하지 않고 몇 명씩 짝을 지어 생활했고, 사회에선 이를 '보스턴 결혼'이라고 부르며 심지어 장려하기까지 했다. 19세기에도 이렇게 자유롭게 생활한 여자들이 있었다니! 19세기 여성의 삶은 하나같이 가부장제에 의해 잠식되어 끔찍했을 거라고 상상했던 나로선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이 밖에도 여성을 조롱하고 비하하는 다양한 용어의 어원과 역사를 설명하며 아울러 세계 역사와 각 나라의 문화, 정치, 경제 등에 관해서도 자연스럽게 지식을 습득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페미니즘이 또 이렇게 날 공부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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