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지음 / 허밍버드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나는 언제나 라디오를 켠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디제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차근차근 읽어내리는 멘트를 듣고 있노라면 낮 동안 들떠 있었던 마음이 가라앉고 어느새 잠의 세계로 푹 빠져든다. 


<아주, 조금 울었다>의 저자 권미선은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청취자들의 밤을 밝혀온 라디오 작가다. 라디오 프로그램 <푸른밤 정엽입니다>, <오후의 발견 스윗소로우입니다>, <굿모닝 FM 오상진입니다>, <새벽이 아름다운 이유 손정은입니다>, <보고 싶은 밤 구은영입니다>, <Hi-Five 허일후입니다>, <차 한 잔의 선율>, <행복한 미소> 등에서 글을 썼고, 지금도 쓰고 있다.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읽기 좋은 책.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나도 책 속의 '나'처럼 외로운 밤을 견디다 못해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던 적이 있는데.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신나게 수다 떨고 속이 다 후련했던 경험이 있는데. 문득 올려다본 하늘과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이 옛 남자친구의 기억을 가져다줘 마음 아팠던 적이 있는데. 어쩌면 저자는 내 마음에 들어왔다가 나간 것처럼 글을 썼을까.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꽁꽁 숨겨두었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이 책의 내용 중 절반은 사랑에 관한 단상이고, 나머지 절반은 성장과 성숙, 인생에 관한 단상이다. 사랑의 기쁨과 슬픔, 이별 후의 외로움과 그리움에 관한 글도 좋지만,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글도 퍽 좋았다. 뜀박질을 하다 넘어질 수도 있고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인데 어른이 되어가는 도중에는 그것이 서럽고 두렵기만 했다. 그때마다 남들 앞에서 또는 남들 모르게 얼마나 많은 양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사랑은 마냥 달콤하다고 말하지 않아서 좋았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지금 고생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젠체하지 않아서 좋았다. 잊었다고 자신했지만 아직도 마음 한구석엔 그 사람의 자리가 남아있다고,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아무나 붙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그런데 그럴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빗속에서 엉엉 울었던 적이 있다고 말해줘서 좋았다. 


나만 그런 감정을 느껴본 게 아니라고, 나만 이따금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니면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을 핑계로 우는 게 아니라고 위로해줘서 고마웠다. 아주 조금 울고 싶을 때, 그때마다 이 책을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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