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들은 왜 종교가 되지 못했나 - 철학과 민주주의를 발명한 고대 그리스인들의 새로운 시각
후지무라 시신 지음, 오경화 옮김 / 하빌리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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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사의 출발점으로 일컬어지는 고대 그리스. 세계사 교과서나 철학서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철학과 문화를 보면 현대인이 과연 능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단한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대 그리스에 관한 상식 중에 틀린 것이 있다면 어떨까?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종교적이지도 않고 철학적이지도 않았다면? 


<그리스 신들은 왜 종교가 되지 못했나>는 일본의 사학자 후지무라 시신이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해 쓴 책이다. 대학에서 고대 그리스사 연구를 처음 시작한 날, 저자는 은사로부터 "고대 그리스 신전은 극채색으로 채색되어 있었기 때문에 원래는 순백이 아니었다."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빠졌다. 


이때부터 고대 그리스 문화에 관한 진실과 거짓을 추적하는 데 평생을 바친 저자는, 이 책에서 고대 그리스 문화의 상징인 파르테논 신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흰색이 된 건 영국의 대영박물관에서 일하던 한 직원의 실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 직원은 박물관의 스폰서로부터 '좀 더 하얗게 만들어라! 그래야 대중들에게 먹힌다!'라는 명령을 받고 파르테논 신전의 부조를 쇠 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흰색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이는 1939년에 발각되어 대형 스캔들로 이어졌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애초에 고대 그리스를 서양의 기원으로 보는 것 자체가 유럽인에 의한 역사 날조라는 의견도 있다. 우리는 흔히 고대 그리스 신들이 금발에 흰 피부를 지닌 백인의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를 비롯한 아프리카를 기원으로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그리스 신들은 검은 피부였을 것이라고. 또한 고대 그리스와 현대 그리스 사이에는 1000년의 공백이 있으며, 이들 사이에는 종교적, 문화적 유사성이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 인간 중에는 그리 잔혹하다고 의식하지 않고 벌레를 죽이는 부류도 있다.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는 채집하여 감상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벌레 중에는 벌처럼 날카로운 침으로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는 종류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신과 인간의 관계는 이 인간과 벌레의 관계와 비슷하다. 신들은 인간이 볼 때는 강대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이지만 자비롭지 않으며 인류 전체를 사랑하지도 않는다. (47쪽) 






이 책에는 고대 그리스를 보는 새로운 시각에 관한 설명 외에도 그리스 신화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올림포스 12신의 이력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의 성격에 대한 설명 등이 다채롭게 실려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올림포스 12신의 이력서다. 아폴론,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등 유명한 그리스 신들의 별명, 직업, 유명한 대사, 주위의 평가, 상징, 소지품 등을 프로필로 정리한 것인데,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그리스 신화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것만 읽으면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왜 고대 그리스인은 바람둥이 제우스를 최고의 신으로서 숭배하는 걸까?" 

이런 의문이 들겠지만 이것은 원인과 결과를 착각해서 생기는 의문이다. 제우스의 외도에 관한 신화가 이렇게 많은 이유는 그리스가 수많은 도시 국가가 난립해 있었던 데에 있다. 자신들의 선조가 제우스 신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온갖 도시들이 "제우스 신이 우리 도시에서 이런 사건을 벌였으니 우리 선조는 제우스이다"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76쪽) 


그리스 신들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진실을 밝히는 부분도 재미있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 제우스가 들킨 것만 다른 여자와 결혼 3번, 단순 외도는 수백 번에 달하는 바람둥이 신이 된 것은 당시 그리스가 하나의 나라로 통일되지 않은 도시 국가였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재미있고, 제우스는 이주민이 섬기던 신이었고 헤라는 원주민이 섬기던 신이었기 때문에 둘의 관계가 팽팽한 긴장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해석도 재미있다. 


처녀와 아이의 수호신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생일 케이크의 원조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의 여신이기도 해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생일이 되면 감사의 뜻을 담아 양초로 빙 에워싼 케이크를 아르테미스의 신전에 바쳤다고 한다. 생일 케이크의 원조가 아르테미스라는 것도 놀랍지만, 생일 케이크를 생일인 사람이 받는 게 아니라 신전에 바쳤다는 점도 놀랍다. 멀게만 느껴졌던 고대 그리스 문화가 이 책 덕분에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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