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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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란의 소설은 오랫동안 '청춘'의 대명사였다. 그것도 눈부시게 아름다운 청춘이 아니라 눈물 나게 고달픈 청춘. 새벽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애인과 갈 곳이 없어서 허름한 모텔을 전전하고, 장마철 반지하 월세방에 들어찬 물을 열심히 퍼나르는 청춘을 김애란만큼 성실하게 글로 옮긴 작가는 없었다.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돌아온 김애란은 이제 청춘이 아닌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의 이야기, 즉 '청춘 그 후'에 주목한다. 새벽까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던 청년은 아침마다 출근 전철에 몸을 싣는 직장인이 되었다. 애인과 모텔을 전전하던 남자는 자기 명의의 집에서 아내와 잠을 잔다. 반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던 여자는 자식에게 먹일 생선을 굽는다. 인생이 사계절이라면 어느덧 파란 봄[靑春]을 지나 무더운 여름에 접어든 사람들. 우연인지 필연인지 소설집의 제목도 <바깥은 여름>이다. 


인생의 봄을 지나 여름에 들어선 사람들의 최대 고민이자 위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작가의 답은 '상실'인 것 같다. <입동>에서 그토록 바라던 첫 집을 마련한 젊은 부부는 다섯 살도 채 안 된 아들을 사고로 잃는다. <건너편>에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내는 남편과 헤어질 준비를 한다. <풍경의 쓸모>에서 시간 강사를 전전하는 남자는 교수 임용을 위해 양심을 저버리고 거짓말을 한다. <가리는 손>에서 혼자 몸으로 아들을 키우는 엄마는 아들이 노인 학대 가해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믿지 않으려 한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 남편을 사고로 잃은 아내는 남편의 죽음을 비밀로 한 채 남편의 옛 친구를 만난다. 이들이 처한 상황은 각각 다르지만 하나같이 뭔가를 잃거나 버린다. 


<노찬성과 에반>과 <침묵의 미래>는 청춘 그 후를 그린 작품은 아니지만 상실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맥락이 통한다. <노찬성과 에반>에서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소년 찬성은 유일한 동무인 반려견 에반을 잃는다. <침묵의 미래>는 사라져가는 언어의 마지막 화자들을 데려다가 소수 언어 박물관을 만든다는 설정의 관념적인 우화다. 소수 언어의 유일한 화자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고 소통할 수 없는 이들은 박물관의 방침으로 인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자식까지 잃는다. 


청춘 그 후에 오는 것이 상실이라니. 젊음이 지나가고 나이가 들면 인격이 성숙하고 지혜가 생긴다던 뭇 어른들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가의 서늘한 고백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인생은 언제나 인간의 예상을 벗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예비하고 있으며, 아등바등 산다 한들 결과가 늘 해피엔딩일 순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작품의 전개와 결말에 새삼 놀랐다. 


이제 더 이상 김애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새파란 이십 대도 아니고 고시원이나 편의점에 머물지도 않겠지만, 시선은 여전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고정되어 있고, 여전히 예리하고 정확해 마음이 놓인다. 다음엔 어떤 소설로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어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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