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건너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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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쓰코는 한때 촉망받는 커리어 우먼이었지만 현재는 도의회 의원인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전업주부다. 어느 날 독신인 여성 도의원이 도의회에서 만혼 현상에 관해 발언하는 도중 "당신부터 빨리 결혼해" "아이를 못 낳냐"라는 성희롱 섞인 야유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야유를 한 의원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는 가운데, 아쓰코는 "아이를 못 낳냐"라고 말한 사람이 남편이라고 직감하지만 입을 다문다. 그리고 얼마 후 아쓰코는 집 안에서 남편이 지인에게 받은 것으로 짐작되는 거액의 돈봉투를 발견한다. 


요시다 슈이치의 신작 <다리를 건너다>는 아쓰코의 이야기를 포함해 모두 네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의 세 편은 지금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을 그린다. 맥주 회사 영업 과장인 아키라는 미술관 큐레이터인 아내의 푸념을 가볍게 흘려넘긴다. 도의회 의원인 남편을 둔 아쓰코는 남편의 부정을 보고도 눈 감는다. 다큐멘터리 감독인 겐이치로는 누구보다 의협심에 불타고 정의를 추구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일에 휘말려 평온한 일상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 편의 이야기는 마지막 네 번째 편에 이르러 하나로 모인다. 


네 번째 편의 배경은 그로부터 70년 후인 2085년 일본. 작가는 이 시기의 일본을 인간과 로봇, 그리고 '사인'이라 불리는 새로운 생명체가 등장한 상태로 상상한다. 네 번째 편에는 앞의 세 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모두 등장한다. 그들이 말한 것, 말하지 않은 것, 선택한 것, 선택하지 않은 것, 행동한 것, 행동하지 않은 것의 결과와 그 대가가 4장에서 비로소 드러난다. 작가는 이러한 구성을 통해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영위하는 평범한 일상과 사소한 선택이 훗날 엄청난 결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공직자인 남편의 부정을 보고도 못 본 척한 아쓰코가 70년 후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아쓰코의 선택이 어떤 결말을 낳는지를 알면 오싹하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로는 드물게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미되었지만, 작가 특유의 치밀한 감정 묘사나 번뜩이는 사회의식은 그대로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일본 국내는 물론 국외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일본 내 여성, 성 소수자, 외국인 문제를 언급하고, 여성의 학교 갈 권리를 주장했다가 탈레반으로부터 총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2014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이야기는 작품 전체에 걸쳐 등장한다. 세월호 참사도 등장한다. 


지난달에 이 세월호의 침몰 뉴스가 나왔을 때, 아키라는 희생된 아이들 중에 고타로나 유카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동요하고 말았다. 희생된 아이들이 전날 밤에 자기 집에서 어떤 얼굴로 웃었을지 쉽게 상상이 가서 잇달아 전해지는 잔혹한 뉴스에 가슴이 먹먹해질 정도였다.

 

옆 부서에 작년에 입사한 성이 '곽(郭)'씨인 한국인 직원이 있는데, 그녀의 집이 이번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가까워서 학생들과도 길에서 자주 마주쳤다고 한다. 평소에는 밝고 활기찬 곽이지만, 아무래도 이 사건 직후에는 표정이 어두웠다. 


아키라를 포함해서 같은 층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희생된 아이들과 전에 마주친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60쪽) 


작품 전체를 통틀어 세월호 참사가 언급된 부분은 한 페이지 남짓에 불과하지만, 이 작품이 과거의 무수한 사건들이 복잡하게 결합되어 현재를 만들고 미래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을 감안하면 마음이 무겁다. 과거의 어떤 사건들이 결합되어 세월호 참사를 낳았을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일들 중에 '제2의 세월호 참사'로 이어질 만한 일은 없을까. "그때 바꿨으면 좋았을 거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아무도 지금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작중인물의 말이 마음에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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