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하는 세상의 화가 민음사 모던 클래식 75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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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집중해서 읽고 있다. 다행히 가즈오 이시구로가 발표한 소설은 여덟 권이 전부이고(한 권은 소설집이다) 여덟 권 모두 국내에 소개된 상태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출간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는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조언에 따라 출간 순서대로 읽고 있는데 과연 읽기가 훨씬 쉽다. 작품의 장르나 작법이 조금씩 달라질 뿐 문제의식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1986년작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그의 1982년작이자 데뷔작인 <창백한 언덕 풍경>과 비슷한 점이 많다. 소설의 주인공은 명망 있는 노(老) 화가 '마스지 오노'. 겉보기엔 화가로서 적잖은 부와 명예를 쌓고 틈나는 대로 손주와 놀아주는 성공한 노인처럼 보이지만, 마스지 오노의 실상은 2차 세계대전 때 일본 제국주의에 가담해 전쟁과 일왕을 찬양하는 그림을 그린 전범 부역자이다. 마스지 오노의 동료 화가들은 잘못을 뉘우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하지만, 마스지 오노는 잘못을 뉘우치지도 않고 외려 과거의 신념과 성취를 '아름답게 왜곡해' 기억한다. 


마스지 오노는 <창백한 언덕 풍경>의 주인공 '에츠코'의 시아버지 '오가타'와 매우 닮았다. 오가타는 2차 세계대전 때 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전쟁의 정당성을 알리고 일왕에게 충성하도록 가르쳤다. 오가타는 고향인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전쟁이 패배로 끝난 후에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과거를 아름답고 자랑스럽게 추억한다. 며느리 에츠코는 시아버지 오가타의 비위를 맞추지만, 아들 즉 에츠코의 남편은 오가타를 못마땅하게 여기다 결국 폭발한다. 


<창백한 언덕 풍경>과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는 각각 오가타와 마스지 오노를 통해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고 불편한 과거와 타협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는 작품이다. 일본이 자국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은 채 역사를 합리화하는 상황을 빗댄 것으로도 읽을 수 있다. 잘못을 합리화하고 불편한 과거와 타협하는 인간형은 후속작인 <남아 있는 나날>에도 등장한다. 세 작품을 연이어 읽으면 비슷한 점을 여럿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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