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세계
리즈 무어 지음, 공경희 옮김 / 소소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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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눈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과연 모두 진실일까? 열두 살 소녀 '에이더'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유일한 가족인 아버지 '데이비드'의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으며 든 생각이다. 


1980년대 미국 보스턴 외곽의 어느 마을. 에이더는 보스턴 소재 대학의 컴퓨터공학 연구소 소장인 아버지 데이비드와 단둘이 살고 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대리모를 통해 딸을 얻은 데이비드는, 에이더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오로지 홈스쿨링만으로 수학, 과학, 암호학, 컴퓨터 공학까지 가르치고 있다. 에이더는 데이비드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만, 한편으로는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이성 친구를 사귀면서 평범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드가 이상한 징후를 보인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명석한 그가 웬만해선 잊기 힘든 것을 하나둘 잊어버리는 모습을 보이더니 급기야 실종되었다가 돌아온다. 데이비드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둘은 함께 살 수 없게 된다. 데이비드는 요양원으로 보내지고, 에이더는 데이비드의 오랜 동료이자 친구인 리스턴의 집에서 그녀의 세 아들과 살게 된다. 이 와중에 데이비드의 비밀스러운 이력이 문제가 되고, 에이더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오래전 데이비드가 자신에게 맡긴 파일의 암호를 풀려고 시도한다. 


소설 초반에 에이더는 자신만큼 데이비드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데이비드와 함께 사는 유일한 가족인 데다가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일상부터 학문까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니 그렇게 믿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데이비드의 비밀스러운 이력이 문제가 되면서 에이더는 데이비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데이비드가 에이더를 얻기 전까지 어떻게 살았는지, 가족은 어떤 사람들인지, 왜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자식을 얻으려고 했는지, 에이더가 아는 것의 대부분이 거짓임이 드러난다.


에이더가 알지 못한 것은 데이비드만이 아니다. 에이더는 평범한 가정이 어떤 건지, 학교생활이 어떤 건지, 친구와 사귀는 게 어떤 건지, 이성 친구와 단둘이 있을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해서 동경하고, 동경할 뿐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다. 결국 에이더는 평범한 가정에서 살게 되고 학교에도 다니게 되지만 결국 데이비드와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게 된다. 우정도 사랑도 에이더가 보는 곳과 다른 방향에 있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에이더는 알까. 이는 다 에이더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려 했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는걸. 시간이 흐르고 모든 진실이 드러나자 에이더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의 간극이 지구와 해왕성의 거리만큼 멀어 보여도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데이비드가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았든, 에이더가 어떤 삶을 동경했고 어떤 삶을 살든, 진실은 에이더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어린 에이더에게 데이비드가 보여주었던 세계, 어린 에이더의 눈에 비친 데이비드의 모습은 확실히 실재했다는 것. 그 긴 시간을 보내고 먼 거리를 돌아서야 에이더의 눈에 겨우 '보이게 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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