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이다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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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재작년 가을처럼 교토의 가을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다. 하지만 떠날 수 없다. 여행 갈 돈도 시간도 없다. 할 수 없이 요즘 나는 교토 관련 여행 책을 잔뜩 사놓고 틈 날 때마다 읽고 있다. 여행 갈 돈도 시간도 없는 나 자신을 구박하며. 교토가 아닌 서울 한구석에 처박혀 있는 내 처지를 한탄하며. 


씨네 21 기자 이다혜의 여행 에세이집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도 읽었다. 영화 기자가 되면 좋은 점은 영화를 실컷 볼 수 있고 잘 나가는 영화감독과 배우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만이 아닌가 보다. 일반 직장인과 다르게 마감만 마치면 비교적 자유롭게 휴가를 쓸 수 있고, 출장을 빙자해 외국에도 자주 나가는 편이라고. 덕분에 기자 생활을 하는 동안 남부럽지 않은 여행 경험을 쌓았다니 그저 부럽다. 


떠났을 때만 '나'일 수 있는 사람들은 나름의 행복을 찾은 이들이겠지만, 나는 떠났을 때만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결국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는, 나라는 인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여행이다. 이곳에서의 삶을 위한 떠나기. (9쪽)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고 자주 하지만, 여행만이 삶의 탈출구이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진 않는다. 저자는 여행을 일상의 연장선상으로, '나라는 인간의 통일성을 지키기 위한 방법'으로 여긴다. 평소에 책과 영화를 좋아하니까 여행을 가서도 책과 영화를 눈여겨본다. 평소에도 잘 먹고 잘 마시니까 여행지에서도 잘 먹고 잘 마신다. 이따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에 도전하기도 하고 아예 아무것도 안 해보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삶이 바뀌고 인생관이 변하는 경험을 해본 적은 없다. 다만 삶이 보다 풍성해지고 인생의 빛깔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서울 다음으로 편하게 느끼는 도시라면 역시 교토다. 가장 여러 번 간 도시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오랜 외국 생활에서 귀국하는 기분으로 늘 하는 루틴이 있다. 그중 하나는 교토 빵집 체인인 시즈야에 가서 카르네라고 불리는 160엔짜리 샌드위치를 먹는 것이다. (250쪽) 


내가 요즘 가고 싶어 안달인 교토에 관한 이야기도 실려 있다. 저자의 교토 여행 루틴은 이렇다. "기온을 걸어 야사카진자를 지나 이노다커피에서 아침을 먹고 기요미즈데라에 들러 지슈진자의 연애운 오미쿠지를 뽑는다." 사흘 이상 머물 때면 두 번 이상 하는 루틴이 따로 있다. "늘 다니는 호텔은 시조카라스마의 비즈니스호텔 체인. 그곳에서부터 천천히 걸어 가모강을 건너 야사카진자로 간다. 이 도시에 머물 때면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 가모강에서 조깅을 한다." 


기온, 야사카진자, 기요미즈데라, 지슈진자, 시조카라스마, 가모강... 모두 지난 교토 여행 때 가본 곳인데도 저자가 알려준 루틴을 따라 여행하는 상상을 하니 새롭게 다가온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조깅 코스를 따라 아침 산책을 하고, 교토의 명물인 카페 조식을 먹고, 신사나 사찰을 둘러보면 얼마나 마음이 넉넉해질까. 점심엔 하루키가 애정하는 유두부나 지난 교토 여행 때 못 먹은 카레우동을 먹어야지. 아아. 떠나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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