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 -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밀란 쿤데라 전집 13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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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릴 때는 이런 소설을 좋아했다. 기승전결이 명확한 소설. 선악 구분이 뚜렷한 소설. 주인공이 착하고 정의로운 소설. 어떤 역경이 다가와도 이겨내는 소설. 어디서든 사랑을 만나고 언젠가는 이뤄지는 소설. 마지막은 해피엔딩인 소설. 


지금은 좀 다르다. 기승전결이 명확하지 않은 소설. 선악 구분이 모호한 소설. 주인공 성격이 복합적인 소설. 역경 앞에 무너지고 좌절하고 실패하고 포기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 사랑 따위 나오지 않기도 하고 사랑이 꼭 이루어지지는 않는 소설. 마지막을 굳이 결정짓지 않는 소설. 이제 이런 소설이 좋다. 이런 소설이 공감된다.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읽다가 십여 쪽을 읽기도 전에 내 마음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문장을 만났다. 쿤데라는 말한다. 소설을 쓰는 이유는 인간의 위대함을 기술하거나 성공과 승리의 영광을 기록하기 위함이 아니다. 인간이 얼마나 허섭하고 지질한 존재인지, 성공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승리는 얼마나 멀고 패배는 얼마나 가까운지를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하기 위함이다. 주인공이 어떻게든 잘 되고 어찌 됐든 승리하는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겠지만 위대하진 않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진실을 가리는 '커튼'에 불과하다. 


돈키호테는 패배했다. 그리고 그 어떤 위대함도 없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인간 삶이 패배라는 사실은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이다. 삶이라고 부르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소설 기술의 존재 이유가 있다. (21쪽) 

소설가의 야심은 이전 선배들보다 나아지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지 않았던 것을 보고 그들이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하는 데에 있다. 북극 발견이 아메리카 대륙 발견을 무효화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플로베르의 시학은 발자크의 시학을 폄훼하지 않는다. (29~30쪽) 


이어지는 글도 흥미롭다. 저자는 체코 출신이면서 망명 이후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하는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은 기쁜 일이지만, 만약 자신이 모국어인 체코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읽고 평가하는 일이 가능했을지 의문이다. "카프카는 독일어로만 글을 썼으며,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독일 작가로 간주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가 체코어로 자신의 책들을 썼다고 잠시 상상해 보자. 오늘날 누가 그를 인정하겠는가?" 


나아가 저자는 문학이 언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속성을 가진 탓에 역사와 국적이라는 콘텍스트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지적한다. 이를테면 오를란도 디 라수스(벨기에의 음악가)와 바흐의 모국어가 무엇인지 의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은 음악가이고, 음악은 언어와 연결되어 있는 정도가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언어는 벽이기도 하지만 문이기도 하다.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작품이 외국에서 번역, 소개되어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는 경우가 더러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해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오른 저자가 대표적인 예다. 


소설가는 역사의 하인이 아니다. 소설가를 매혹하는 역사란, 인간 실존 주위를 돌며 빛을 비추는 탐조등,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뜻밖의 가능성들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다. (97쪽)


밀란 쿤데라의 책이 대개 그렇듯이 이 책 또한 읽기가 쉽지 않다. 인용하는 작품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유럽 문학인 데다가 체코 문학인 점도 아쉽다. 하지만 책 내용이 어렵다고, 모르는 작품이 자주 인용된다고 놓치기엔 아쉬운 귀한 문장이 많다. 소설을 대하는 태도나 소설가로서 창작에 임하는 자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특히 역사에 관심을 가지되 역사에 함몰되지는 말라는 주장이 인상적이다. 소설가의 본분은 역사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미처 들춰보지 못했거나 일부러 들추지 않은 장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이를 통해 역사라는 '커튼'이 가린 인간 실존의 정체를 드러내라는 메시지가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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