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사랑 (특별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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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여수의 사랑> 특별판은 1995년에 처음 출간된 동명의 소설집을 재출간한 것이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과 <질주>, <어둠의 사육제>, <야간열차>, <진달래 능선>, <붉은 닻> 등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렸고, 작가가 직접 문장을 손봤으며 표지를 새로 입혔다. 

여섯 편 모두 흥미로웠지만 <어둠의 사육제>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주인공 영진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겨우 마치고 서울에 올라와 돈을 벌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몇 년 후 영진은 고향에서 알고 지냈던 인숙 언니를 만났고, 가진 돈 전부를 인숙 언니의 돈과 합쳐서 전세로 옮긴다. 그러던 어느 날 인숙 언니가 전세금을 빼서 도망친다. 졸지에 빈털터리가 되고 회사에 빚까지 진 영진은 서울에 사는 이모 집에 얹혀살게 된다. 말이 친척이지 싫은 내색 팍팍 내며 남보다 못한 대접을 하던 이모네 가족은 급기야 영진을 베란다에서 지내게 한다. 

도와주는 이 하나 없는 현실을 원망하면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영진에게 한 남자가 제안을 한다. 명환이라는 사내가 영진의 처지를 알고 있다며 자신의 집을 주겠다는 것이다. 영진은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가지는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을 것을 알지만 명환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지 못한다. 외려 이모네 집 베란다에서 지내는 자신의 모습을 명환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감과 모멸감을 느낀다. 그러나 명환에게는 영진을 불쾌하게 만들거나 멸시하려는 의도는 없다. 영진은 명환이 선뜻 자신에게 집을 주겠다고 제안하게 된 사연을 알게 되고 명환을 이해하게 된다. 

<어둠의 사육제> 뿐 아니라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들에는 하나같이 연민의 정서가 배어 있다. 표제작 <여수의 사랑>은 좋지 않은 이유로 고향인 여수를 떠나온 정선이 저보다 불행한 사연으로 여수를 떠난 자흔을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이고, <야간열차>는 세상살이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겉도는 영현이 식물인간이 된 쌍둥이 동생을 걱정하는 친구 동걸의 사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나도 힘들지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 그런 사람을 외면하지 않고 이해하고 연대할 때 인간은 더 강해지고 인간다워진다는 것을 작가는 말한다.

이는 한강의 소설이 죄다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내용인데도 계속 읽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이 괴롭고 힘들지만 나만 괴롭고 힘든 게 아니라는 것. 나보다 더 괴롭고 힘든 사람이 있다는 것. 나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눈을 돌려 타인의 고통을 들여다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삶이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견딜 만해진다는 것. 나처럼 아픈 사람, 나보다 힘든 사람에 대한 연민과 이해는 이후 한강이 발표한 <채식주의자>,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에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정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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