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다 보니 영화도 원작이 있는 작품을 주로 보는 편이다. 11월 29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마찬가지. 아가사 크리스티의 원작 소설을 워낙 좋아해 리메이크 영화와 드라마라면 죄다 찾아본 만큼 이번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도 개봉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 시사회 이벤트에 당첨되어 수능 시험일이었던 지난 목요일, 개봉되기 전에 <오리엔트 특급 살인>을 먼저 감상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그것도 그냥 시사회가 아니라 GV 시사회,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김중혁 작가님이 게스트로 참석해 더욱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일단 영화 이야기부터. 영화는 아가사 크리스티 원작의 줄거리를 비교적 충실히 따른다. 세계 최고의 명탐정 '에르큘 포아로(케네스 브래너)'는 예루살렘에서 사건 하나를 해결하자마자 곧바로 다른 사건을 의뢰받아 이스탄불에서 출발해 런던으로 향하는 오리엔트 특급 열차에 몸을 싣는다. 포아로가 타게 된 열차는 겨울인데도 만원인 데다가 포아로와 같은 객차에 탄 승객 13명의 면면 또한 화려하다. 열차가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포아로는 옆 객실에 탄 미국인 사업가 라쳇(조니 뎁)으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모처럼 푹 쉴 생각이었던 포아로는 라쳇의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는데, 이튿날 라쳇이 변사체로 발견되면서 포아로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게 된다.


폭설 때문에 멈춰버린 열차 안에서 포아로는 승객 13명을 한 사람씩 탐문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이렇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한 날 한 시 같은 열차에 탔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 승객 13명은 나이도 국적도 계급도 직업도 저마다 다르다. 13명 모두 범인이 아님을 증명할 만한 알리바이 또한 가지고 있다. 하지만 포아로는 13명 모두 용의자 선상에서 배제하기엔 석연찮은 이유 또한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되고, 포아로는 이 중에 범인이 누구인지 추려낼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다. 자타가 공인하는 명탐정 포아로는 역대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어려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그는 과연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할까.





유명한 작품을 영화로 각색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해 각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작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획기적인 방식으로 각색하는 것이다. 전자인 경우, (원작을 안다면) 줄거리를 즐기거나 결말을 기대하는 재미는 덜한 반면, 영화의 연출이나 미술, 의상, 배우들의 연기에 훨씬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케네스 브래너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은 전자이며,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반영한 영화의 장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원작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추리 스릴러 영화를 볼 때 흔히 그러듯이 범인이 누군지 추리하거나 트릭을 찾아내거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반전을 기대하는 재미는 덜하지만, 원작에선 볼 수 없는 영화 상의 연출이나 미술, 의상, 배우들의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가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1930년대 유럽의 건축 양식과 거리 풍경은 물론, 이제는 운행이 중단된 오리엔트 특급 열차의 위용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배우들의 화려한 의상과 열차 안의 고풍스러운 실내 장식, 연이어 등장하는 고급 요리 또한 눈을 즐겁게 한다. 이 영화를 보고 유럽 기차 여행에 대한 로망을 품는 사람도 제법 많을 것 같다. 포아로와 승객 13명의 캐릭터가 원작과 다르게 각색된 점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참고로 영화 속 포아로는 원작에는 없는 액션을 펼치고 괴짜 같은 성미를 더욱 자주 내보이는 등 원작보다 다채로운 캐릭터로 승화되었다. 승객 13명도 원작에선 전원 백인인 데 반해 영화에선 아프리카계 미국인과 라틴계가 추가되는 등 세부적인 변화가 적지 않다.





케네스 브래너, 조니 뎁, 미셸 파이퍼, 페넬로페 크루즈, 윌럼 더포, 주디 덴치 등 세계 정상급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연기 경연을 펼치는 모습을 바라보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조니 뎁은 분량이 많지 않은 데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케네스 브래너는 이 영화에서 주연은 물론 연출까지 담당했다. 셰익스피어 등 고전을 각색한 작품에 주로 출연해온 배우인 만큼 이 영화 또한 추리 소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트릭에 집중하기보다는 원작을 보다 풍성하게 해석하는 데 주목한다. 이를테면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드라마와 이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 사적 제재를 실현하고자 결의한 사람들과 사적 제재의 한계 등. 


영화를 보고 나서 원작 소설을 다시 한 번 읽었는데, 케네스 브래너가 원작의 뼈대를 유지하되 디테일을 풍성하게 덧붙이는 방식으로 리메이크를 잘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후속편을 제작하고 있다고 하니 이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포아로 시리즈를 전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이번 겨울을 아예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함께 20세기 초 미스터리 소설을 독파하는 계절로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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