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 음악과 황혼에 대한 다섯 가지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36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노벨문학상 작가가 대개 그렇지만 가즈오 이시구로 또한 읽기 쉬운 작가는 아니다. <나를 보내지 마>, <남아 있는 나날> 등을 읽고 머리가 딱딱하게 굳었다면(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들여 책 샀나 자괴감이 든다면) <녹턴>으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가즈오 이시구로의 작품 중에서 가장 경쾌하고 발랄하며 유머러스하다. 


<녹턴>은 가즈오 이시구로가 2009년에 발표한 (현재로서는) 유일한 소설집이다. 다섯 개의 단편이 실렸고, 다섯 편 모두 음악에 관한 이야기이다(참고로 가즈오 이시구로는 소설가가 되기 전 뮤지션이 되기 위해 여러 차례 오디션을 봤을 만큼 음악에 대한 열정이 상당하고 조예도 깊다). 


첫 번째 소설 <크루너>는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서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연주하는 밴드의 기타리스트 '얀'이 한때는 유명했지만 지금은 한물간 가수 '토니 가드너'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토니는 아내 린디와 '이별 여행' 중이라며, 이 여행을 끝으로 두 사람은 이혼하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를 사랑한다고, 아내를 위해 러브송을 부르려고 하니 반주를 해달라고 하는 토니의 청을 얀이 과연 들어줄까. 


표제작 <녹턴>은 <크루너>의 후속편 격이다. 색소폰 연주자 스티브는 재능은 뛰어나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성공하지 못했다. 아내와 매니저의 제안으로 거액의 성형수술을 받은 스티브는 수술 후 할리우드의 일급 호텔에서 지내다가 옆방에 묵고 있는 토니 가드너의 이혼녀 린디를 만나게 된다. 이혼 후 새로운 남자를 만나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린디. 두 사람은 얼굴에 붕대를 감은 채 음악과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절친한 사이로 발전한다. 


이 소설집의 전체적인 테마는 '음악을 통한 만남'이다. 외국을 떠돌며 영어를 가르치는 레이먼드는 오랜만에 영국으로 돌아와 대학 시절 같은 음악을 좋아했던 여자 동창과 재회한다(<비가 오나 해가 뜨나>). 성공을 꿈꾸는 젊은 싱어송라이터 '나'는 생계를 위해 누나네 집에 머물며 일을 거들다가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부부를 만난다(<말번 힐스>). 보잘 것 없는 뮤지션인 '나'는 우연히 거리에서 몇 해 전 첼로의 대가를 자처하는 여인의 꾐에 빠져 인생을 바꾸려다 실패한 한 남자를 만난다(<첼리스트>). 주인공은 매번 음악을 통해 어떤 인물을 만나고, 그 만남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다시 만난다.


이 소설집에서 음악은 떠나보내야 하는 과거, 변해버린 현재, 영영 닿지 못할 것 같은 미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성공을 열망하는 젊은이가 지닌 유일한 도구이자, 그 열망이 허무하게 무너진 후에도 곁에 남아 있는 친구다. 어쩌면 작가 자신이 뮤지션이 되기를 열망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소설가가 되었기에 이런 회한의 감정을 더욱 잘 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소설가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상인 노벨문학상을 받은 지금도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