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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 좋은 계절은 언제일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여름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낮에는 더워서 책 읽을 여력이 없고, 밤에는 지쳐서 자기 바쁘니 웬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책 읽기가 꺼려진다. 컨디션이 좋을 때는 하루에 책을 두세 권씩 읽던 나 역시 요즘은 사나흘에 한 권 읽기도 벅차다. 이 와중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위험한 비너스>는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으니 재미있기는 했나 보다.
동물병원 수의사 데시마 하쿠로는 어느 날 낯선 여자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하쿠로의 이부 동생 야가미 아키토의 아내라고 밝힌 여자는 아키토가 현재 행방불명이 되었으니 함께 찾아달라고 매달린다. 하쿠로는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몇 년째 왕래가 없었던 아키토가 가족들 몰래 결혼한 사실과 아키토의 아내가 하필이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에 놀란다.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결국 여자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여자와 함께 아키토의 행방을 찾아 나선다.
때마침 아키토의 친아버지 야가미 야스하루가 임종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하쿠로는 아키토의 아내 가에데와 함께 오랜만에 야가미가(家)를 찾는다. 유산 분배를 기대하던 야가미가 사람들은 몇 년째 왕래가 없던 하쿠로가 등장하자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가에데의 정체를 수상하게 여긴다.
불편한 분위기를 견디며 야스하루의 유산을 살펴보던 하쿠로는 자신의 친아버지이자 33년 전에 요절한 무명화가 데시마 가즈키요의 그림과 똑같은 그림을 야스하루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친아버지가 생전에 양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는 걸 알게 된 하쿠로는 양아버지가 친아버지의 죽음은 물론, 16년 전 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죽음에도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쩌면 아키토가 행방불명이 된 것도 이들의 죽음과 관련이 있을지도...?
하쿠로는 복잡한 가족사 탓에 집안일에 무심했다. 친아버지는 요절해 기억도 잘 안 나고, 어머니는 명문가 출신 의사와 재가해 동생을 낳았으니 등돌리고 싶을 만도 하다. 그랬던 하쿠로가 동생의 실종을 계기로 친척들을 만나고 가족에 얽힌 비밀을 파헤친다. 왠지 모르게 친아버지가 준 성(姓)을 버리기 싫었던 것도, 야가미 가의 주요 사업인 의료 분야 대신 수의사의 길을 택한 것도 어릴 때 겪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보다 가족을 싫어했지만 누구보다 가족적인 남자였다. 하쿠로는.
소설의 제목 <위험한 비너스>는 무엇을 뜻할까. 적어도 둘은 알겠다. 하나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하쿠로의 마음을 휘저은 여자 '가에데'. 다른 하나는 고도로 발전해 누구든 비너스(천재)로 만들 수 있지만 그만큼 위험한 '의학 기술'이다. 재미와 감동, 교훈까지 모두 잡은 이 소설. 하쿠로가 만나는 여자마다 얼평, 몸평을 해대는 시대착오적인 남자라는 점만 빼면 제법 괜찮은 대중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