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곳에서
제임스 설터 지음, 이용재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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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제임스 설터의 책을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많은 독자들이 극찬한 제임스 설터의 소설집 <가벼운 나날>과 <어젯밤>도 몇 번이나 끝까지 읽어보려 했지만 항상 실패했다. 


여행기라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제임스 설터의 여행 산문집 <그때 그곳에서>를 집어 들었다. 과연 소설에 비하면 에세이는 훨씬 읽기 쉬웠다. 소설을 읽을 때는 몰랐던 제임스 설터의 개인적인 이력도 알게 되었다. 제임스 설터는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졸업 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한 경력이 있다. 복무를 마친 후에는 미국,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몇 달, 길게는 몇 년 씩 살았다. 


이 책은 제임스 설터가 전투기 조종사로 복무하던 시절 방문했던 장소들을 소설가가 된 후 다시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제임스 설터가 과거에 방문했던 장소들은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위스, 일본 등지의 도시 또는 시골이다. 제임스 설터는 이 장소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며 젊은 시절의 기억을 반추하고 오늘날의 변화를 곱씹는다. 제임스 설터의 문체가 그렇듯, 극단적인 감정 표현을 최대한 자제하고 에피소드의 결말을 과감히 생략해 여운이 길게 남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제임스 설터가 몇십 년 만에 일본을 찾았을 때의 기록이다. 제임스 설터는 1946년 맥아더 장군이 점령군 사령관으로 일본에 부임했을 때 함께 도쿄에 왔다. 전쟁 직후의 일본은 복구를 기대하기 힘들 만큼 '허름했고' 거리마다 '배설물 냄새가 났다'. 하지만 몇십 년 후 다시 찾은 일본의 도시들은 로스앤젤레스나 퀸스를 방불케할 만큼 발전해 있었다. 사람들은 활기 넘치고 열심히 일했으며, 물가는 뉴욕보다 두 배나 비쌌다.


제임스 설터는 도쿄 진보초에 있는 힐탑 호텔에도 묵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 머물며 작품을 집필한 것으로 유명한 이 호텔은 처음부터 제임스 설터의 마음을 사로잡진 못했다. 외관은 허름하지, 객실은 작지, 베개는 딱딱하지. 나라도 탐탁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제임스 설터는 점점 이 불완전한 공간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허름한 외관은 운치 있고, 작은 객실은 안락하게 느껴졌다. 딱딱한 베개조차 일본 문화의 정수처럼 여겨졌다. 


제임스 설터가 이 호텔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호텔 근처에 도쿄에서 최고로 꼽히는 소바 집 두 곳이 있다는 것과, 도쿄 자이언츠가 경기하는 고라쿠엔의 도쿄돔이 걸어서 15분 거리라는 것이었다. 여행지 숙소는 뭐니 뭐니 해도 위치 좋은 곳이 최고임을 알았던 걸 보면 제임스 설터는 여행 고수였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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