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웃는 남자>는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과 후보작 여섯 편을 엮은 작품집이다. 이른바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은 게 이 책이 처음이다. 수상작이 황정은의 소설이라기에 읽었는데, 황정은의 작품만으로 만족하기에는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이 워낙 좋고, 함께 실린 다른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역시 황정은의 작품이 압도적으로 좋다(황정은 작가님 사랑합니다♡). 


수상작 <웃는 남자>는 황정은의 전작 <디디의 우산>(『파씨의 입문』)과 <웃는 남자>(『아무도 아닌』)의 후속작이다. 주인공 d는 동거하던 연인 dd를 사고로 잃은 후 양천구 목2동의 반지하 방에서 폐인처럼 지낸다. d에게 간간이 먹을 것을 주던 집주인 할머니마저 요양병원에 들어가자 d는 고시원으로 거처를 옮기고 세운상가에서 하루 열 시간씩 택배 기사로 일한다. 또 다른 주인공 여소녀는 40년이 넘도록 세운 상가에서 앰프와 스피커를 고치고 있는 60대 중반의 남자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세운상가에서 일을 했던 그는 산업화, 정보화를 거쳐 공동화(空洞化), 소멸화되는 그곳의 마지막 목격자다. 


단편이라기에는 결코 짧지 않은 이 작품에서 작가는 한국전쟁, 산업화, 독재 정권, 민주화 운동, 이웅평 귀순 사건, 세월호 사건 등 한국 현대사의 이슈를 꼼꼼하게 언급한다. d의 집주인 할머니는 한국전쟁 때 한강철교가 폭격을 당해 무너질 때 업고 있던 갓난아기를 잃었다. d는 1983년 북한의 공군이었던 이웅평 대위가 러시아제 미그기를 몰고 남한으로 귀순했을 때 개펄에서 조개를 캐고 있었던 것을 기억한다. 여소녀는 세운상가가 처음 문 열 때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와 육영수, 어린 박지만이 찾아와 상가 사람들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약속했던 것을 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세운상가는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택배기사 몇 명뿐인 창고 지대로 전락했다. 북한의 공군은 목숨 걸고 찾아갈 곳이라도 있지만,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내 환멸로부터 탈출하여 향해 갈 곳"도 없다. 무소불위의 권력자가 약속한 풍요로운 미래는 고시촌 쪽방에서 새우잠을 자는 청춘들이 헬조선을 뇌까리고 탈한국을 꿈꾸는 세상으로 확인되었다. 대통령이 한강철교 폭격을 묵인해 수많은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던 사건은 2014년 4월 16일 진도 인근 해상에서 구조 요청을 했음에도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하고 침몰해 295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와 오버랩된다. 


황정은의 <웃는 남자>와 함께 수상 후보에 오른 작품으로는 김숨의 <이혼>, 김언수의 <존엄의 탄생>,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의 <여름방학>,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 편혜영의 <개의 밤> 등이 있다. 후보작들 중에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윤고은의 <평범해진 처제>, 윤성희의 <여름방학>,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이다. 세 작품 모두 평범한 소시민의 평범하지 않은 어떤 날들을 꼼꼼하게 묘사한 점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중에선 특히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가 좋았다. 주인공 이기호(작가와 이름이 같다)는 쓰라는 소설은 쓰지 않고 중고나라 사이트를 둘러보다가 자신의 책이, 그것도 저자 사인본이 4천 원이라는 헐값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충격을 받은 이기호는 판매자에게 직거래를 요청하고, 판매자를 만나기 위해 전라도 광주에서 경기도 일산까지 간다. 이 모든 과정이 한 편의 코미디 영화처럼 우스운데, 마지막 반전을 알고 나면 마음이 싸하다. 이래서 그동안 사람들이 이기호, 이기호 했나 보다. 이기호 작가님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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