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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모리미 도미히코의 신작 장편 소설 <야행>은 이야기 자체도 흥미롭지만, 이야기를 전개하는 작가의 필력을 보는 재미가 탁월하다. 10년 전 같은 학원에 다녔던 친구 여섯 중 한 명이 실종되고, 시간이 한참 흐른 후 남은 다섯이 교토에 모인다. 교토에서도 깊은 산속 마을인 구라마의 한 여관에 짐을 푼 이들은 회포를 풀 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기시다 미치오라는 동판화가의 <야행> 연작을 저마다 다른 곳에서 다른 이유로 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밤이 깊도록 한 사람씩 <야행>에 얽힌 사연을 풀어놓게 되는데 사연이 하나같이 기묘하다.
깊은 밤 한 방에 모인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괴담을 하는 형식은 일본의 전통 괴담인 '백물어(百物語)'를 연상케 한다. 백물어란 밤에 촛불을 백 개 켜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괴담을 하고 괴담이 끝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끄면 촛불이 모두 꺼지는 순간 귀신이 나타나거나 마지막으로 말한 사람이 죽는다는 괴담이다. 소설 속에서도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다가 모두의 이야기가 끝나면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야행>이라는 제목 또한 일본의 전통 괴담인 '백귀야행'과 관련이 있다. 백귀야행이란 요괴나 귀신들이 심야에 마을에 집단으로 나타나 배회하거나 행진한다는 전설이다. 소설 속 친구들도 집 나간 아내를 찾으러 갔다가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난다든지, 모르는 할머니를 차에 태워줬는데 일행 중 두 명이 곧 죽을 운명이라는 저주를 듣는다든지, 불타는 집 앞에 서서 내 쪽으로 손을 흔드는 여인을 본다든지 하는 기이한 체험을 한다. 요괴나 귀신을 봤다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실제라고 하기엔 미심쩍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작가는 여기에 연작 그림이라는 장치를 더해 따로 떨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한다. 7년 전 사망한 기시다 미치오의 유작인 <야행> 연작은 하나같이 시커먼 배경에 희뿌연 선으로 얼굴은 매끈한데 표정이 없는 여자가 그려져 있다. 작품에는 오노미치, 오쿠히다, 쓰가루, 덴류쿄, 구라마 같은 지명이 제목으로 붙어 있으며, 이는 소설 속 친구들이 기묘한 일을 겪은 장소와 일치한다. 친구들이 저마다 작품을 보고 자신이 겪은 체험을 떠올리는 건 우연일까 필연일까. 이들이 겪은 체험은 과연 환상일까 현실일까.
<야행>은 일반적인 미스터리 소설처럼 '누가 누구를 죽였나(whodunnit)', 즉 사건의 범인과 진상을 알아내는 데에 연연하지 않기 때문에 일부 독자들에게는 낯설거나 난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백물어나 백귀야행 등 일본의 전통 설화에 관심이 많고, 판타지와 미스터리가 혼합된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원해온 독자라면 상당히 만족할 듯. 후자인 나는 이 책을 읽는 순간 빠져들었고 읽는 내내 황홀했다. 몇 번을 더 읽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오늘 밤 한 번 더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