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의 요리사들
후카미도리 노와키 지음, 권영주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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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얼굴과 이름만 가리면 일본 출신 작가가 쓴 소설인지 누가 알겠어요?" 얼마 전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를 두고 이동진이 한 말이다. 이 말은 <전쟁터의 요리사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조리병으로 참전한 팀 콜의 병영 생활을 그린 이 소설에는 '일본스러운' 면이 조금도 없다. 


이렇게 독특한 소설을 쓴 작가는 후카미도리 노와키. 1983년 일본 가나가와 현에서 태어났고, 2010년 단편으로 데뷔해 2015년에 발표한 <전쟁터의 요리사들>로 2016년 서점대상 후보, 제154회 나오키상 후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 제69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 등 큰 주목을 받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미스터리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쟁터의 요리사들>을 두고 "일본의 젊은 여성이 유럽의 전쟁에 대해 이리도 잘 묘사하다니 작가로서 타고난 것이 아닌가!"라고 극찬했다.


이야기는 미국 루이지애나 출신 팀 콜이 자원입대를 하면서 시작된다. 인생을 사는 낙이 뭐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먹는 것'이라고 대답하겠다고 할 만큼 음식을 좋아하는 팀은 어렸을 때부터 친할머니가 손수 쓴 레시피 공책을 즐겨 봤다. 1942년,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마을마다 지원병을 모집하는 공고가 나붙었다. 억지로 끌려가느니 스스로 입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판단한 팀은 할머니의 레시피 공책 한 권을 부적 대신 챙겨 떠났고, 그렇게 유럽으로 건너갔다.


시간은 흘러 1944년 6월이 되고, 그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전쟁이 한창인 가운데 팀은 절친이자 조리병들의 리더인 에드, 트러블 메이커인 디에고, 조리의 달인 라이너스와 함께 병사들의 먹거리를 책임진다. 병영에서 먹거리를 책임지는 건 단순히 음식을 조리하는 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식재료를 보급하고 관리하고 처리하는 일 모두 이들의 책임이다. 그만큼 어렵고 중요한 자리다. 이로 인해 팀은 몇 가지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필요 없어진 낙하산의 행방을 쫓거나, 홀연히 사라진 분말 달걀 600상자를 찾거나, 네덜란드 민가에서 벌어진 괴이한 죽음 사건을 목도하게 되고 해결하게 된다. 


소설 초반은 팀이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일종의 미스터리 소설의 형식을 띈다. 그러다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 팀이 전쟁의 경과와 함께 어엿한 군인으로 성장하는 동시에 전쟁의 참상과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자주 나온다. 방금 전까지 멀쩡하게 살아 있었던 사람이 삽시간에 차디찬 시체로 발견되고, 살기 위해 군인은 물론 민간인끼리도 서로를 의심하고 고발하고 살해하는 상황이 잇달면서 팀은 전쟁의 실체를 알게 되고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혼란스러워한다.


'빼앗은 목숨, 구한 목숨, 모욕을 주고 만 목숨. 세고 들자면 끝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픔이 마비되는 일은 없었다.' 어느덧 노인이 된 팀은 전쟁이 끝난 지 몇십 년이 흐르고 냉전 시대마저 끝났는데도 자신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슨 패기와 열정으로 전쟁에 뛰어들었을까.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았던 자들은 누구일까. <전쟁터의 요리사들>은 전쟁 미스터리라는 가벼운 형식으로 시작해 의외로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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