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 인생이 여행에게 배워야 할 것들
정혜윤 지음 / 난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오래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좋아서 여러 권 구입해 한 권은 내가 소장하고 나머지는 지인들에게 나눠주기까지 했다. 제목만 보면 흔하디흔한 여행 에세이집 같고 실제로 여행 에세이가 실려 있기는 한데, 저자 자신의 이야기보다는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 저자의 후속작 <사생활의 천재들>, <마술 라디오> 등과 구성이 비슷하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유, 다양한 방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충북 음성에 사는 한충자, 정반헌, 이명재 할머니는 평생 한 번도 고향을 떠나본 적이 없지만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며 밤마다 시의 세계를 여행한다. 사진작가 임종진은 해마다 캄보디아 쪽방촌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기 위해 앙코르와트로 떠난다. 미얀마에서 온 청년 소모뚜는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한국에 와서 노동자로 일하다가 외국인 노동자 인권을 위해 일한다. 


나무 박사 강판권은 세상의 모든 나무의 수를 세고, 진딧물 박사 김효중은 사람들이 질색하는 진딧물을 보러 세계를 누빈다. 시인 송경동은 지하철 역사를 짓는 막노동을 하며 시를 썼고, 송규봉 박사는 운동권 학생에서 지도 전문가로 변신했다. 안재원 교수는 라틴어를 연구하며 과거를 여행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어느 하나 일반적인 여행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있던 곳을 떠나 낯선 곳에 도착해 생전 처음 해보는 경험을 하고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넓은 범주의 '여행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만약 '무엇'에만 집착한다면 우리는 앙코르와트를 신기한 돌무더기로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앙코르와트에 와서 소원을 비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궁금해하며 본다면 앙코르와트의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인생이 여행에게 만약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보느냐'를 배울 수만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덜 과시적이고 덜 속물적이고 덜 불행할 것이다. (114쪽) 


여러 번 읽은 책인데도 오랜만에 다시 읽으니 내용이 새로웠다. 책에 등장하는 분들 모두 요즘은 뭐 하시나, 잘 살고 계시려나 이런 생각도 들고. 요즘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참 많이 했는데, 이 책을 읽으니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만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다. 가까운 곳에서도, 바로 여기 내 자리에서도 여행자의 눈과 마음가짐만 있으면 얼마든지 여행을 할 수 있거늘.


밤마다 시의 세계를 여행하는 할머니들, 라틴어라는 배를 타고 과거를 유영하는 학자,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그어진 경계를 넘어선 청년처럼, 나도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여행법'을 떠올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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