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같은 작가라도 사회 문제를 대하는 자세는 저마다 다르다. 어떤 작가는 사회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으로 모자라 직접 정치에 뛰어드는 반면, 어떤 작가는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것조차 삼간다. 


김영하는 어떨까. 내가 보기에 김영하는 사회 문제에 대해 발언하되, 작가의 위치에서 작가다운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모색하는 영리하고 세련된 자세를 취한다. 작품은 물론 최근에는 직접 운영하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시의성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를테면 촛불 혁명이 한창이던 작년 12월에는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의 아내가 중심인물로 등장하는 최은영의 소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를 낭독했고, 대선 정국이 한창이던 올해 3월에는 플래너리 오코너의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라는, 제목만 보아도 메시지성이 느껴지는 소설을 낭독했다(그리고 우리는 '좋은 사람'을 찾았다!).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은 어떨까. 제목만 보면 애틋한 연애 소설이 잔뜩 실려 있을 것 같은데, 읽어보면 하나같이 절망 다음에 절망이 예비되어 있고 그 사이엔 희망도 안식도 아닌 불안과 공포만이 가득한 상태를 그린 소설이다(그만큼 스릴 있고 흥미진진하다). 


표제작 <오직 두 사람>은 가족들이 질투할 정도로 사이가 좋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그린다. 두 사람의 사이가 너무 좋은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배척당하고 남은 사회적 관계도 모두 잃었을 때 둘 중 한 사람이 먼저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은 어떻게 될까. 작가는 이를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최후의 두 사람, 그래서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한 사람은 영영 그 언어를 사용할 일이 없게 되는 상황에 빗댄다. 


<아이를 찾습니다>는 마트에서 세 살 된 아들을 유괴당한 후 더는 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 부부의 비극을 그린다. 작가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몇 해 전에 소설의 초고를 쓰고 묻어두었다가 세월호 참사 직후 초고를 다시 꺼내 집필에 착수해 그 해 겨울에 발표했다. 소설의 주인공은 결국 아들을 되찾게 되는데, 시간은 이미 십여 년 이상 흘렀으며 그동안 아내는 미쳤고 아들은 변해서 또 다른 고통의 나날들이 펼쳐진다. 


절망 뒤의 절망, 고통 다음의 고통이라는 이미지는 이 책에 실린 다른 소설에도 나온다. <인생의 원점>의 주인공 남자는 우연히 첫사랑을 다시 만나지만 또다시 잃게 되고, <옥수수와 나>의 작가는 가까스로 기나긴 슬럼프에서 벗어나지만 절망스러운 현실을 깨닫고 끝내 자신이 옥수수라고 믿게 된다. <최은지와 박인수>의 박인수는 싱글맘이 되기로 결심한 여직원 최은지를 도와주려다 위기에 몰린다. <신의 장난>에 나오는 젊은이들은 기업 면접시험의 일환으로 방 탈출 게임에 참여했다가 생존을 위협받는다. <슈트>만이 절망적이라기보다는 묘하고 섬뜩하다는 느낌을 주는 소설인데, 절망 뒤의 희망, 고통 다음의 안식으로 이어지는 뻔한 전개가 아니라는 점은 다른 소설과 같다. 


절망 뒤의 절망, 고통 다음의 고통이라는 이미지를 작가가 한국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로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절망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보다는 이 책을 통해 '상실'과 '그 이후'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에 주목하고 싶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가 '느낀' 대로 또는 우리가 알게 된 대로, 우리는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그 이전'처럼 살 수도 없다. 대체 누가 세월호에서 숨진 사람들을 살려낼 수 있을까. 지난 두 정권 동안 후퇴한 세월을 되돌릴 수 있을까. 다만 작가는 느낄 뿐이고 독자는 살아가며 견딜 뿐이다. 살아가고 또 살아가다 보면 김영하 같은 작가가 느끼고 글로 써주겠지. 그가 무엇을 느끼고 글로 쓸지,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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