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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잔다
김은주 지음 / 봄알람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은 일반적인 책에 비해 크기도 작고 두께도 얇다. 하지만 내용은 결코 작거나 얄팍하지 않다.
이 책은 남성 일색인 기존 철학계에서 큼직한 족적을 남긴 여성 철학자 6인의 삶과 지적 여정을 소개한다. 이 책에 소개된 철학자는 한나 아렌트,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주디스 버틀러, 도나 J. 해러웨이, 시몬 베유, 쥘리아 크리스테바 등이다. 이 중에 내가 전부터 알고 있었던 여성 철학자는 모두 한나 아렌트, 주디스 버틀러, 시몬 베유뿐이다. 이들을 제외한 3인은 부끄럽게도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다. 그래서 일부러 이들 3인의 항목을 더욱 공들여 읽었다.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과연 내가 이 이름을 온전히 외울 수 있을까)은 데리다의 해체론과 마르크스주의와 페미니즘, 포스트식민주의를 교차시키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자 한 사상가다(47쪽). 인도 출신인 스피박은 성별로 보나 국적으로 보나 비주류인 자신의 처지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주류의 기준에 맞춰 자신을 바꾸거나 길들이는 것을 저항하며 평생을 보냈다. 인도 델리의 길거리에서 여성이 혼자 달리기를 한 것은 스피박이 최초다.
도나 J. 해러웨이는 구체와 추상, 자연과 문화, 유기체와 기계 등 기존의 이분법과 이항대립의 경계를 붕괴시키는 실험을 했다. 미국 출신인 해러웨이는 어린 시절 엄격한 가톨릭 학교에서 순종적인 여성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으나, 대학 진학을 계기로 가톨릭 문화와 멀어져 학문의 세계로 진입했다. 해러웨이는 생물학에 기반해 백인 남성 중심의 죽은 지식을 비판했고, 성소수자 문제에도 깊숙이 관여하면서 남성과 여성뿐인 기존의 성 구분법이 얼마나 어리석고 폭력적인지 역설했다.
쥘리아 크리스테바는 불가리아 출신이지만 프랑스에서 학술 활동을 시작한 학자이자 작가이자 언론인이다. 크리스테바는 남성 중심의 전통적 언어관을 비판하고, 보편적인 성적 입장을 반영하는 새로운 언어관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크리스테바는 학계 안에 머무르지 않고 언론 및 방송, 저술 활동에도 열심이다. 비평을 창작의 영역으로 끌어들였을 뿐 아니라 추리 소설을 집필하기도 했다고 하니 언젠가 꼭 읽어보고 싶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이라는 허구성에 머물러선 안 된다. '여성'이 공통적인 특징과 관심사를 가진 집단이라는 주장은 인간을 여성과 남성으로 나누는 성관계의 이원적 관점을 강화하면서 무의식에서부터 성 역할을 규제하고 성별화를 수행한다.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이 단 하나의 여성을 그리고 정체성의 정치에 얽매여 보편적, 통일적 여성상을 재현할수록, 다양한 차이를 주창하는 여성은 지워진다. (87쪽)
한나 아렌트, 주디스 버틀러, 시몬 베유에 관한 항목 중에서는 주디스 버틀러에 관한 항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버틀러는 제3세대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여성주의 철학자이자 퀴어 이론가다. 버틀러는 젠더에 맞추어 사는 것이나 젠더를 거스르며 사는 것이나 개인을 억압하고 차별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분석한다. 문제는 남성과 여성, 오로지 두 가지 선택지만을 인정하는 기존의 젠더 이원론이며, 남성 중심 사회 구조에 대항해 여성 인권의 향상을 주창하는 페미니즘 운동 또한 기존의 젠더 이원론에 갇히지 말고 다양한 여성성, 확대된 여성성을 포괄할 것을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