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의 생각법 - 과학자는 생각의 벽을 어떻게 넘어서는가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지음, 권오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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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생각법>은 베스트셀러 <생각의 탄생>의 저자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이 썼다. 최근에 나온 책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이 1989년에 나왔고, 그로부터 10년 후인 1999년에 <생각의 탄생>이 나왔다. <과학자의 생각법>에서 저자가 제기한 문제가 <생각의 탄생>에서 확장되고 정리됨을 감안할 때, <과학자의 생각법>을 읽고 나서 <생각의 탄생>을 읽는 것이 순서상 맞겠다. 


내가 봤던 어떤 연구에 따르면, 박사 후 연구원부터 정교수까지를 포함한 영국 화학자의 90%가 실험을 하거나 논문을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이 10% 이하라는 거야. 대부분의 시간은 연구비를 따내거나 행정 업무를 보거나 수업을 하거나 여행하는 데 보낸다면서. 이건 내 추측인데, 결과적으로 평범한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시연이나 하며 얼마 안 되는 학생들을 가르칠 뿐이라면, 100년 전처럼 오늘날에도 다섯 명의 화학자만이 대부분의 연구를 이끌어 간다고 봐. (97쪽) 


저자는 과학자이지만(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생리학과 교수) 과학만큼이나 과학 사회학에 관심이 많다. 과학 사회학이란 과학자들 사이에서 동료 집단이 가하는 압력과 집단행동이 과학적 사고를 형성하는 데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과학자 역시 다른 전문가 집단과 마찬가지로 집단적 사고에 취약하며 인기와 유행에 휩쓸리며, 많은 과학자들이 명석한 두뇌와 기발한 창의성을 가지고도 관료제의 폐단에 짓눌려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저자가 가장 아쉬워하는 건 위대한 과학적 발견에 대한 연구와 학습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반면, 위대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지기까지 과학자가 어떤 식으로 고민하고 탐구했는지에 관한 연구와 학습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쉽게 말해 과학계 내부에서조차 '물고기'에 대해서만 가르치고 '물고기 잡는 법'은 가르치지 않는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폐단을 극복하고자 과학자들이 남긴 노트, 서신, 자서전, 회고록 등을 분석해 위대한 발견에 이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문제를 인식하고 새로움을 발견했는지 알아냈다. 그리고 그 결과를 픽션의 형식으로 이 책에 담았다. 


저자는 생물학자, 역사학자, 화학자, 과학사학자 등 가상의 인물 여섯 명이 과학적 창의성의 핵심에 놓인 다양한 쟁점을 논하는 토론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야기 속에 루이 파스퇴르, 알렉산더 플레밍, 클로드 베르톨레, 야코부스 반트 호프 등 다양한 과학자들의 삶과 그들의 생각법이 녹아 있는데, 학창 시절 내내 '과학 포기자'로 지낸 문과생인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저자가 쉽게 쓰려고 노력했는데도 쉽게 읽지 못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많은 연구는 창의적인 과학자와 기술자는 어렸을 때부터 폭넓은 지적 호기심을 드러냈고, 성인이 되어서도 미술, 음악, 문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보고했다. (중략) 그들은 미술, 음악, 문학, 정치, 사회적 문제에도 과학 못지않게 참여했다. 그들은 몸과 마음 모두에서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과학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인간 지식을 더 넓게 통합하는 일에도 힘을 보탰다. (542쪽)

 

저자가 다섯 장(章)에 걸쳐 자세하게 풀어낸 이야기의 결론을 요약하면, 뛰어난 과학자가 되기 위해 습득해야 할 지식과 기술은 과학 분야에만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자 하면 육체 활동과는 거리가 멀고, 지적이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책에 둘러싸여서 보통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성취를 과학자 대부분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들어맞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번역했다. 갈릴레오는 10대 시절에 미술가가 되려고 했고, 일생 동안 시를 썼다. 뉴턴 역시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케플러는 음악가이자 작곡가였고, 파스퇴르는 재능 있는 화가였다. 뛰어난 과학자와 발명가 중에서 예술가적 성향을 가진 이들의 목록은 이 책에만 열두 페이지에 이른다. "장차 위대한 연구자를 기르려면 과학적 훈련뿐 아니라 인간 존재를 형성하는 교육, 기술, 철학, 윤리, 논리, 취미, 열정을 이해해야 한다."


물론 저자의 주장은 예술가적 성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예술 외에도 교육, 기술, 철학, 논리 및 일상생활에서 자신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사람일수록 뛰어난 과학자와 발명가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어려서부터 학과 공부에만 매진하고 전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한국의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조언이다. 아울러 일찍부터 학생들을 문과와 이과로 나누고 전공 공부만을 강조하는 한국의 교육 당국도 이 조언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안 그러면 나 같은 '과포자'가 양산된다). 


저자의 주장은 과학에만 통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안고 있는 문제의식과 연구 방법은 문학이나 수학, 역사, 예술 등 다른 학문 분야에도 적용할 수 있다. <과학자의 생각법>의 뒤를 이어 <문학가의 생각법>, <수학자의 생각법>, <역사가의 생각법>, <예술가의 생각법> 등 후속 시리즈가 나오면 어떨까. 저자가 여러 학문 분야에 적용 가능한 생각법을 담은 <생각의 탄생>이라는 책을 쓰기는 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현실적으로 부딪치게 되는 문제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구체적으로 기술한 책이 나온다면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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