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헬렌 피어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부제는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이다. 부제만 보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 요인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자기 계발서인 것처럼 보이는데, 막상 읽어보면 세계 최장, 최대 규모의 사회과학 연구인 '라이프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사회과학서이다. 


라이프 프로젝트란 영국이 1946년부터 현재까지 70여 년 동안 진행하고 있는 코호트 연구를 일컫는다. 코호트 연구란 통계적으로 동일한 특색이나 행동 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말한다. 영국은 라이프 프로젝트라는 코호트 연구를 위해 1946년, 1958년, 1970년, 1991년, 2000년에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태어난 1만 명 전후의 아이들을 선별했으며, 이들의 삶을 면밀히 추적하면서 그들의 키와 건강, 지능, 학교 성적, 사회계급, 성인이 된 후의 직업과 결혼생활을 비롯해 거의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다. 


라이프 프로젝트라는 거대한 코호트 연구를 통해 도출된 결과는 영국은 물론 세계 각국의 출산, 건강, 교육, 빈곤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저자인 헬렌 피어슨도 코호트 연구의 수혜자이다. 저자는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동인 임산부 케어와 출산 휴가를 누렸는데 이는 코호트 연구의 결과로 인해 만들어진 정책 덕분이다. 저자는 임신 기간 동안 알코올을 피하고 생선을 먹었는데 이는 코호트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사실이 이제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다는 '상식'도 코호트 연구의 결과다. 이렇게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 인생을 바라볼 때 사용하는 준거 기준 대부분이 코호트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성공과 실패에 대한 상식도 라이프 프로젝트를 통해 통계적으로 증명되었다. 사회 통념상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은 실패한 어른이 되기 쉽다고 여겨지는데, 연구 결과 가난한 부모, 비좁은 집 등 불우한 환경에서 태어나 힘겹게 인생을 시작한 아이들은 행동장애, 질병, 부진한 학업성취도 등에 시달리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실패할 운명을 타고났는데도 성공한 케이스 역시 존재했다. 이들은 자녀가 지속적으로 학업을 이어가길 원하는 부모를 두었고, 학생의 교육에 관심이 많은 학교를 나왔으며, 구직 기회가 많은 지역에서 살았다. 


열성적인 부모와 학교, 구직 기회가 많은 지역에 사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개인의 의욕인데, 개인이 의욕만으로 성공하길 바라는 것은 가능성도 낮거니와 정부와 사회의 책임을 방기하는 일이다. 다행히 영국은 개인이 의욕만으로 성공해야 할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정부와 사회 차원에서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국민보건서비스 체계를 개선해 더 나은 출산 환경을 조성하고, 부모가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책을 읽어 주고 아이들의 미래에 관심을 갖게끔 양육 문화를 바꿨으며, 학교에선 계급 간의 차별 없이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게끔 지원했다. 그 결과 불리한 출발로 인한 약점이 많이 극복되었다. 


라이프 프로젝트 자체가 피험자들의 삶을 개선했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다. 라이프 프로젝트에 참여한 피험자들은 정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음으로써 질병을 예방하고 발견된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평생에 걸쳐 자신의 삶이 기록된다는 사실에 부담감을 느끼고 도중에 포기한 피험자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록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일부는 자신의 삶이 기록된다는 사실에 의무감 또는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저자는 코호트 연구가 자금 부족이나 과학계의 풍조 변화, 들쑥날쑥한 정치적 지원 등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탄한다. 적어도 이 책만 보면 코호트 연구는 실보다 득이 많은 듯한데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니 안타깝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